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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의사샘

산골마을 조회수 : 1,869
작성일 : 2008-01-05 12:26:16
어느분이 약사에게 약사님이니 선생님이란 올바른 (?)호칭을 두고 아가씨라고 부른다고 기분나쁘단 글을읽다가 우리동네 작은 의원의 의사선생님이 생각납니다

산골의 작은마을에 귀농이랍시고 내려온지 사년정도 됩니다
읍내에 오래된 작은 의원이 있는데 원장님 한분과 간호사 두사람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원장님은 외모로 보기엔 그리 연세가 드셔보이진않고 그저 오십정도로 보이는데 늘 약간은 후즐근해보이는 차림이라 첫인상은 썩 신뢰가 가질않습니다
그러나 마주치는 횟수가 잦을수록 그분의 매력에 사정없이 빨려들어갑니다
아흔넘으신 친정아버님께서 제가 사는곳에 다니러 오셔서 약한감기에 걸리셨길레 의원에 모시고 갔습니다
어디편찮으시냐는 원장님 말씀에 (말투가 아들이 아버지에게 물어보는 말투였습니다) 제 아버지는 온몸 구석구석 안아픈곳이없고 기운이 없다고 하십니다
아흔을 넘으신분이니 당연히 그럴수밖에 없는일이지요
원장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어르신. 기력이 딸려서 그렇습니다. 제가 기운도 펄펄나고 팔다리에 힘이나도록 좋~은약을 이것저것 많이 넣어서 드릴터이니 제때 밥을 잘 드시고 약을 꼭 드십시오. " (이곳은 의약분업예외지역입니다)
그리고선 제 아버지께서 입으신 외투를 보시며 참 따뜻한 옷을 입으셨다고, 누가 사준것이냐 물으시고 옆에있는 제게도 아버님 맛있는거 많이 해드리라는 말도 잊지않으시더군요
제 아버지께서 그 의원을 나오실땐 이미 감기기운같은건 말끔히 사라진듯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저양반, 박카스라도 하나 사드리고 가자"
"아부지, 의원인데 박카스야 흔하게 있겠지요"

일요일에는 의원이 쉬는날입니다
그러나 일요일이라곤해도 오일장이 서는날은 의원도 덩달아 문을 엽니다
오일장이 서는날 의원에 들러보면 간호사들 접수대며 원장님 진료실이 참으로 복잡하고 어지럽습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가져다준 군것질거리들이 여기저기 늘어져 있습니다
원장님이 노인들을 내 부모여기듯하니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벤 예의가 아니라 어찌보면 버릇없는 손녀처럼 노인들을 대합니다
때때로 호통도 치고 잔소리도하는 그 모습이 참으로 정감어립니다
어르신들이 간호사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거나 간호사라고 부르시는분 본적이 없습니다
"아가씨" 혹은 "아가" 아니면 "보소~"
원장님에게라고 달라질리가 없습니다
"의사양반" " 보소~" "아요~" "아제"  ㅋㅋㅋㅋ

때때로 대기실에 앉아서 그 모양새를 보고있자면
박경리의 소설 한토막을 보고있는듯 여겨집니다
의사샘이 의사로 보이는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여지는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것이겠지요

새벽이른시간에 환자가생겨 급한마음에 염치불구하고 몇시에 문을 여냐고 물어보려 전화를 드렸더니
바로 오시라며 환자상태가 어떠냐구 물어보시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명의'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 작은 의원이 작은마을의 종합병원이요 응급실입니다
보건소는 늘 한가해 보입니다
보건소에 근무하는 공중보건의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굳이 노인들이 보건소보다 돈을 들여 의원을 찾는까닭이 그 의사샘이 병만 잘고치는것이 아니라 마음치료까지 잘 해주신다는걸 아시는 까닭이라고 나름대로 분석(?)을 해 봤습니다

의사든 약사든 환자를 위해 존재한다는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호칭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지요
환자가 나를 '사람'으로 여겨주는지
'장삿꾼'으로 여겨주는지 그걸 볼줄 알아야하는거 아닐까요?
IP : 211.193.xxx.138
1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따스한
    '08.1.5 12:34 PM (218.38.xxx.183)

    수필 한 편 읽은 기분입니다.
    제가 겪어본 적 없지만 마치 어린시절 읽었던 동화책 같은 훈훈함이 있는
    그 곳에 저도 가고 싶네요.

  • 2. ....
    '08.1.5 12:36 PM (116.36.xxx.3)

    좋은글입니다.
    요즘 세상에 그런 의원분이 계시다니...마음이 따스해지네요.
    존경은 그런분이 받으시는겁니다.
    밑에글 읽으면서 약사에게 왜 '님' 하고 불러야 하는건가...혼자 갸우뚱했었네요.

  • 3. 잘 읽었습니다
    '08.1.5 12:36 PM (125.134.xxx.111)

    마치 단편 소설 한토막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의약분업예외지역이라니 정말 산골에 사시나 봅니다.
    저도 시골에 사는데, 약 30분 정도만 차 타고 가면
    휴일이든, 일요일이든 꼭 장날에는 문을 여는 의원이 있답니다.^^

    앞에 올라왔던 약사님, 의사님 호칭 글도 읽었는데요
    저는 뭐 평소 그냥 "선생님" "약사님"하고 잘 부른 답니다~

  • 4. 그러게요
    '08.1.5 12:43 PM (211.212.xxx.43)

    누구나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어야 사는 세상인데
    누구는 많이 공부했다고 선생님소리 들어가며 돈벌고
    누구는 못배웠다고 아가씨소리 들어가며 돈벌으니
    돈벌면서 산다는건 다 똑같지 않나요.
    미장원에서도 선생님.약국가도 선생님.교통에게 걸려도 선생님.

  • 5. 이런분으로
    '08.1.5 1:12 PM (124.56.xxx.9)

    세상이 따스해집니다....
    마음에 따뜻하고 꽉 차네요~
    산골마을님도 그 의사샘도 건강하시길 바래요~~

  • 6. 다음에
    '08.1.5 1:20 PM (220.75.xxx.143)

    그 진료실풍경 사진으로 한번 올려주실수 없으신지...
    의사선생님 한번 보고싶어요.

  • 7. ^^
    '08.1.5 1:37 PM (218.36.xxx.102)

    따뜻한 단편을 읽고갑니다. 어디에있는 의원인지... 저도 한번 꼭 들르고싶네요

  • 8. ㅎㅎ
    '08.1.5 1:39 PM (116.120.xxx.130)

    아직도 저런 데가 많아요 ^^
    제가 몇년전 남편따라 시골 보건지소에 들어가서 산 적이 있엇죠
    아주깊숙한곳은 아니엇지만
    진료받으시면서 맛보라고집에서 낳은 계란한줄 농사지은 딸기 꿀 등등
    보건지소젊은 의사챙겨다준다고 챙기시던분도많고
    오시면 집안얘기 자식얘기 하느라 뒤에 기다리시는분 눈총받으시던 분에
    뒷집에 사시던 치매기 약간있으시던 90 넘으신 할머니는
    티비 켜놓으시고는 집안에 누가있다고 무섭다고 몇시간씩 피신와서 앉아 있다가시고
    또 연세많으신 할아버지는 점심시간에 오셔서는
    직원들이자장면 시켜놓고먹고잇으면 오셔서
    호령하시면서 젊은것들이 어른 먹으란소리도안한다고 호통치시고
    그런데나중에 들으니 할머니돌아가시고 요즘엔 호령도안하시고 목소리가
    예전 같지않다고 걱정들도하시고 ...
    할머니들 주머니서 꼬깃꼬깃한것 살짝 손에쥐어 주시면서
    하도고마워서,,,이러고사라져버리시고
    먼가 펴보면 정말 성냥개비만하게 말아 놓은 만원짜리
    어느할머니는 어마어마한 대학병원에서 기죽어서 절차도 모르고 헤매이는데
    어디선가 번듯한 가운입은 의사가 아이고안녕하세요 하면서 아는척해줘서 깜짝 놀랐는데
    전에 보건지소 근무하는사람이엇다며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해주고 도와줬다고 고마워하고 등등
    전국에 아직도 훈훈한 시골병원들 많답니다
    하긴 이것도 한 8-9년정도는 흐른 이야기들 이네요

  • 9. ^^
    '08.1.5 1:43 PM (211.199.xxx.52)

    정말 글을 읽기만 해도 마음이 훈훈해지고 따뜻해 집니다
    그 의사샘이야 말로 그 마을에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군요
    한번 얼굴이라도 뵙고 싶네요

  • 10. 따뜻
    '08.1.5 4:22 PM (125.184.xxx.18)

    원글도 댓글도 감동이네요...
    기분이 좋아져요..^^

  • 11. 시골병원
    '08.1.5 5:45 PM (125.143.xxx.200)

    조카가 간호사 를 시골 병원에 1년 정도 있었어요
    3명이 병원내 한쪽 방에 살면서.(도시에서 간 간호사들이라)

    노인분들 새벽같이 와서 문 밖에 기다리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하고 도와 드리면
    다음날 오실때 꼭 채소나 시골 과일 같은것 가져오신데요
    김치도 가져다 주시고.
    재미있는 분도 많다고 합니다

  • 12. 신기해요
    '08.1.5 8:22 PM (124.60.xxx.7)

    진짜 예쁜소설같다...하며 읽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런 댓글들이 많이 달리네요..
    제가 다니는 병원(아이다니는 소아과)도 어지간히 친절하다 싶은데 이런곳들도 있다는게 너무 정겹고 신기하기까지 해요^^

  • 13. 대도시
    '08.1.5 9:21 PM (61.105.xxx.243)

    에서만 살다보니 상상도 못해본 정감어린 모습이네요.
    정말 수필한편같아요. ^^
    글도 잘쓰셨구요.
    동네서 조금 친절한 의사가 있는데 그정도도 얼마나 감사한지..

  • 14. 호칭문제
    '08.1.6 1:36 AM (121.136.xxx.53)

    호칭을 뭐로 부르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게 어떤 마음을 가지고 대하느냐는거죠.
    말로는 아제..아제 하지만 그게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 아제인지는 상대방에게 다 전달이 되니까요.
    아가씨도 어떤 마음에서 부르는 아가씨인지 다 전달이 되는것 같아요.

  • 15. 잠오나공주
    '08.1.6 9:12 AM (221.145.xxx.51)

    예전 티비 프로그램 칭찬합시다.. 이렇게 추천해드리고 싶은 선생님이시네요~

  • 16. 승완맘
    '08.1.6 12:32 PM (121.173.xxx.241)

    정말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어느 곳인지 궁금해서 쪽지를 보내고 싶은데,
    자유게시판에서는 쪽지 보내기가 안되나 봐요.
    제가 방송관련일을 하고 있어서,
    글 읽다가 직업의식이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
    elvisu21@naver.com으로 메일 주소 알려주시면
    제가 자세한 내용 여쭙고 싶은데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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