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수고했다 선풍기...

갱스브르 조회수 : 1,243
작성일 : 2014-09-16 22:49:56

해가 지면 선풍기 바람이 차다

그래도 정리하지 못하고 아직도 방 한 켠에 있다

여름 내내 쉬지 않고 돌았다

돌릴 줄만 알았지 선풍기 날개 사이사이 먼지가 낀 것도 몰랐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놀던 아이의 얼굴에 검댕이가 묻은 것처럼 꾀죄죄하다

웃기지만 가끔 사물에 표정이 보이는 때가 있다

내가 늘 쓰고 조물락거린 체취와 방향이 묻어난다

컵은 늘 그자리 내 오른손을 향해 있고

가족들이 함께 쓰는 공동 물품도 유독 내 손때가 묻은 것에 정이 간다

노상 만지는 쪽으로 색이 바래지고 모양도 약간 뒤틀림이 있다

굴러다니는 휴지조각도 내 방에서라면 느낌이 다르다

함께 한 선풍기는 날개에 낀 먼지 뿐만 아니라 자기 전 타이머 조작으로 그 부위

센서가 심히 눌려 다시 한번 꾹 눌러줘야 한다

가장 약한 바람인 미풍은 망가졌고

약풍이 미풍처럼 돈다

바람세기가 다 약해져있다

덜덜거리는 소리도 나지만 소음으로 거슬린 적이 없다

오히려 약간 선풍기 앓는 소리가 잠을 돋운다

수리해서 몇 계절 더 써야지 싶은데

코드 비닐도 벗겨지고 아무래도 더 못 버틸 것 같다

문 열다 부딪히고 발로 밀어놓다 넘어지고 회전이 안 된다고

탁탁 때리다 목이 반쯤은 꺾였고 ...

망가졌나 싶으면 또 돌고..

모양은 병든 닭처럼 졸고 있는 거 같은데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7년 이상 쓴 노트북이 어느 날 갑자기 아웃된 적이 있다

조심조심 곱게 썼다 했는데 자료가 다 날아갈까 응급실 뛰어가듯

혼비백산 AS센터로 달려간 기억...

기사님은 수명이 다했고 수리하느니 새로 사는 게 낫다고 한다

상술인가 싶어 다른 곳에 가니 같은 말...

기계치인 사람은 안다

손에 익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이 얼마나 복잡한지

사람 사귀는 것과 비슷하다

새신이 내것이 되려면 뒤꿈치가 까지고 난 후다

마지막이라도  깨끗하게 만져줘야 겠다

물건을 버릴 때 주의해야 함을 아무렇게나 버려진 모양을 보며 생각한다

그 주인의 얼굴이 보인다

IP : 115.161.xxx.209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이번에
    '14.9.16 11:08 PM (180.228.xxx.78)

    샤워커튼 주문하며 걍 기존것과 똑 같은 무늬로 하니 고민 안해도 되고 좋네오,
    입던 옷, 신던 신발이 해지면 그냥 똑같은걸 구입하고 싶은데 안팔더라구요.........
    유행은 너무 빨리 지나가나봅니다.

  • 2. 26년된 베이비 선풍기 쓰네요
    '14.9.17 1:19 AM (175.195.xxx.86)

    원글님 글 보고 계산해보니 26년이 되었다는.
    저도 계산해 보고 깜짝 놀랐는데.... 하나가 더 있네요. 벽시계가 같은해에 저에게 왔거든요.

    작년에 20년된 가스렌지 교체하면서 사진 찍어두고 그동안 우리집에 노력 봉사해준 노고에 감사의 묵념까지 했네요. 세탁기랑 냉장고도 거의 20년을 쓰고 우리집과 작별할때 감사의 묵념하고.

    저는 사물에게 그리 하는 저를 남들이 알면 특이하다 할꺼라고 생각하고 웃었는데 원글님도 비슷한 느낌이 나요. 사물은 변함없이 봉사해주는데 사람맘은 수시로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 3. ^-^
    '14.9.17 9:45 AM (125.138.xxx.176)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이런글 좋습니다
    며칠전 세탁기가 잠시 애를 먹이다가
    다시 작동이 잘되었을때
    새삼 고마운 생각이 들어서 툭툭 두드리며 고마워~ 했어요
    불평한마디 없이 주인이 누르는 손길대로 움직여주는 고마운 애들..
    생명이 없는 기계라도 그런생각이 들더라구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427328 이런시어머니 이해하기힘드네요.. 18 ㅠㅠ 2014/10/14 4,096
427327 연근가루를 밀가루대신 써도 될까요 2 부침개 2014/10/14 1,067
427326 다 키워놓은 자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108 123 2014/10/14 39,493
427325 이걸 보니 텔레그램으로 갈아타볼까가 아니라 갈아타야만 한다는 생.. 7 아마 2014/10/14 2,250
427324 탈모 티 안나는 머리...? 1 124 2014/10/14 1,310
427323 재활용 질문이예요~~헌양말 등등 3 ㅇㅇ 2014/10/14 3,448
427322 시험관이랑 인공수정 차이 아시는분 10 ... 2014/10/14 8,465
427321 108배 절운동..가볍게 봤는데.. 3 추천 2014/10/14 3,955
427320 이혼시 집이 남편 명의라면 2 .... 2014/10/14 2,077
427319 동서식품 이마트 환불건 상담내용 11 환불 2014/10/14 3,207
427318 [기획연재]북한의 지하자원⑤ 철저한 국가 통제 아래 수출까지 하.. NK투데이 2014/10/14 647
427317 담임선생님 결혼 23 초등 2014/10/14 4,137
427316 유체동산 경매에 대해 잘 아시는 분.. 2 조언 좀.... 2014/10/14 3,024
427315 1인용전기장판 어느브랜드가 좋을까요? 4 .. 2014/10/14 2,237
427314 집에 컴퓨터 없고 2 학생 있고 2014/10/14 905
427313 동서식품씨리얼 1 환불 2014/10/14 1,945
427312 고객을 진심으로 대하는 쇼핑몰 6 ㅇㅇ 2014/10/14 2,634
427311 교사이신 분들께 질문입니다 2 교사이신 분.. 2014/10/14 1,960
427310 "검찰'사이버 검열'은 유신,공안 통치 하겠다는 것&q.. 샬랄라 2014/10/14 585
427309 중문달면 따뜻할까요? 11 알려주세요 2014/10/14 4,402
427308 서울에 24평 아파트 5년째 가격변동이 전혀 없는데.. 4 별빛이흐르는.. 2014/10/14 2,727
427307 검찰은 보고, 엄마는 볼 수 없는 카톡.jpg 6 정말 2014/10/14 1,709
427306 실비보험 청구할때 서류..진료확인서와 진료챠트..둘중 어느거예요.. 4 돈 받자 2014/10/14 4,113
427305 키가 작아서 애들한테 함부로 당한다고 생각하는 초 3 남아.. 12 뭐라고 2014/10/14 2,543
427304 독일어 배우신 분 도와주세요! 2 ... 2014/10/14 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