
때는 제가 사회에 첫발을 내딛던 1978년 가을.
부장님이 미국문화원에 취재를 다녀오라는 지시를 내리셨습니다.
미국문화원에서 전시회를 여는데 오늘 프레스를 위한 행사가 있다고 가보라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기자생활을 한 지 한 석달이나 됐을라나, 어리삥삥한 전 을지로에 있던 미국문화원엘 갔습니다.
행사장 벽면에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중앙에는 간단한 먹거리들이 마련되어있더군요.
전시작들을 둘러보고 있는데, 문화원 담당자가 참석자들을 불러모아 전시회의 의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음료수도 돌리고, 음식을 권하더군요.
그후 직장을 그만 둘때까지, 무슨 리셉션이니 하는 곳을 수없이 다녔지만, 정말 테이블 근처에 서서 뭔가를 집어먹는 일이 제 체질에 안맞아서...
더욱이 그때는 사회에 막 발을 내딛은 초년병이라 어색하고,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뭔가 '꺼리'를 건진 것도 아니어서, 행사장을 뒤로 하고 나올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음식앞에 들러붙기는 싫고...
그런데 그 때 거의 전원의 참석자가 한가지 음식에만 몰려있는 모습이 눈에 띄는 거에요.
파티 음식 전혀 입에도 안댈 것처럼 새침을 떨고있던 저는 솟구치는 궁금증을 어쩌지 못해서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어요.
가보니까 새우더라구요, 껍질을 벗겨서 찐 새우.
모두들 너무 열심히 먹는 걸보고는 저도 하나 집어서 입에 넣었는데...
우와, 겨자의 맛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것이 어찌나 맛있든지...
제 맘 같아서 거기 모여있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고 혼자 접시를 끼고 먹고 싶더라구요.
그때 그 새우의 맛 평생 못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우만 생기면 그 흉내를 내느라, 찌는 물에 와사비를 풀어보기도 하고, 겨자를 풀어보기도 하고, 새우 몸에 와사비가루를 뿌려보기도 하고...
암튼 별별 방법을 다써봤지만 그 맛을 흉내내지 못했습니다.
오늘 어부 현종님의 새우가 도착했습니다.
그 새우를 보는 순간, 26년전의 그 새우가 생각나는 거에요.
그래서 새우에 머스터드 파우더를 마구 뿌렸어요. 그리곤 전기 찜기에 쪘어요.
새우의 껍질이 얇은 탓인지, 머스터드 파우더가 충분히 스며들 수 있는 시간을 주지 못했는데도, 살에 어지간히 머스터드 맛이 배어, 26년전 그 새우의 맛과 똑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여태까지 시도했던 것 중에서는 가장 흡사하게 됐어요.
기분도 좋고 맛도 좋아서,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이렇게 먹다가는 모처럼 빠진 살, 말짱 꽝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일단은 먹었어요.
사실 오늘은 다리에 힘도 없고, 어지럽고해서 많이 괴로웠거든요, 맛있게 먹은 새우탓인지 기운이 좀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