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형이 공장 다니고, 난 대학갔다!

리치코바 조회수 : 860
작성일 : 2008-11-17 16:43:44
모든 책임 떠안고 살아온 4살 위 큰형 이야기  

    박창우 (saintpcw)  





3형제 중 막내인 나에게는 두 명의 형이 있다. 모두 두 살 터울로 큰형과 나는 4살 차이가 난다. 예전 형제 간에 비하면 그리 큰 나이 차는 아니지만, 저출산이 보편화돼 많아야 둘만 낳는 요즘 시각으로 보면 꽤나 큰 나이 차라 할 수도 있겠다.



더욱이 막내인 나에게 '큰형'은 산술적인 네 살 차이보다 훨씬 더 큰 나이차가 있다. 이제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는 우리 '큰형' 이야기다.



모든 책임 떠안아야 했던 큰형의 어린 시절




비교적 도시보다는 농촌에 가까운 우리 동네에서도 3형제는 그리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그 때문인지 부모님은 이웃 어른들로부터 "아들이 셋이라 든든하겠다"라는 말씀을 자주 듣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셋 키우기가 얼마나 힘든데…"라며 짐짓 엄살(?)을 부리셨지만, 얼굴엔 미소가 넘쳤다.



그러면서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경험하신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 형제들에게 '우애'를 강조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말싸움한 것을 빼고는 부모님 말씀처럼 사이좋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특히 큰형은 언제나 "동생들을 잘 보살피라"는 부모님 말씀대로 학교에서 저학년인 동생들이 무슨 사고를 치지는 않는지, 선배에게 맞지는 않았는지 등을 확인하며, 작은 형과 나를 아주 잘 돌봐(?)줬다.



큰형의 역할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형에게는 '장남'이라는 직책(?)이 주어졌다. 마냥 개구쟁이 시절이었던 초등학교를 넘어 중·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주로 명절과 같이 친척 어른들이 많이 모일 때면 장남으로서 큰형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언젠가 한 번은 큰형과 작은형, 그리고 나까지, 똑같이 부모님께 잘못을 저지른 일이 있었다. 잘못에는 벌이 따르기 마련인데, 그 벌을 받고 난 후에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을 정도로 호되게 혼난 기억이 있다.



그런데 큰형은 똑같은 벌을 받고 난 이후에도 장남이라는 이유로 작은형과 나보다 더 많이 혼났다. 상당히 오랫동안 아버지로부터 꾸지람을 들었는데, 그 이후로 큰형은 작은형과 나에게 부쩍 잔소리를 많이 했다. 난 그런 큰형이 서운하기만 했다.        



대학을 포기한 형, 권하지 못한 나



어느덧 큰형과 작은형이 고등학교, 난 중학교에 다니게 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난 형들보다 성적이 좋았다. 부모님이 성적을 가지고 형들을 나무랄 때면 그 비교 대상은 항상 내가 됐다. "넌 형이 돼서 동생보다 못하면 어떡하니." 난 형들에게 미안했지만, 형들은 오히려 "셋 다 못하는 것보다는 너라도 잘해서 다행"이라며 나를 격려해 줬다.



학창시절, 내가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반은 아마도 그런 형들에 대한 미안함을 씻어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큰형이 고3, 작은형이 고1, 내가 중2던 1997년. 고등학교를 나오면 당연히 대학을 가던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을 나와야 사람 대접을 받는다는 그 시기(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 큰형은 공장으로 취업하는 것으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했다.



2년을 주기로 작은형과 내가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에서 큰형은 대학진학을 스스로 포기했다. 넘쳐나는 대학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못 갈 거 없었지만, 큰형은 그렇게 무언의 양보를 했다. 집안 형편상 3명을 모두 대학에 보낼 수는 없다는 게 부모님의 생각이기도 했다.



매번 한 자리 수 등수가 새겨진 성적표를 받아오던 그때의 나는 어렴풋하게 형이 대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선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지만, 형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 때의 나는 내가 무슨 고등학교를 진학해 어떤 대학을 갈까에 관심이 더 많았지 형이 대학을 가고 안 가고에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서른에 전문대학 졸업한 형



  
  
▲ 형이 대학 다니며 과제로 제출했던 작품(우리에게 자랑까지 했던 작품이다).  
ⓒ 박창우  과제



2년 뒤 작은형이 대학에 진학했고, 다시 2년 뒤 내가 대학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취업길에 올랐던 큰형은 몇몇 회사에서 경험을 쌓고, 지금은 꽤 안정적이라 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 다니는 두 동생을 위해 부모님에게 학비를 보태주기도 했으며, 대학 생활에는 돈이 많이 필요하다며 동생들의 용돈을 챙겨주는데도 아낌이 없었다.



그러던 큰형이 재작년 대학에 진학했다. 회사 근처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본인이 공부하고 싶었던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했다.



나에게 수강 신청하는 방법을 묻고, 영어가 너무 어렵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형을 보며 내 마음은 뿌듯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학에서 공부하기를 2년, 올해 30이 돼서야 큰 형은 대학 졸업장을 손에 쥐었다.



"진급하려 해도 '대졸'이 '고졸'보다 유리하고…, 사회에서는 정말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하더라. 그래서 대학에 들어간 거야."



허물없이 동생과 소주잔을 기울이던 형은 끝내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형이 포기한 대학을 편안하게 다닌 나로서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그 지난날이 너무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지난날부터 지금까지 형이 살아온 삶은 앞으로 내 삶에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해줄 것이다.  



[최근 주요 기사]
☞ [20대 펀드 투자기] 한국의 "워렌 버핏", 다시 신입사원 되다
☞ ["디자인 서울" 논란] "간판 개선? 굶는 판에 "명품" 입으라는 격"
☞ MB "지금은 성장 전망이 중요한 게 아니다"
☞ [우리 시대의 진상] 극장 아르바이트생이 "진상" 고객 만났을 때


덧붙이는 글 | '가족에게 길을 묻다' 응모글.

출처 : 형이 공장 다니는 대신, 난 대학 갔다 - 오마이뉴스

IP : 118.32.xxx.2
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250377 코스트코 이번주 할인품목 확인되시는 분.. 4 죄송하지만 2008/11/17 1,057
    250376 초등 과외비는? 4 초등맘 2008/11/17 1,162
    250375 영어 속담 있는 사이트 2 급한 학부모.. 2008/11/17 335
    250374 강아지 입양 16 icon 2008/11/17 1,078
    250373 요즘 82 좀 느려지지 않았나요? 저만 그런가요? 1 ... 2008/11/17 549
    250372 오바마의 이 연설문 보셨어요? 3 코리언드림 2008/11/17 970
    250371 친구 바람얘기 지웠어요 4 원글 2008/11/17 1,400
    250370 휴대용 알카리수 1 초코우유 2008/11/17 274
    250369 다 괜찮은데 등을 못 긁겠어요 4 왼쪽팔이 불.. 2008/11/17 564
    250368 부모자식간 띠궁합 중요한가요? 18 띠궁합 2008/11/17 5,699
    250367 한약다이어트에대해서요 8 남편 2008/11/17 791
    250366 형이 공장 다니고, 난 대학갔다! 리치코바 2008/11/17 860
    250365 강경에 가려는데요.. 2 새우젓 2008/11/17 336
    250364 이십살 연하 총각에게 마음을 뺏기다 35 민망 2008/11/17 7,179
    250363 책 많이 보는 사람의 라식 수술 6 아직공부중 2008/11/17 1,292
    250362 얼마전에 과외비 기프트 카드로 받으셨던 분 2 호기심 천국.. 2008/11/17 1,606
    250361 백화점 네스프레소 매장 사람 차별하나봐요 8 2008/11/17 3,399
    250360 심상정 대표 글에 반박..."개방 않고 잘 사는 나라 없다" 리치코바 2008/11/17 465
    250359 급질)동치미 무우가 많이 쓰네요.-컴퓨터 앞 대기 동치미 2008/11/17 242
    250358 혈압잴때 맥박과는 2 혈압 2008/11/17 835
    250357 에스프레소 머신을 꼭 사야 할것 같아요... 14 티나 2008/11/17 1,970
    250356 충주호 5 이번 수요일.. 2008/11/17 402
    250355 세탁비 아끼는 법 좀 알려주세요 1 절약만이살길.. 2008/11/17 740
    250354 르크루제와 쿠이지프로 써 보신 분 계세요? 5 실리콘주걱 2008/11/17 878
    250353 진정한 부자는 검소한가봐여. 38 근검절약 2008/11/17 11,060
    250352 한예종 시험. 10 쵸코코 2008/11/17 1,626
    250351 대만생활 준비사항이 궁금해요 1 그냥그런 2008/11/17 327
    250350 우리아들이 변했어요 7 .... 2008/11/17 1,436
    250349 미네르바 할배글 모음.....수정완료...ㅠ.ㅠ 6 ㅠ.ㅠ 2008/11/17 1,877
    250348 저희 가정에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11 조언 2008/11/17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