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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난 극장

공공의 이익 조회수 : 315
작성일 : 2008-07-06 08:42:55
서울에 살고 있습니다.
7월 30일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교육정책에 대한 각 후보의 입장 차이가 있네요.
각 후보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을 보고 어떤 후보를 뽑아야 할 지 정해야 하는데요.
저도 교육학을 공부했지만 이런 현실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자녀를 둔 부모로,
이 사회가 몰아대고 있는 경쟁의 한 가운데 있는 당사자로서 눈 앞이 흐려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막연히 있기보다 공부 좀 하려고 자료를 좀 찾아봤어요.
시작이지만 오늘 이 글이 눈에 띄어서 퍼왔어요.같이 읽고 투표해서 애들 같이 잘 교육시켜봐요.



      모델의 선택  
                                      홍순명


한창 영화가 상영중인 극장. 빈 자리 하나 없이 관객들이 빼곡히 앉아있고 영화는 중반을 향해 달려간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알싸하게 코끝을 찌르는 묘한 냄새가 코끝을 살짝 스쳐지나가고, 관객들은 기분탓일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계속 영화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그 때 갑자기 영화가 끊기고 극장은 칠흑같은 어둠에 빠진 채 출구를 표시하는 몇 개의 비상등만 빛난다. 관객들은 일제히 웅성거리고, 몇 초의 사이를 두고 멀리서 들리는 외침 소리.


불이야!

누군가 벌떡 일어나 사람들 속을 헤치며 출구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이 찬 물을 뒤집어쓴 듯한 아찔함에서 벗어나 미친듯이 출구를 향해 몰려간다. 그 와중에 어둠 속에 발을 헛디뎠는지 누군가가 넘어지고, 이어지는 비명 소리…



이 때 관객 개개인이 나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이 상황에서 생존자 수를 늘려주지 못한다. 모두가 이 사실을 알지만 아무도 생존경쟁을 포기하지 못한다. 공황 상황에서 경쟁을 포기하는 것은 확실한 나의 파멸로 직결된다. 직관적으로 이 사실을 깨닫고 있는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은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어 기를 쓰고 출구를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리고 그 와중에 희생자는 늘어만 간다.


여기서 살펴본 불난 극장 같은 상황에서 권장되는 가장 표준적인 해결책은 외부에서 투입된 안전요원들이 공황상태에 빠진 관객들을 통제해 장내 질서를 회복시키고, 최대한 질서를 지켜 순서대로 빠져나오게 강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도 모든 사람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분명치 않고, 가장 늦게 나오는 사람 일부는 희생당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 가장 많은 사람을 구해낸다는 사회적으로는 최적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극장 안의 관객들은 너무나 큰 자신의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상호 협력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일부 관객들이 협력하고자 시도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한 기회를 배신자들이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곧 협력 시도는 붕괴되어 소멸한다. 이러한 과정은 죄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죄수의 딜레마 이야기에서는 그나마 두 명의 죄수가 입을 맞추면 끝나는 문제이지만, 극장 안의 관객들은 숫자가 많기 때문에 모두의 배신을 방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암담한 상황에서 외부에서 투입된 안전요원들은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일단 강제력을 동원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다. 그리고 지금 일시적으로 회복된 질서가 계속 유지될 것임을 관객들에게 설득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질서를 무시하려는 배신자들을 무력으로 처벌함으로서 관객들의 협력을 촉진하는 한편, 질서가 앞으로도 유지될 것임을 계속 재확인시켜준다.

이 때 안전요원들은 관객들이 품고 있는 무슨 수가 있어도 나만큼은 빠져나가야 한다는 절박한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기에 이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다. 만약 무장한 안전요원들 조차 관객들과 동등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면 이 시스템은 다시 통채로 붕괴해버릴 수 있다.


이것이 말 많은 한국의 대입경쟁을 분석하기 위해 내가 채택해 본 모델이다. 이것을 불난 극장 모델이라고 부르자. 이 모델은 옳을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는데, 하여간 좀 더 살펴보자.

이 모델에서는 경쟁이 효율을 낳지 못하며, 경쟁의 강화는 노력의 낭비와 사회적 손실만 증가시킨다. 이는 흔히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상식과 반대되는 결론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떤 경우에도) 경쟁은 더 나은 효율을 낳는다는 단순한 명제를 지지하거나 적어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 때 사람들은 암묵적으로 (완전)경쟁시장 모델™이라는 것을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예전에 완전경쟁시장 모델에서 도출된 결론을 외운 다음, 자신이 어떤 모델에서 도출된 결론을 외웠던 건지 까맣게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사실 정상적인 교육과정에서라면 경쟁은 더 나은 효율을 낳는 경우가 많다. 이 점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특수한 상황, 즉 모든 사람이 불난 극장에 앉아있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할 경우 경쟁은 더이상 효율을 낳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불난 극장 모델이 말해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예를 들어 그럭저럭 우수한 자질을 가진 어떤 학생이 3수를 거쳐 일류대를 들어가 졸업한 경우와, 현역으로 그보다 조금 낮은 대학에 들어가 졸업 후 대학원을 마친 경우를 비교해 보자.

이 학생 개인의 입장에서는 취직 등에서 유리하다든가 하는 이유로 전자가 후자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아닐 수도 있지만.) 하지만 전자를 선택할 경우 사회적으로는 거의 확실히 손해가 발생하게 된다. 이 학생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조금 더 완벽하게 숙달하기 위해 보통의 3년 대신 5년을 투자한 것인데, 사회적으로 볼 때 대학교육 이후의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를 희생시켜가며 고교교육을 더 완벽히 숙달하기 위해 2년을 추가로 투자하는 것을 정당화하기란 어렵다. 이 때 이 학생이 취직 등에서 확보한 유리한 입지는 누군가 다른 학생과 자리를 바꾼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추가적 이익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즉 zero-sum 게임인 것이다.

이 모델에서 도출되는 결론은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가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모두의 이익이 되는 경우가 있다란 것이다. 즉 불난 극장 모델은 공리주의 원칙과 개인의 자유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경우를 보여준다.

따라서 개인의 선택이나 행동의 자유에 높은 가치를 두는 사람은 이 모델을 극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우리가 다루려는 문제가 불난 극장에 비유될 만큼 치명적인 상황은 아님을 설득하기 위해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공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많은 사회문제에 불난 극장 모델을 적용하려는 성향이 있다. 이런 판단은 주관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결론은 쉽게 나지 않지만, 한 가지 점만큼은 생각해볼만하다.

사람이 어떤 사태를 분석하기 위해 특정한 모델을 선택한다는 것은 암묵적으로 어느 정도 결론도 같이 결정한다는 의미일 경우가 많으며, 종종 그 배후에는 개인의 가치관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도출해 낸 결론은 아까 내가 몰래 모자 속에 넣어 둔 토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앞서 살펴본 불난 극장 모델이 말해주지 않았던 요소 하나를 생각해 보자.

불난 극장의 질서를 장악한 안전요원들은 아마 출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부터 차례로 사람들을 대피시킬 것이다. 이 말은 상황이 통제된 시점에서 출구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살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 때 초기 좌석배치가 어떤 의미있는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태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공권력이 대학입시에 관련된 많은 경쟁을 억압해 과당경쟁을 줄인다 하더라도 통제불가능한 부분은 분명히 남을 것이고, 그 부분에 있어서도 상류층이 유리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경우 상류층은 체계적으로 유리한 입지를 갖고 있으며, 안전요원들이 제공한 질서 하에서 더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난 극장 모델의 지지자들은 안전요원들이 없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도 출구에 가까운 쪽은 원래 유리했으며 그 상황이 크게 더 나빠진다고 볼 이유는 없다고 반박할 것이다.

이런 점은 모델이란 것에는 언제나 생략된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 점은 지도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 누구도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표시된 1:1 크기의 지도를 들고다니지는 않는다. 지도는 언제나 그 지도를 선택한 사람이 관심을 기울이는 요소들을 중점적으로 남기고, 덜 중요한 요소들을 생략한 후 과감히 현실을 축소함으로서 비로소 가치를 갖게 된다.


정리해 보자면 이 문제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지만 덜 틀리기 위한 일종의 지침 같은 것은 존재한다.

1) 대개의 모델은 현실을 단순화시킨 것이기 때문에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 하지만 또한 현실의 어떤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이해에 도움을 준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델을 갖고 놀아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2) 자신이 어떤 결론 같은 것을 믿는다면 그 결론이 어떤 모델에서 도출된 것인지 기억하고, 필요할 때마다 그 모델로 되돌아가 변수를 바꾸어가면서 검토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교한 연구를 통해 얻어낸 결론이라도 결론에서 모델이 떨어져나가버리면 결론은 곧 낡고 틀리게 된다.

3) 늘 가능한 복수의 모델을 갖고 놀아야 한다. 서로 다른 모델은 현실의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복수의 모델을 비교검토하는 한편, (크게 잘못된 모델이 아니라면) 각 모델들이 어느 정도 상보적인 역할을 해 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4) 모델을 갖고 충분히 놀았다면 모델이 현실을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생략했던 부분들을 끄집어내어 우리의 결론이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 것인지를 다시 맞추어 보아야 한다. 사실 많은 모델은 그 모델에 잘 맞지 않는 사례들을 따로 빼내 골방에 쳐넣어 감춰두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곤 한다. 따라서 단순화 과정에서 생략된 사례들이야말로 결론의 적실성을 검증할 진정한 시험대가 된다.


교육 문제는 나의 주 관심사가 아니어서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검토해 보았을 때 얼마나 적실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과거 한국의 공교육과정을 같이 밟아본 정도의 경험에서 말하자면 불난 극장 모델은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복수의 모델들 중 하나에는 들어있어야 한다고 본다.

# by sonnet | 2008/04/17 17:54 |
IP : 58.230.xxx.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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