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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 목 : 더운 나라의 술꾼

| 조회수 : 12,931 | 추천수 : 4
작성일 : 2020-02-17 16:50:57






몇달 전 학교에서 독감 환자가 속출하더니 저희 딸도 기침 감기로 며칠 학교를 쉬었어요.

더운 나라에서도 할 건 다 해요.

생강을 2킬로 사서 남편이랑 쭈그리고 앉아서 다듬고 껍질을 벗기고 갈아서 계속 저어 주며 내내 끓여요.
대추, 말린 레몬, 계피 등등 좋아 뵈는 것들도 같이 때려 넣었습니다.

다 된 생강청으로 차를 한잔 마셨더니 배 속이 후끈한 거이 몸에 좋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완성할 즈음엔 딸 감기는 다 나았고

남편이 해장용으로 매일 아침 장복 중이에요.

남편은 계획이 다 있어요?







동생과 오랜만에 통화를 했어요.

​아빠 엄마를 초대해서 제부 지인이 올려 보낸 막회에 소주를 한잔 했다고 해요.

- 아빠가 막회를 그렇게 좋아하시는 줄 몰랐다니까. 접시가 아빠 쪽만 훅 파인 거 있지?

달랑 딸 둘인데 제가 없으니 혼자 수고가 많은 마이 시스터.



- 멸치 다시에 시금치랑 냉이 넣고 국을 끓였거든? 

  아빠가 한 입 드시더니, 완전 할머니가 해 주시던 맛이라고 감격하는 거야.

- 웬욜? 아빠가 그런 얘길 다 하셔?

- 어! 근데 엄마가 먹어 보더니 내가 끓인 거랑 똑같구만 뭔 소리냐고. 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 못살아 진짜.

할머니의 시금치 된장국 맛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빠가 그 순간 얼마나 기가 막히셨을지는 알 거 같아요.


​제가 누굴 닮아 이날 이때 정신승리 하나로 버텨 왔는지도 알 거 같고요.




동생이 굴전 반죽에 청양고추를 쪼사 넣으면 안 물리고 좋다고 알려 줬어요.

맛있긴 한데
굴전이 느끼할 수도 있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방법인 거 같아요.

없는 굴을 쪼개 무침을 만들고 전을 부치는 사람이 굴전이 어찌 느끼하겠어요.


어쨌든 굴전과 굴무침과 차돌박이로
제게는 무척 호사스러운 술상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곰솥 러버 저희 엄마에게도 필생의 비기가 하나 있어요.



그 어렵다는 파무침!







이게 웬 장어!



사랑하는 동네 언니가 한국에서 주문한 장어를 제 생각이 나서 맡겼다고 하셔요.

먹어서 맛이 아니고

받아서 맛이죠.

다정한 말 한 마디

어깨에 두른 격려의 팔

따뜻하게 다 안다고 바라보는 눈빛

이런 마음들 덕분에

가끔 치밀어 오르는 해외 살이의 울컥함도 잊혀집니다.





​집게를 잡은 남편 손이 신명이 났어요.


껍질부터 조심조심 구워 보는데

뭔가 영 성에 안 차는 거 같더니



석쇠 대령!

그냥 장어 아니고

사랑을 담은 장어니까 대충 먹을 수가 없어요.

세상에

얼마나 촉촉하고 고소하고 쫄깃한지.

먹으면서 침침하던 눈이 점점 밝아지고

소주를 마시는데 깨는 느낌이에요.

장어를 처음 먹어본 딸은

생선인데 삼겹살 맛이 난다며

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날립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장어를 배가 터질 때까지 먹다니.

살아 있기를 참 잘한 거 같아요.

집안이 장어 굽는 냄새랑 연기로 가득했는데

다음날까지 안 빠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유튜버 썰맨의 열렬한 팬인 어느 분이

짬뽕을 해 준다며

이것저것 재료를 주문했어요.

새우 조개 청경채까지는 사 놨는데

숙주를 깜빡했어요.


썰맨 아저씨가 내내 강조하던 말이

"짬뽕은 육수 맛이 아닙니다.

조미료 맛입니다."

오 제 요리 철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요?

남편은 짬뽕의 금과옥조를 간과하였으므로

밖에서 사먹는 맛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였습니다.

그냥 해물탕라고 생각하며 열린 마음으로 먹었어요.




남편에게 장 보라고 부탁했더니

육쪽이 아니라 육십쪽 마늘을 사 왔어요.


하아.

나 좀 편하게 살게 해 주기가 그리 어렵나.



마늘을 깔 때마다

마음수련하는 기분이에요.




아몬드랑 크기 비교.


진짜 잣같네.


3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우리동네마법사
    '20.2.17 8:07 PM

    와우 라나님 요리와 글솜씨가 대단하시네요^^
    특히 마지막 잣같은 아몬드마늘이 갑입니다^^
    말레이지아에서 햄볶으며 사시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 lana
    '20.2.17 11:25 PM

    마법사님 안녕하세요.
    저 마늘 까다까다 제 고운 입에서 저도 모르게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와서요, 냉동실에 봉인해 버렸어요. ㅋㅋㅋㅋ
    아름답게 봐주신 마법사님이 아름다우십니다.

  • 2. 주디
    '20.2.17 8:33 PM

    ㅋㅋ 60쪽 마늘을 골라오셨나봅니다. 남편분이

  • lana
    '20.2.17 11:26 PM

    주디님!
    그 날 저랑 사이 나쁘지 않았거든요?
    흠.

  • 3. 레미엄마
    '20.2.17 9:40 PM

    아앜ㅋㅋㅋㅋ
    60쪽 마늘에서 뿜었어요~
    저녁 배부르게 먹었는데도
    굴전 땡기네요.

  • lana
    '20.2.17 11:28 PM

    레미엄마님
    그죠. 굴이 오동통하니 계란물만 묻혀 지졌는데, 어휴 그냥 술이 술이.

    아 저는 저녁 배불리 먹었는데 갑자기 막걸리 땡기네요.

  • 4. 유지니맘
    '20.2.17 10:59 PM

    굴을 몽땅 얼려서 보낼수만 있다면 ..
    한바케쓰라도 보내볼텐데 ...
    알아보십쇼 .
    다음엔 장어 한판 드시러 가십시다 ..
    딱 한판만이오 !!

  • lana
    '20.2.17 11:31 PM

    유지니맘님
    한판 받고 한판 더!
    순대랑 낙지 기억하고 있거든요? ㅋㅋㅋㅋ
    저 뒤끝 있고 집착 심한 거 아시죠.

  • 유지니맘
    '20.2.17 11:42 PM

    보아하니 그댁 식구들 양으로 봐서
    몇판도 꺼떡 없으실텐데
    무한리필집이 있는지 ;;(퀄리티가 떨어지려나)

    순대와 낙지 ...
    장어
    흠 ...
    오늘부터 하루 오백원씩 저금해야 겠으요 ..
    오기만 하십쇼 !

  • 5. 테디베어
    '20.2.18 2:03 PM

    멀리 이국에서 사랑의 장어를 드셨다니 눈이 번쩍 뜨일만합니다.^^
    60쪽 마늘도 너무 재밌고 재미난 글 잘 일었습니다.
    참이슬과 내사랑 타이거까지 완벽한 술상입니다^^

  • lana
    '20.2.18 4:12 PM

    테디베어님!
    늘 타이거에 한 말씀씩 해주셔서 턱별히 얼마나 감사하고 반가운지 몰라요. ㅋㅋㅋ
    어릴 때는 포장마차 꼼장어가 최고인 줄 알았는데 민물장어에 맛을 들이다니, 뭔가 출세한 기분이에요.

  • 6. 파과
    '20.2.18 3:40 PM

    오늘 저녁엔 매생이국 끓이고 "남은" 굴에
    청양고추 쪼사넣고 굴전을 해야겠네요.
    말레이시아에는 굴이 없군요. 흠

  • lana
    '20.2.18 4:14 PM

    안녕하세요 파과님
    남은굴 남은굴... 저 뒤끝있는데 인제 파과님은 영원히 제게 남은굴로 기억되실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남은굴에 플러스 매생이국이라니, 전 출세하려면 아직 멀었구만요.

  • 7. 그린그린
    '20.2.19 10:01 AM

    풉,,,,,
    아놔 육십쪽마늘에서 육성으로 뿜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너무 사랑스럽게 사시네요 알콩달콩>_<

  • lana
    '20.2.19 12:36 PM

    그린그린님
    아무래도 치매 예방을 위해 손 근육을 많이 쓰라고 남편이 사랑으로 골라온 거 같아요. 이렇게라도 마음을 달래 봅니다.

  • 8. 베이징덕
    '20.2.19 4:40 PM

    저는 그나마 서울에서 가까운 베이징에서 살았는데도 서울 먹거리들이 그렇게 땡겼는데 말레이시아면 더욱 그러시겠어요 저는 이제 서울 살아서 먹고 싶은거 다 먹어서 좋은 정도를 떠나 좀 자제해야 할 수준입니다만 ㅠㅠ

    굴전에 고추 넣는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하지만 한번도 굴전이 물린적은 없어요 굴은 늘 먹을수있는 시기가 딱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늘 아쉬워요

  • lana
    '20.2.20 1:41 PM

    베이징에 사셨던 베이징덕님, 반갑습니다. ㅋㅋㅋㅋ 화교가 많은 말레이시아라 베이징덕 비슷한 음식이 많아요.
    지금은 한국에 돌아가셨다니 하 정말 부러워요. 한국 가시자마자 순대국 드셨나요? 저는 비행기 내리자마자 회 아님 순대국을 먹습니다. ㅋㅋㅋ
    굴 철이 끝나가고 있어요. 으흐흑.

  • 9. 홍당무
    '20.2.20 1:37 PM

    어 저 블로그 구독중인데 82회원이셨네요 ㅎㅎㅎ 반가워요

  • lana
    '20.2.20 1:42 PM

    홍당무님!
    진짜진짜 반갑습니다.
    다음엔 블로그에 댓글 좀 남겨주세요.
    홍당무님 다녀감. 이렇게요. ㅋㅋㅋㅋㅋ

  • 10. 가브리엘라
    '20.2.20 3:49 PM

    제가 가는 자갈치에 싱싱한 굴도 천지빼까리고 장어 맛집도 있는데..
    그 집 가서 회 시키면 회보다 더 맛있는 갓김치, 부추김치, 묵은지도 따라온답니다
    뱅기표 끊으셔야 겠는데요?ㅎㅎ
    블로그 찾으러 갑니다~~~^^

  • 유지니맘
    '20.2.20 8:59 PM

    저 그집 아주 잘 아는 집이에요
    가브리엘라님 따라서 몇번 갔는데 ...
    모든것이 다 예술이지요 ...
    오면 갑시다 !

  • lana
    '20.2.20 9:40 PM

    가브리엘라님 잘 지내셨지요!
    몰랐는데 참 짓궂으신 면이 있으시네요 흑흑.
    오호 두분 가시는 곳, 혹시 다로 시작?
    제가 틈만 나면 맛집 검색이 취미인 데다 부산 대구 이웃님들이 많이 계셔서 거의 구글맵 수준의 지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가게 될 그날을 위해!

    그건 그렇고, 유지니맘님 보고싶어요!

  • 고독은 나의 힘
    '20.2.21 12:40 PM

    뱅기표 사고 부산 가서 연락 드릴게요.

  • 가브리엘라
    '20.2.21 4:18 PM

    고독님~ 반가워요!!
    부산오면 당근 연락 주셔야지요^^

  • 11. 북가좌김
    '20.2.21 1:29 AM

    육십쪽 마늘 껍딱 그대로
    갈아 묵어도 큰 지장 없다 싶습니다.
    ((그 뭣이냐 껍질에 양분이 많다고 배웠습니다!))

  • lana
    '20.2.22 1:53 PM

    내 사랑 북가좌김님
    오늘도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르침 감사합니다.
    육십쪽 마늘은 냉동실 육수팩으로 장렬히 거듭났습니다.
    다음에 (그럴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행여 남편이 육십쪽 마늘을 데려 오면 그때는 인정사정 없이 껍질 째 갈아버릴 거에요.

  • 12. 우주선
    '20.2.21 6:08 PM

    잣 같네요 ㅋㅋㅋㅋㅋ
    글솜씨 우왕

  • lana
    '20.2.22 1:56 PM

    우주선님 안녕하세요.
    저 잣가튼 마늘이 정말 잣같이 안 까지더라고요. ㄷㄷㄷㄷ

  • 13. 고고
    '20.2.21 8:34 PM

    쪼수고 ㅎ

    흥겹게 읽고 갑니다.

    남도술꾼은 요즘 절로 술이 줄어
    서글픕니다. ^^

  • lana
    '20.2.22 1:58 PM

    존경하는 고고님
    남도술꾼이시라니, 듣기만 해도 풍류가 흘러넘칩니다.
    술은 줄다가도 늘고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 14. samdara
    '20.2.23 4:09 PM

    저도 60쪽 마늘에서 빵 터졌어요. ㅎㅎㅎㅎㅎ
    글을 넘넘 찰지게 쓰시네요.
    엔돌핀 얻고 갑니다. 감사해요~~~~

  • lana
    '20.2.23 9:14 PM

    안녕하세요 삼다라님
    예전부터 어르신들이 왜 육쪽마늘 육쪽마늘 하셨는지 절절히 느꼈다니깐요.
    삼다라님 댓글이 제게 엔돌핀이네요. 고맙습니다.

  • 15. Harmony
    '20.3.3 8:44 AM

    너무나 찰지고 맛깔나는 음식들
    하나하나 다 맛보고 싶어요.
    굴전에 청양고추 넣을 생각을 왜 못했을까 싶네요.

    또 맛난소식으로 오시길 기대합니다.^^

  • lana
    '20.3.4 11:51 AM

    안녕하세요
    늘 고운 말씀 해주시는 하모니님
    굴전에 청양고추 넣은 것보다 저는 간장에 고추 쪼사 넣어 올려 먹는 게 더 맛있었어요. 어떻게 해도 뭔 짓을 해도 맛있는 굴! ♡♡

  • 16. 백만순이
    '20.3.4 9:49 AM

    잣같은 마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할수만 있다면 이동네 싱싱한 굴이랑 그동네 락사랑 맞교환하고싶군요

  • lana
    '20.3.4 11:52 AM

    으흐흑
    제가 턱별히 락사 맛집으로다가 선별할께요. 하시는 김에 굴에 랍스터나 참치 조금만 얹어 주세요 백만순이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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