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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이병률, 여진 (餘震)

| 조회수 : 7,126 | 추천수 : 0
작성일 : 2019-09-01 00:23:42

여진 (餘震) 

                          이 병률


다 살고 치우고 나서야 알게 된다

찬장 뒤쪽으로 훤히 나 있는 뒷문을

그 문 뒤로는 한여름에도 눈이 펄펄 날린다는 비밀을


한참을 열어 놓고서야 알게 된다

처음의 처음까지 다 이해할 수 있음을

여진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그러고도 가끔은 자고 있는 중에 문이 열린다

열린 문이 열린다


봄날은 갈 것이다

그 사실을 보내는 동안 여름날도 갈 것이다

양손으로 상자를 받았는데 상자를 내려놓지 못하고

상자를 열게 되더라도

무엇이 뼈고 무엇이 옷이며 지도인지를 알지 못하고

우리가 죽은 다음에야 다 볼 수 있으리


뒤늦게 더듬어서라도 다 볼 수 있다면

아무것 없이도 아름다우리라고

대륙의 끝으로 자신을 끌고 가

한없이 데리고 울다 지친 이


그가 들썩일 때마다 뒷문이 울린다

조금은 알게 될 것이라고

그가 끄덕일 때마다 뒷문이 따라 열린다

비릿한 뒷일들도 문지방을 넘게 될 것이라고


갈라진 마음 끝에 빛이 들듯

그렇게 가을날도 갈 것이다


                                                       -이병률, 시집'눈사람여관'. 문학과지성사


아..와 어..는 다른데,

그 다름의 으뜸은 시


소란스런 일상에

내 손바닥의 자석

휴대폰도 노상 잃어 먹는데,

지친 지난 여름에 산 시집쯤

어드메 집구석에 있고 말고

찾을 생각은 아예 하덜덜도 말았지


이병률시인이야

모두의 탁월한 선택이라

흔한 넘의 집 담벼락에 굵게 올린 시

또렷함이 맘에 들어 퍼와보니


올린 이

나처럼 노안이구나

군데군데 틀려, 고치려니

둘러 가다

올 데 갈 데 없이 멱살 잡힌 격


잡힌 참에 통성명부터 다시 나누니,

말을 들을 수록, 맘이 들리고

말을 새길 수록, 뺨이 새겨진다


어느 끝이든

끝까지 가 본 사람은

그 곳에서 벼락치고, 눈보라 일어도

빛이든, 바람이든, 꽃이든

제 마음대로

피었다가 또 지었다가 하는 걸 보았겠지





*사진 위는 시인의 시

*사진과 사진 아래 사설은 쑥과마눌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雲中月
    '19.9.2 12:50 AM

    백일홍 그릴에서 우아하게 식사하는 팔랑나비는
    세월의 빠름을 알까 모를까~

    - 吟觀月 [음관월] 달을 보며 읊다 -

    玉魄梧桐掛裸枝 [옥백오동괘나지] 둥근달이 벽오동 벗은 가지에 걸리고
    蔦蘿紅葉覺飛茲 [조라홍엽각비자] 담쟁이 붉은 잎에 세월 빠름을 깨닫네.
    靑蓮弄月詢今月 [청련농월순금월] 이태백이 놀던 달이 지금의 저 달인가
    白髮爬頭詠一詩 [백발파두영일시] 흰머리 긁적이며 시 한수를 읊어 본다.

  • 쑥과마눌
    '19.9.2 8:14 AM

    팔랑나비는 지금 먹방중이라죠.

    밑에 시조가 좋아, 저도 댓구를..쿨럭~

    날마다 변심하는 달따위야 안물안궁
    오가는 시절속에 사라져간 인물궁금
    그곳은 안온한지 이곳은 치열한데..
    남은 세상 잘해보려 버둥버둥 쎄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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