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결혼한 지 22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남편은 분노 조절이 전혀 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1, 2, 3, … 10으로 간다면, 이 사람은 1, 2에서 바로 10까지 뛰어갑니다.
상황의 인과관계나 합리성을 따지지 않고,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 아닌데도 폭발하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노력도 하고, 설명을 해보기도 했지만,
세월이 지나니 이건 누가 뭐라 해서 바뀌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화를 낼 때는 매우 폭력적입니다. 신체 폭력도 있었고, 집기를 던지는 일도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저는 주눅 들어 살았고, 그의 비위를 맞추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화가 나면 늘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돈을 못 버는 사람도 아닌데, 생활비를 무기 삼아 통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과할 줄도 모릅니다.
분노가 터질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끌어다 붙이고, 오래된 일까지 들먹입니다.
거짓말도 자주 합니다.
기억에 남는 많은 일이 있는 데, 그중 하나는 제가 첫 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 중일 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아랫부분을 보자고 했고, 저는 너무 수치스럽고 싫어서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화를 내며 끝내 보여달라고 압박했고, 친정엄마가 문 밖, 거실에 있는 상황에서도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 결국 울면서 보여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출산 장면을 지켜본 뒤 ‘다시 성관계가 가능한 상태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더 씁쓸했던 건, 당시 그 상황을 모두 보았던 친정엄마가 제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시 친정아빠 사업이 망한 상태였고, 엄마는 남편이 종종 목돈을 주는 것에 의존하던 상황이라, 오히려 남편 편에 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엄마와 남편 사이에서 점점 고립되고, 마음이 피폐해졌습니다.
이 관계에 변곡점이 있었던 건, 큰아이가 좋은 고등학교에 합격했을 때였습니다.
저는 기뻤지만, 남편은 어딘지 불편해 보였고, 며칠 후 법원에서 이혼 신청서를 가져와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 입학 준비며 학원비 등 돈이 필요한 시점에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주도권을 빼앗긴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저는 변했습니다.
친정엄마에게 속상함을 털어놓고 오회려 더욱 정서적으로 당한 듯 하였습니다.
깊이 생각했고,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과외를 시작했고, 처음엔 힘들었지만 지금은 자리를 잡았습니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아이들도 거의 다 키웠습니다.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우울감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친정엄마와는 거의 연을 끊었고, 그 후에도 마음이 약해져 다시 연락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엄마 역시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한 달 전쯤, 남편이 예전처럼 별일 아닌 걸로 전화로 욕을 하고 고성을 질렀습니다.
질리더군요.
다음 날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더니, 머리가 아프다며 다음에 얘기하자고 하더군요.
그걸 계기로 저도 입을 닫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생활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제가 돈을 벌더라도, 이게 은근히 기분 나쁩니다.
남편은 일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늘 그랬듯, 괴로운 척, 아픈 척, 술·담배를 더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약봉지를 보이는 곳에 두고,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아들이 군대에 갑니다.
요즘 남편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았고 저도 그에 대해 반응하지 않으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설명해주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늘 그랬습니다. 감정적 골을 본인이 만들어놓고, 풀어주지 않으면 온갖 괴로운 척, 아픈 척을 하면서 주변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성향상, 실제로 제가 ‘이혼하자’고 하면 겉으로는 그러자고 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저를 말라죽이듯 괴롭힐 것 같습니다.
아직 제가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눌려 살아서일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게 느낍니다.
그리고 요즘은 다툼이나 감정의 골이 없는 상황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남편이 매우 잘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다고 해서 마음이 열리진 않습니다.
최근 뉴스에 나온 ‘송도 총기 사건’을 보면서도, 그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남편도 그런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 수 있는 성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정말 그 선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두렵습니다.
이 관계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말을 안하고 풀어주지 않으면 본인이 만든 이유나 상황은 생각하지 않고
또 분노를 폭발하고, 상대의 감정을 계속 고조시켜서 동요하게 만들고
똑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려 하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이혼이 답이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고, 어떻게 제가 좀 인간답게 살 수 있을지 고민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