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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 어린 아들의 위로

| 조회수 : 1,320 | 추천수 : 58
작성일 : 2008-01-28 22:51:26

2007년 12월 29일

친정 엄마의 교통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에 갔었다.
어제 맘같았으면 새벽 차를 탔어야 옳았다.

그러나 처녀가 임신을 해도 할 말이 있다고 했듯이 발목을 잡는 급한 일들.... 첫차 놓치고, 둘째, 셋째 차 놓치고....
그렇게 번갯불에 콩구워먹듯 발을 동동거리다 탄 서울행 버스....

그렇게 목동의 한 병원에 도착하여, 달랑 한 시간 엄마 얼굴을 눈에 넣고 매몰차게 돌아온 산골.

용감하게도 하루에 서울을 왕복했다.
'등이 가려워도 손이 닿지 않는다'는 오지의 별명을 가진 이 울진에서...

병실에 누워 계신 엄마의 모습을 봤을 때는 울지 않았다.
냉정한척, 침착한척 가증스러운 연기를 하고 냉정하게 돌아섰었다.

이 정도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신이 도왔다고 떠벌리기까지 했다.

'동서울-->울진'이라고 버스 앞 유리에 이름표를 턱 붙여 놓은 버스를 타고서야 눈물이 삐질삐질 삐져나온다.

친정 엄마는 막내 딸만큼은  박사 학위를 턱하니 따길 바라셨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다닐 때도 박사과정이든 , 일본유학이든 가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바람에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많이 혼나셨지만 엄마의 교육열은 조금도 식지 않으셨었다.
당신의  뼛가루를 팔아서라도 그렇게 만들고 싶어 하셨다.

엄마의 그 헌신적이고, 눈물겨운 교육열을 난 엄마 발뒤꿈치의 때만큼도 못따라간다.

그런 엄마가  막내 딸이 농사짓는다며 산골로 들어앉는 모습을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보셔야 했다.
난 귀농이 새로운 삶 어쩌구 저쩌구 하며 마음을 다잡고 내려왔지만 엄마에겐 천재지변에 가까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병실의 엄마에게 더 가슴미어지게 미안했다.

그렇게 내 정신인지, 니 정신인지 분간 못하는 나를 집어 먹고 버스는 그 꼬부랑 밤길을 용케 달려 울진에 턱하니 다시 토해 놓았다.
아까 서울가면서 세워 놓은 산골 차가 왜그리 낯설게 느껴지는지...
아주 먼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들 정도로 낯설어 그 똥차를 자꾸 만져 보았다.

걱정하는 초보농사꾼에게 서울상황을 설명하고 안심시켰더니 딸과 아무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새벽까지 마주 앉은 사람은 나와 고 1이 되는 아들 선우.

엄마를 위로하려는 표정이 역력하다.
선우는 뭔가 마음이 어수선하면  방을 돌아다니는 버릇이 있다.
초보농사꾼 딱 닮았다.

그 놈이 손을 내민다.
어렵게 내가 말을 토했다.

"선우야, 엄마가 달랑 한 시간 할머니를 보고 왔구나"

"엄마, 다음부터는 후회할 일 하지 말아요. 엄마는 산골도 걱정되고, 우리도 걱정되고, 집짓는 것도 걱정되어 그렇게 아쉽게 돌아오셨을 거예요.
그러나 엄만 잘못 하신 거예요. 다 끊고 서울 할머니 곁에  계셔야 했어요. "

선우도 그 새벽까지 깨어 할머니 걱정, 엄마 걱정을 하고 있어서 힘들었는지 눈에 핏발이 섰다.

"니 눈에 핏발이 섰구나. 그만 자거라"

"엄마 , 엄마 마음 다 알아요. 엄마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다음에 이런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후회할 일 하지 마시고 뒷일은 그냥 끊으세요. 그냥 끊으셔야 해요. 후회하지 않아야 한다구요.
엄마가 늘 그러셨잖아요.
할머니 두 분은 이제 한번 손놓으면 그만이라고...
그러니 엄마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세요."

어린 아들의 위로가 시린 맘을 녹여준다.
나보다 속깊은 아들도 자고, 이젠 나만 깨어 있다.
이제 내가 나를 위로할 차례다.

그러나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난 자신을 모질게 질책하는 밤이다.

얼마 전에 읽은 '속세의 인연'이라는 벽안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쓰신 편지글이 생각난다.

"속세의 인연"

초겨울에 문안 인사를 올렸는데
남도에는 벌써 봄이 왔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소승은 겨울 내내 방 안에 앉아 열심히 좌선을 했지만
마치 넓은 강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아서
어느 날에나 부처의 뜻에 다가갈지 모르겠습니다.

속세의 인연을 다 할 수 없어서 어머님의 간병을 위해 만부득이 잠시 산을 내려갈 생각입니다.
곁에 있는 도반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지 없지만
이 하찮은 중생은 끝내 연을 끊을 수가 없습니다.

어머님이 동자인 나를 절에 맡기고 갔던 그 애절한 마음이나
아들인 제가 속세의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는 마음이 그리 다를 것이 없으나 인연이란 만부득이 버릴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 결국 결심을 해야 했습니다.

원래 중놈은 그리움이란 헛된 망상을 버려야만 함에도 시름시름 앓는 어머님을 두고서
밤마다 이렇듯 가슴이 미어져 오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피안(彼岸)행 열차를 버리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지막 남은 어머니에 대한 죄를 사하는 길이오니
부디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난 아직 멀었다.
내가 조금의 지혜라도  깨우쳤을 때는
엄마는 벌써 별이 되어 산골의 막내 딸을 두 손 모으고 비추고 있을 것이다.

산골에서 배동분 소피아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호례
    '08.1.29 8:14 AM

    가슴 짠하게 합니다 글중에
    당신의 뼈가루를 팔아서라도,,,,,,,대목에는
    저가슴에 무엇이 치솟네요 너무도 공감하며 아드님 철도 일찍 들었네요

  • 2. 깐돌이
    '08.1.29 11:14 AM

    어려운 형편에 공부 더 하라 떠밀지 않은 어머니지만 제겐 같은 시내에 친정 어머니가 계십니다. 주말마다 뵙고, 평일에도 아무때나 가고 싶으면 가서 뵐수 있는 거리 입니다.
    그런데도 님의 글 읽으면서 눈에 눈물이 저도 모르게 고이며 마음이 찐하고 아려오네요.
    매일 아프시다 해도 내 볼일 있을때 어린아이 몇시간 봐 주실수 없는 몸이라도
    오래만 계셔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 항상 하고 있답니다.
    이제 님의 어머니께서도 당신말 듣지 않은 미운 막내딸이라도 그저 언제까지나
    짠하고 보듬어 주고픈 내 새끼라는 생각만 하시지 않으실까요.
    너무 맘 아파하지 마시고 내생활에 충실하면서 수시로 안부전화라도 하시고
    형편 되시는데로 고단하지만 한번씩 뵐수 있음 좋겠네요.
    다행이 빨리 철든 아들이 있어 마음 든든하시겠어요. 가끔 엄마가 자리 비워도
    대신해줄 수 있고 알아서 도와줄 수 있을것 같은데요.
    잘 키우셨네요. 친정 어머님의 건강도 빨리 회복하시길 바래요.,

  • 3. 골고루
    '08.1.29 7:25 PM

    마음이 아픕니다.
    어머니의 마음을 그 깊은 속을 어떻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내가 자식을 키우고 18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물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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