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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편지 -- 올갱이국 한 그릇에 담긴 행복

| 조회수 : 1,545 | 추천수 : 66
작성일 : 2006-07-03 11:23:29
2006년 6월 6일

새소리에도 강약이 있고, 늘 그 소리가 그 소리인 것같은 물소리에도 고저와 장단이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인생의 악센트가 다르다.
명예에 모든 에너지를 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방끈에, 돈에, 폼나게 사는 것 즉, 겉치례에 악센트를 두는 사람 등 가지 각색이다.

예전엔 나도 그런 것들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아이들을 자연에서 키우고, 내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는 삶을 선택한 지금은, 과연 어디에 악센트를 두고 있는지,
오늘은 날잡고 점검해 볼 일이다.
*******************************

주현이가 현충일이라고 선생님, 친구들과 올갱이를 잡으러 간단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이런 모습을 산골에서는 자주 본다.

그렇기에 산골에서는 스승이 여럿이다.
불영계곡이 스승이요, 이제 막 알을 깐 박새가 아이들의 스승이요, 오늘은 올갱이가 딸 주현이의 도반이자 스승이었을 것이다.

불영계곡 유리알같은 물 속에서 건져 올린 올갱이를 신주단지 모시듯 가슴에 안고 주현이가 왔다.
PET병을 반으로 자르고 올갱이를 넣었으니 물흘리지 않으려고 땀꽤나 흘렸지 싶다.

그러고는 밭에까지 쫓아와 언제 올갱이국을 끓일 거냔다.
지금처럼 바쁜 농사철에 손이 많이 가는 올갱이 국을 끓이자니...
시어머니가 따로 없다.

지애비가 자빠지게 좋아하는 것이 올갱이국이라는 것을 아는 주현이의 속내를 알기때문에 호미를 던지고 내려와 주현이와 올갱이 요리를 시작한다.

먼저 된장을 풀어 올갱이를 끓인 후, 건져 불에 소독한 바늘로 일일이 올갱이를 깐다.

크기가 얼마나 작은지 어떤 것은 알맹이가 하루살이만하다.
얼마를 도끼눈을 뜨고 올갱이를 깠을까.
눈이 다 아프다.

그러나 그릇을 들여다 보니 바닥도 못덮었다.

잊은듯이 신경끄고 작업을 해야지 조바심냈다가는 심장병 걸리기 딱이다.

그래도 군말 않고 주현이는 잘도 깐다.
아마도 지애비가 좋아할 그 모습을 떠올리며 깠을 것이다.
다 까고 들여다 보니 어른 한 주먹꺼리밖에 안되지만 여간 소중한 재료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아까 끓였던 된장국에 올갱이와 궁합이 맞는 부추를 송송 썰어넣고, 청양초 숭숭 썰어넣고 송글송글 끓이면 올갱이국 완성!!

이번에는 주현이가 밭에서 일하는 애비를 재촉한다.
그 애비는 자주 먹을 수 없은 국임을 알았는지, 주현이의 마음씀을 자랑하고 싶었는지 이웃 형 부부를 불렀다.


흙에서 땀흘려 일한 몸을 씻고 산중에서 먹는 올갱이국 맛이 어떠했을까.
말하면 잔소리지싶다.

말주변 없는 초보농사꾼도 주현이의 공로(?)를 몇 번이나 오버해가며 치하해 준다.

사는 것 별 것 아니다.
무궁화 다섯 개짜리 호텔에서 외식한다고 해서 가슴팍 뻐근하게 행복한 것도 아니고, 해발 500고지가 넘는 오두막에서 올갱이국을 먹는다고 해서 김빠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사는 기분이 째지고 안째지고는 그런 기준이 아니다.

13살짜리 딸이 올갱이를 잡아다 아빠를 위해 커봤댔자 원기소 알만한 올갱이를 까는 그 정성과 사랑으로 치자면 호텔 외식에 댈 게 아니다.

이웃과 함께 올갱이국을 먹고 늦은 밤 마당에 섰다.
오두막 뒤 두릅산에서 캥캥 우는 노루도 잠들고, 나를 늘 긴장시키는 밉살맞은 뱀도 잠든 시간.

화려하게 피어 온통 산골을 장식한 줄장미처럼 우리 주현이의 마음도 늘 화려하길...
멍석만한 팔을 뻗치고 핀 벌노랑이꽃처럼 그의 마음이 내내 따사롭기를 빌어본다.

산골 오두막에서 배동분 소피아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야미
    '06.7.3 2:49 PM

    주현이가 넘 기특하네요^^ 올갱이국 넘 맛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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