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보자
산 아래 외딴 집이 있었다
이 집 주인은 별명이
'두고 보자'는 사람으로
무엇이고 적당히 미루며
살고 있었다.
외상빚도 두고 보자
두엄 낼 일도 두고 보자
울타리 손볼 일도 두고 보자
딸자식 시집 보낼 일도
두고 보자
그런데 어느 날
보름달이 훤히 떠오른 밤이었다.
날이 추워서 배가 고파진 족제비가
산에서 내려왔다.
그러고는 엉성한 이 집의
울타리 구멍에
고개를 들이밀고서는
닭장을 가만히 엿보고 있었다.
이때 이 집 주인 '두고 보자'도
마루에 나와 있었다.
그런데 웬 족제비라는 녀석이 울타리 구멍에서 닭장을
엿보고 있지 않은가
'두고보자'는 눈을 부릅뜨고
중얼거렸다
"이 놈, 우리 집에 들어오기만 해라."
그러나 웬걸!
족제비는 울타리 구멍을 훌쩍
빠져나오더니 닭장을 향해 날쌔게
달려가지 않는가
주인 '두고 보자'는 흥분해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네 놈이 우리 닭장에 들어가기만 해 봐라"
그런데도 족제비는 닭장 속으로
훌쩍 뛰어들어갔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행동이었다
'두고 보자' 주인은
두 주먹을 허공에다 휘두르며 말했다
"저런 겁 없는 놈이라니,
이 놈, 우리 닭을 물어가기만 해 봐라. "
그러나 보라
족제비는 잽싸게 암탉의 목을 물고는 닭장에서 뛰쳐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울타리 구멍으로 빠져나가
내빼고 있지 않은가
그 뒤에서 '두고 보자' 주인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소리소리 지르고 있었다.
"이 놈!
죽일 놈 같으니
다시 나타나기만 해 봐라."
두고만 보고 있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