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클릭한 고흐의 그림들 앞에서 서성대다가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고흐를 찬찬히 보고 있는 중이지요.

이번 주에 주문해서 구한 책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내 이름은 빨강이란 소설입니다.
제목이 참 특이하지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이 배경인 소설인데
다음 주 토요일 떠나는 여행전에 가능하면 많은 이미지를 담아서 가려고
교보에서 고른 소설이지요.
그런데 그 시기의 화가들에겐 스타일이나 서명이 불완전의 표상이었고
선배들의 전범을 따르는 것이 완전함을 지키는 것이었다는 이야기
베네치아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초상화에 대해서 들어보거나 직접 본 화가들이
놀라면서 그들이 술탄을 그릴 때 가장 술탄다움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닮았다거나 똑같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않되는 것에 비해서
초상화의 인물은 대면한 적이 없다 하더라도
그 인물을 그림에서 본 경우라면 길거리에서 만나도 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면서
놀라는 대목이 나오더군요.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있으려니 소설속의 그 대목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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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자화상입니다.
자화상하면 단연 고흐와 렘브란트이지요.
저는 고흐의 자화상은 너무 마음이 아프고
물론 렘브란트도 말년에 가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는 것이 덜 힘이 들더군요.
자신을 응시하면서 그려내는 화가의 마음속에 떠올랐을 생각들을
혼자 더듬어 보게 되면서 동시에 나는 어떤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간
그래서 초상화나 특히 자화상을 보는 시간은 다른 그림을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그림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나 유명한 그림이지요.
그런데 이 그림은 그저 그림이라고 생각하고 멀리 떨어져서 관찰하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그림입니다.
요즘의 우리들 주변에서도 상대적인 빈곤으로 혹은 절대적인 빈곤층으로 몰락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고
그것에 대해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도 어려운 사정이고 보면
그저 마음으로 그들이 삶의 고비를 잘 넘길 수 있도록 기도하는 마음뿐이네요.
사회적인 복지가 어려운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개인의 선행에 기대어서
자신의 경제적인 처지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사회복지란 단순한 호사가 아니라
꼭 해결해야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는군요.
치과 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말을 듣고
치과의사를 오빠로 둔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가 왜 그런 것에는 보험이 되지 않는가
참 이상하다는 말을 했더니
요즘 치과와 한의원이 불경기 영향을 가장 심하게 받는 모양이라고 하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말이 공연히 나온 말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요?
말은 그렇게 하고 말았지만 참 비장한 마음이 되었던 생각이 떠오르네요.

전도사였던 고흐의 이력을 생각하면 이런 그림이 어떤 마음에서 나왔을까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번 여행에서 신약성서에 나오는 에베소서의 바로 그 에베소에 가는 일정이 있더군요.
터키에 아브라함의 고향도 있고 바울의 전도 여행지도 있으며
요한 복음의 저자 요한이 살던 곳
그가 예수의 부탁을 받아들여서 마리아의 말년에 함께 했던 지역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니 문명의 시원이자 문명의 혼합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이란 말이 실감이 납니다.
가기 전에 신약성서를 다시 꼼꼼히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제가 좋아하는 고흐의 그림중의 하나입니다.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함께 듣고 있는 음악이 힌데미트의 화가 마티스인데요
사실 그런 작곡가가 있다는 말만 들었지 들어보긴 처음입니다.
어제 읽은 음악이 흐르는 명화 이야기에서 그의 이름을 읽었는데
오늘 이동활의 음악정원에 가보니 그 곡이 있네요.
그 곡이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에서 딴 제목으로 표제를 붙였다고 하는데
그 곡을 소개한 분이 이젠하임 제단화를 일일히 소개하면서
곡을 올려주셨더군요.
요즘 제겐 그 곳에 들어가서 날마다 새로운 곡을 들어보는 것이 얼마나 기쁨인지 모릅니다.
아마 어제의 글읽기가 아니었더라면 그 곳에 그 곡이 있어도 그저 글자에 불과했었을텐데
그런 조그만 우연이 새로운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저 조금만 마음을 열면 얼마나 많은 새로운 것들이
혹은 알고 있었어도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우리들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가
그것이 바로 일종의 기적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림도 제목이 씨뿌리는 사람인데요
밀레에게 깊은 감동을 느낀 고흐가 밀레의 그림을 보고 나름대로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분위기가 다르지요?

원래는 화가 마티스라는 음악을 올렸는데요
그림 보면서 대강 들을 음악이 아닌 것 같아서 지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