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Banner

엄마가 많이 늙으셨어요

까칠마눌 조회수 : 2,934
작성일 : 2025-10-09 19:17:05

가끔 여기에 음식 솜씨 없는 양가 어머니 이야기로 웃음을 주었더랬죠. 

멀리 살다보니 그런 글은 늘상 명절에 만나고 온 뒤로 쓰게 되던.

욕하려는 거 아닌 거 아시죠?

 

양가 어머니들이 음식을 못하는 이유가 있어요. 타고난 손맛을 탓할 수만은 없는, 너무도 가난했던 삶이

다양한 식재료를 구매해 이런 저런 요리를 하며 솜씨를 갈고 닦을 수가 없는 삶이었어요. 

무능한 남편들을 대신해 가정경제를 이끌어가자니 음식을 할 시간도 없었구요. 

한정된 재료로라도 뭘 해먹어볼까 이런저런 궁리를 할만한 여유가 없는 삶이었음을 제가 너무 잘 압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고 애잔하고 애틋해서 웃을 뿐, 적어도 제게 있어 두분의 음식은 흉거리가 아니에요. 그분들의 치열한 삶에대한 증거니까요. 

 

그런 두 분이 키워낸 아들과 딸은, 그 치열했던 삶 덕분에 온갖 식재료 다 사다가 이것저것 요리할 수 있는 돈도, 시간도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네, 제가 요리 좀 합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도 없이 내려온 아들과 손주들을 거둬 먹이느라 진을 뺀 나머지, 

도저히 해 줄 음식이 없어 혼자 고민 끝에 카레를 하셨던가 봅니다. (미리 말씀드려요, 저 음식 해서 보냈습니다. 어머님이 애들 추가로 뭘 해 먹이고 싶으셨던 거죠.) 고기 감자 양파 당근 애호박;;;; 넣고 카레를 하기는 했는데, 

시판 카레 가루가 아니고, 어디 그 있잖아요, 할머니들 모아놓고 건강식품 파는 체험관? 그런데서 파는 100% 강황가루를 들이부은 거지요.....;;;; 시어머니의 언니분이 그 강황가루가 카레가루라고 이야기 해 주셨더랍니다.................. 뭐... 이후는 얘기가. 

 

아들과 손주들을 서울로 보낸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더라고요. 본인이 한 카레를 애들이 손도 안대는데, 너는 카레를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래서, 아, 어머님 저희 애들이 돼지고기 카레를 안먹어요, 했더니 소고기 넣었다, 양지! 하시더라고요. 아니 그럼 뭐 이상할 게 없는데... 했더니 강황가루. 그 강황가루.  카레가 걸쭉해 지지가 않던데, 갈분을 안넣어 그런거냐? 이러시는데 하하하, 어머니 그게 그게 아니고... 설명을 해 드렸더니 어머니도 웃고 마시고. 뭐 그랬죠.

 

남편은 처가에 들러 서울로 복귀했고, 애들이 우당탕탕 할머니집 카레 이야기를 하고, 저도 그냥 웃고,

친정엄마가, 돈 버느라 명절도 못내려온 딸 안쓰러워 명절 나물을 몇가지 싸서 보냈더라고요. 

일단 시어머니가 싸서 보낸 음식을 풀어 남편이랑 둘이 밥을 먹으면서 어머님 음식솜씨도 참.... 하고 웃는데, 남편이 그러는 겁니다. 난 그래도 있잖아, 나물 하나를 먹어도 울 엄마 나물이 맛있어. 장모님 나물보다. 

 

그 말에 그냥 웃었어요. 울 엄마가 그래도 제사를 40년 지낸 내공인데, 나물은 잘 하시거든요. 

제가 혼자 속으로 나물을 이만치 하는 사람이면 손맛이 영 없는 사람은 아닌건데, 쩝. 했으니까요, 예전부터.

(울 엄마, 갈비찜 엄두가 안나서, 명절 되면 갈비만 사 놓고, 제가 친정와서 조리하기만 기다리는 분이세요. 하하하)

그냥 입맛이라는 게 원래 자기 엄마한테 길들여 지는 거지, 우리애들 봐라, 돼지고기 카레 기겁하는 거. 하고 말았어요. 

 

그리고 오늘, 엄마가 보낸 나물들 풀어헤쳐서 밥하고 먹는데,

너무 슬퍼서 눈물이 났어요. 

나물들 간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안맞아요. 콩나물 하나 간이 딱 맞아서, 나머지 나물들이 더....

도라지는 혀가 아릴정도로 쓴데 짠맛은 하나도 없고,

고사리는 제대로 불려지지 않아 뻣뻣한데 짜기는 겁나 짜고

시금치와 초록나물은 어떤게 시금치고 어떤게 초록나물인지 모르게 둘 다 너무 푹 삶아 니맛도 내맛도 아닌데 음식을 짜게 한다는 강박때문에 소금을 너무 적게 넣어서 맛이 하나도.... 정말 하나도....

 

그 나물들 먹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우리 엄마가 이제 정말 늙었구나, 간을 하나도 볼 수 없을만큼 늙었구나.

나물 하나를 먹어도 울엄마(시어머니) 나물이 맛있더라 하던 남편 말이 그냥 자기 집 입맛 말이 아니었구나 싶은게...

 

그냥. 

슬프네요. 

IP : 58.231.xxx.46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
    '25.10.9 7:24 PM (218.52.xxx.55)

    슬프네요.
    그래도 까칠마눌님의 예쁜 마음이 글의 결마다 스며있네요.

  • 2. 소망
    '25.10.9 7:37 PM (122.46.xxx.99)

    어머니 살아 계실제 같이 행복한 시간이 많으시길 빕니다.. 멀리 소풍 가 계시는 엄마 보고 싶네요.

  • 3. 그러게요
    '25.10.9 7:51 PM (125.178.xxx.170)

    전라도 출신 엄마
    진짜 모든 음식이 맛있었는데요.
    80넘어가는 어느 날부터
    맛이 예전과 많이 달라요.
    이번에도 반찬 몇 가지 싸줬는데
    그 좋아하던 것들이 맛이 없어요.
    슬프죠.

  • 4. 님.
    '25.10.9 9:33 PM (125.132.xxx.115) - 삭제된댓글

    글도 마음도 예쁘세요. 행복하세요!^^

  • 5. 님.
    '25.10.9 9:35 PM (125.132.xxx.115)

    글도 마음도 예쁘시네요..슬픈 글인데 글을 읽은 제 마음은 따숩습니다.

  • 6. ooooo
    '25.10.9 10:28 PM (211.243.xxx.169)

    그렇게 한 세대가 저물고 흘러가는가봐요

    원글님 글 사이사이 고운 마음이 느껴져서
    더 슬프네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762400 동남아 여행 가지 마세요(베트남, 태국... 납치 피해 속출) 9 ... 2025/10/09 6,574
1762399 노벨문학상 발표 2 ㅇㅇ 2025/10/09 2,421
1762398 몰튼브라운 바디워시 좋나요? 8 ..... 2025/10/09 1,559
1762397 가구에 테이프 끈적자국 어찌 없앨까요? 8 바다 2025/10/09 1,132
1762396 방안 쿰쿰한 냄새 제거에 효과적인 거 부탁드려요 4 .. 2025/10/09 2,058
1762395 집 청소 다하면 큰맘 먹고 가방 사러 가려고 했거등요 12 2025/10/09 3,189
1762394 부동산은 심리 8 .... 2025/10/09 1,429
1762393 여행중인데 인도사람들 ... 23 ㅠㅠㅠㅠ 2025/10/09 4,530
1762392 문 정권 때 집 2채 중 청주 집 팔았던 사람이 누구였죠? 6 .. 2025/10/09 1,505
1762391 부동산) 서울에 공급해야하나요? 35 수도권주민 2025/10/09 1,689
1762390 냉무 속보)박성재 전 장관 구속영장 청구 16 박성재 2025/10/09 3,138
1762389 사랑의 전설 드라마(최민수 황신혜주연) 기억하시는분? 3 parva 2025/10/09 841
1762388 35년전에 산 금시계가 있는데요 8 Ethjk 2025/10/09 4,140
1762387 세무자켓 묻어나는데 2 뽀연 2025/10/09 433
1762386 나솔28정희가 젤 괜찮아요 3 2025/10/09 2,715
1762385 영피프티 한동훈 정치대신 골드버튼을 향해 매진하길 5 00 2025/10/09 796
1762384 PASS어플 로그인 저만 에러 뜨나요? 2 .. 2025/10/09 269
1762383 65세이상체육지원금 5 체육 2025/10/09 2,884
1762382 접촉사고 내잘못이 100일때 나중에 보험접수해도 되나요? 9 운전 2025/10/09 896
1762381 “백성이 어려움이 있으니 문자를 만들었다.“ 12 ㅠㅠ 2025/10/09 1,531
1762380 가정 내 제 자리가 없는거 같아요 20 .. 2025/10/09 3,550
1762379 가왕 조용필도 요즘 같으면 데뷔 못 했겠죠? 17 조용필 2025/10/09 3,554
1762378 학생증없이 영화못보나요? 8 llll 2025/10/09 485
1762377 다크초콜렛 맛없어요 6 ㅡㅡ 2025/10/09 919
1762376 선물받은 멜론이 하나도 안달아요 6 현소 2025/10/09 1,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