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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마음의 그릇 - 할머니의 물항아리

| 조회수 : 10,455 | 추천수 : 17
작성일 : 2012-02-26 14:19:27







어린 시절 저는 하루 두번 버스가 들어오는 산골에서 할머니와 살았습니다.

몸이 약한 어머니께서 동생들을 연달아 낳으셨기 때문에

맏딸인 저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전까지 친할머니께서 키워 주셨습니다.

 

 

어스름 새벽빛이 창호지 문을 뚫고 들어오면

저보다 먼저 일어난 할머니의 잦은 기침 소리가 들려 옵니다.

조금더 잠을 청하려고 아랫목으로 파고 들지만

배고픔이 잠을 깨우는 아침.

할머니는 부엌으로 가서 군불을 떼시고

저는 마루밑 광으로 기어 들어가

감자를 꺼내 옵니다.

 

 

밥위에 얹어 찌면 분이 뽀얗게 올라올 감자를

숟가락으로 껍질 긁는 것은 제몫의 일이었습니다.

구수한 된장찌개와 푸른 빛이 더많은 김장김치

그리고 간장에 담근 고추 장아찌 밖에 없는 밥상이지만

꿀맛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혼자 들로 산으로 뛰어 다니며 놀았습니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지만 언젠가는 시골에서 살고 싶은

오랜 소망도 그때 그추억이 가져다 준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한참 놀다 목이 말라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면 할머니께서는

부뚜막에 놓여 있는 물항아리에서 물한릇을 떠서

주시며 천천히 먹어라, 물 먹고 체하면 약도 없다라고

말씀 하셨죠.

오래 오래 할머니와 살고 싶었지만

학교는 서울에서 다녀야 한다는 부모님들의

교육 방침에 따라 할머니와 눈물의 이별을 하고

시골 촌뜨기는 서울 다마내기가 되었습니다.

 

 

손자 손녀 중에 저를 제일 좋아 하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신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할머니 장례식이 끝나고 제가 서울로 가져 온것은

손잡이 한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할머니의 물항아리와 감자 껍질을 잘긁을수 있는 숟가락 하나입니다.

지금도 수도물을 받아 두었다 몇시간만 지나면 물맛이 틀려지는

저의 정수기 - 할머니의 물항아리

 

 

지금 살아계시면 백살도 넘으실 할머니가 쓰신 항아리라

족히 60- 70년은 넘었을 항아리지만

제마음 속에서는 할머니의 따뜻한 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릇입니다.

유약이 제대로 발라지지 않은 촌스런 물항아리를 쓰다듬으며

40여년전 그때로 잠시 떠나봅니다.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행복한 강아지
    '12.2.26 4:10 PM

    할머니에 대한 은하수님의 그리움이
    글에서도
    느껴지네요

    할머니와 추억이 많은분들 부러워요

  • 2. 은하수
    '12.2.26 4:16 PM

    감사합니다. 잠시 할머니와의 추억에 잠겨 봅니다. 막걸리를 좋아 하시던 할머니는 자주 막걸리 심부름을 시키셨죠. 동네 주막집에서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사오다 목이 마르면 한모금 먹기도 했죠. 다 그리운 추억입니다.

  • 3. jiranp
    '12.2.26 5:41 PM

    할머니를 생각하면 명치끝이아려오는 손녀딸입니다.
    은하수님의 소중한 추억덕분에 저도 잠시 할머니생각을 해봅니다.

  • 4. 레몬쥬스
    '12.2.26 5:45 PM

    아 그리움 가득한 수필 하나...

  • 5. mabelle
    '12.2.26 6:31 PM

    시골집에 찾아가면 지금도 할머니가 거기 계실 것만 같아요.
    할머니 돌아가신지 10년도 넘었는데 말이죠...
    살아계셨다면 증손녀들 참 이뻐하셨을텐데... 아쉽고 그래요.
    은하수님 덕분에 저도 추억에 잠시 잠겼습니다.

    가끔은 그래서, 할머니가 돌아가신게 아니구나
    내 추억 속에 살아계시구나... 이런 생각도 해요.
    할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 그릇, 냄새... 이런걸 보면서요.

  • 6. 은하수
    '12.2.26 6:35 PM

    시골 동구밖엔 할아버지가 심으신 큰 정자 나무가 있습니다 지금 고향집엔 친정 아버지께서 은퇴후 살고 계신데 차에서 보면 멀리서 부터 아름드리 나무가 반갑게 맞아준답니다.

  • 7. sunburn
    '12.2.26 8:27 PM

    이벤트 올라 온 그릇들 중 제 눈엔 은하수님의 물항아리가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네요.
    추천 꾹 누르고 갑니다.

  • 8. 은하수
    '12.2.26 9:07 PM

    항아리를 올리며 할머니 생각이 너무 나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잔치집에 할머니 혼자 가시면 동구밖까지 나가 할머니를 기다리곤 했지요. 석양이 뉘엿 뉘엿 질때 쯤 할머니는 터덜터덜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며 오셨지요. 잔치 음식을 저를 위해 남겨 오셨기 때문에 더 간절히 기다렸는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제 귓가엔 할머니의 내강생이 할매 기다렸냐? 란 말씀이 들려 오는 듯 합니다.

  • 9. agada
    '12.2.26 11:25 PM

    그 어떤 그릇보다 더 값나가는 할머니의 물항아리입니다
    할머니의 손때가 묻은 그릇 할머니와의 정이 느껴지는 글 에서 애잔함을 느꼈어요
    오래도록 잘 간직하세요 어떤 명품보다 소중한 그릇이에요 데를 이어 내려갈수록 이야기는 더 많아지겠죠
    부러워요

  • 10. 은하수
    '12.2.27 5:06 AM

    누구나 나만의 소중한 그릇이 있는것 같습니다. 제게는 할머니의 정이 담긴 이물항아리가 바로 그런
    그릇 입니다. 제가 막걸리를 유난히 좋아 하는것도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 어린 나이에 술맛을 알아버린 과거 때문이기도 합니다. 주전자 가득 담아준 막걸리를 흘리기전에 살짝 몇모금 맛보고 가져가면 김장김치를 안주 삼아 할머니는 마셨습니다. 그러다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우시기도 하셨죠. 그러면 어린 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왠지모를 슬픔에 함께 울었던 기억도 이젠 추억속 이야기입니다.

  • 11. 꼬비똠뽀
    '12.2.27 9:33 PM

    항아리가 참 따뜻해 보입니다.

  • 은하수
    '12.2.29 9:41 AM

    제대로 유약이 발라지지 않아 더 정이 가는 항아리 입니다. 손잡이 한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도 세월의 흔적으로 느껴져 소중한 그릇입니다.

  • 12. 햇살가득
    '12.2.29 8:49 AM

    그리움의 기억들이 낱낱이 전해져 와 가슴으로 부터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흐르네요.
    참으로 아름다운 날들, 따뜻한 기억입니다.
    추천 백만개 드려요...

  • 은하수
    '12.2.29 9:43 AM

    제가 생각하는 부자는 아름다운 추억이 많은 사람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제는 마음속으로만 달려가는 그리운 할머니 품입니다.

  • 13. J
    '12.3.1 10:04 AM

    은하수님 글 덕분에 외할머니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랑만 주셨던분.......

  • 14. 은하수
    '12.3.1 3:17 PM

    생전에 저희엄마도 맏손자인 큰아이를 참 사랑해 주셨어요. 늘 보고 싶어 하시고 먼길 마다않고 달려와 봐주시고...
    애인이 만약 이만큼 보고 싶다면 절대 헤어지지 않을것이라고 말씀하실만큼 절대적 사랑을 베푸셨는데..
    그런 엄마도 떠나시고 제 나이 어느덧 지천명에 가까워 지고 보니 한없이 베풀기만 했던 할머니, 엄마의 사랑을 반이나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할머니들의 삶이 바로 그런 따뜻한 나무 같은 것 아닐런지요....
    저도 댓글을 쓰며 이미 제곁엔 없지만 어쩌면 다른 모습으로 함께하는 엄마와 할머니를 마음으로 불러봅니다.

  • 15. 우즈님
    '12.3.1 4:35 PM

    마음이 따뜻해 지는 글입니다.

  • 16. 롤리팝스
    '12.3.4 8:00 PM

    은하수님의 글을 읽으며 저도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잠시 추억 속으로 빠져 들었네요...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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