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홀수의 방

| 조회수 : 1,078 | 추천수 : 2
작성일 : 2019-04-25 09:18:09

홀수의 방

                                                             박서영


  잊겠다는 말 너머는 환하다. 그 말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고 꽃나무도 한 그루 따라왔다. 꿈이었나봐. 흩어지는 기억들. 슬픈 단어들은 흩어진 방을 가진다. 너는. 나를. 그녀를. 누군가를. 사랑은 없고 사랑의 소재만 남은 방에서 너는 긴 팔을 뻗어 현관문에 걸린 전단지를 만진다. 잊겠다는 말은 벼랑 끝에 매달린 손. 이미 그곳에 있었지만 도대체 그곳은 어디인가. 떠나면서 허공에 던져놓은 너의 단어들. 흩어져 있는 너의 단어들이 흰 배를 드러내놓고 날아가는 걸 본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등을 돌렸다. 이제 내 몸에서 돋아나는 그림자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의 밤을 다 소비해야 한다. 우리의 그림자는 한 패가 아니다. 그림자는 암호처럼 커진다. 씻어도 투명해지지 않는다. 젖어서 흐물흐물 찢어지면 내부를 들여다볼 텐데. 이젠 버려야 하나. 어차피 한 패도 아닌데. 우리는 오로지 나였을 한 사람과, 너였을 한 사람이 되기 위해 붙어있다. 인정하자. 그러지 않으면 사랑에 빠져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으니. 가로등 불빛 아래 쭈그리고 앉아 그림자의 윤곽을 돌멩이로 그려준다. 내가 떠나도 바닥에 남을 뭔가를. 기억은 순간순간 그림자들의 방을 뺏는 놀이 같아.

  그 와중에 잊고 싶다는 말이 개미처럼 우왕좌왕한다. 그 와중에 미안과 무안(無顔)은 깊은 방을 만들고 있다. 나는 방을 잃고 현관문에 덜렁덜렁 매달려 있는 너의 손목을 붙잡고 있다. 오로지 너였을 한 사람을 발굴하듯이. 그래서 발굴된 영혼이 다른 영혼을 찌를 듯이 기억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 문학동네,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중에서




시인의 시집 제목이 끝자락에 나온 시


첫 문장이 나는 좋다

잊겠다는 말 너머로 보이는 가망없는 희망이 대책없이 밝아 보여서


미래형의 언어들은 자체발광 긍정이다

빌려 채운 세간살이가 더욱 반짝이듯이

 

돌려 막고, 

돌려 막아,

돌려 막으니,

지금은 온통 슬픔일 수 있다 




*사진위는 시인의 시 

*사진 아래는 쑥언늬 사설

*사진은 쑥언늬 동네에 이젠 지고 없는 꽃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우유
    '19.4.25 9:34 PM

    글도 좋고 사진도 좋아요
    좋은 글을 발췌한 원글님의 촉도 좋구요

  • 쑥과마눌
    '19.4.25 10:23 PM

    감사합니다^^

    같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제게 힘이 된다지요 ㅋ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3202 내장산~백암산 백양사의 가을 wrtour 2025.11.10 52 0
23201 우리냥이 2탄. 우리집 샴 자매님들 2 루루루 2025.11.10 172 1
23200 입양간 페르시안 사진 공개해요. 남은거 탈탈 5 챌시 2025.11.10 232 1
23199 비오는 날의 가을 도도/道導 2025.11.09 182 0
23198 코스트코 트러플 초콜릿 상태 봐주세요 꽃놀이만땅 2025.11.09 752 0
23197 내게 보이기 위해 도도/道導 2025.11.08 204 0
23196 어서 데려가세요. 집사님들, 페르시안 고양이 맞죠? 3 챌시 2025.11.07 1,053 0
23195 어중간하게 통통하시면 롱스커트 입어보세요. 7 자바초코칩쿠키7 2025.11.06 1,509 0
23194 히피펌 스폰지밥 2025.11.05 2,118 0
23193 수목원 가는 길 4 도도/道導 2025.11.03 681 0
23192 10월의 마지막 날을 기대하며 2 도도/道導 2025.10.31 614 1
23191 고양이 하트의 집사가 돼주실분 찾아요 3 은재맘 2025.10.30 1,408 0
23190 ,,,, 1 옐로우블루 2025.10.30 408 0
23189 내 행복지수는 2 도도/道導 2025.10.30 431 0
23188 우리 냥이 9 루루루 2025.10.30 996 0
23187 개프리씌 안부 전해요 11 쑤야 2025.10.29 673 2
23186 견냥이들의 겨울나기 10 화무 2025.10.29 770 2
23185 봄...꽃. 그리고 삼순이. 13 띠띠 2025.10.24 1,171 3
23184 설악의 가을(한계령~귀때기청봉~12선녀탕계곡) 6 wrtour 2025.10.21 795 2
23183 고양이 키우실 분~~ 1 주니야 2025.10.21 1,390 0
23182 어미고양이가 버린 새끼들 사진 3 현경 2025.10.19 1,855 1
23181 구조냥들 2 단비 2025.10.13 1,780 2
23180 숏컷 웨이브, 갖고 간 사진이요. 8 erbreeze 2025.10.09 3,965 0
23179 불 구경하는 사람들 2 도도/道導 2025.10.08 1,264 0
23178 출석용---죽변 셋트장 2 어부현종 2025.10.06 985 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