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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남한강 & 온달산성

| 조회수 : 514 | 추천수 : 2
작성일 : 2021-08-18 17:12:42


부석사서 풍기읍으로 나왔네요.

문제의 동양대학교가 보이고.

풍기역서 10여분 기차를 타면 단양역.

그리고 단양역서 20여분 택시를 탑니다.




단양읍에서 온달산성 까지 가는 길은 남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길.

도로는 정확히 남한강 변을 벗삼아 영월까지 이어지죠.

아름답고 장쾌한 이땅 손꼽히는 드라이브 코스.

단양~영월 지역의 남한강 변 산들은 대부분 석회암.

그래서 고씨동굴,고수동굴,온달동굴 등 석회암 동굴이 많고.

일대에 시멘트 공장이 많이 들어섰는데 단양읍 일대는 국내 최대 시멘트 산지.

저 강을 거슬러 오르면 국내 최대 석회암동굴인 고씨동굴이 나와요.



요즘은 고랭지 채소가 압도하지만 예전 강원도 하면 감자&옥수수였죠.

옥수수가 보이네요.

길가엔 간간히 옥수수 판매상이 보이고.

잠시 세워 강원도 햇 찰옥수수 맛도 봅니다.



온달산성 까진 20여키로 지만 2/3 지점엔 구인사 가는 길이 나와요.

여기에선 두 손에 쥔 떡.

직진하면 여전히 남한강 따라 가는 강변길,

우측을 택하면 소백산이 만들어낸 첩첩산중 고갯길로 구인사 가는 길.

그러나 두길은 온달산성 앞 남한강 변에서 만납니다.

오늘은 구인사 길을 택하는 데 이 길이 참 매력적이여요.

첩첩산중 강원도 특유의 두메산골 분위기를 물신 느낄수 있거든요.

소백산 북사면 지능선이 만들어 낸 계곡을 따라 오르고,

능선을 넘어 가는 길이라 눈맛이 여간 산뜻한 게 아녀요.

가을 단풍 강추!



정상으로 빙두른 온달산성 보이시죠?


근접하면  이리~~~


어그,혹은 롱부츠처럼 생겼나요?


이런 형태를 퇴뫼식 산성이라 합니다.

마치 머리띠를 두르듯 산 정상부를 빙 둘러 가며 쌓아 올린 산성이죠.

산성 뒤쪽이 소백산 북사면으로 구인사가 거기에.

난 구인사 쪽으로 우회해 왔고.

해발고도 400미터,성둘레 800미터...

산성이 있어 산 이름도 성산(城山)이 되었네요



 20여분 산길을 오르다보면 1500년 이전 역사 속으로 들어가요~~

누구나 손쉽게.


고광나무


향기가 그렇게 찐할수가 없어요.

습한 계곡 변이라 길가에 옅은 향수를 뿌려놓은 듯


앞 농지가 보이는 길을 따라 구비구비 오르면 구인사



고려엉겅퀴

 

곤드레 만드레 흐느적거리나요?

바람이 불면 술취한 사람처럼.

그래서 곤드레라...곤드레나물 그 것.

고려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듯 우리나라 특산종.

...................


아니랍니다!!

뻐꾹채라네요.




뻐꾹채


산성 북사면이 보이고





우측이 정문인 북문



북문 서쪽 성벽

아랫쪽 2중의 기반 쌓기 보이시죠?

 

아래는 정면 북쪽 성벽들




이 땅 수많은 산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아요. 

앞에 서면 역사의 무게를 재대로 느끼게 하죠.

조형적으로 아름답기까지.

 



백자 달항아리,무량수전의 고운 처마선,버선코....

한국의 미는 곡선의 미라구요?

크기가 좀 째째하잖아요.

온달산성엘 오시길!

앞에 서면 보는이를 압도하며 곡선미의 진수를 맛보게 합니다.

특히,온세상 사물이 죽어 사라지고 오직 점판암들만 켜켜히 쌓인채 위풍당당 겨울 온달산성.



적이 기어오르면?

그야, 남한강서 가져온 강돌로 위에서 내리치겠죠.

산성 아래가 급경사라 천혜의 요새.



성내 물을 흘러 보내는 水口. 

어린 아이가 들어갈수 있는 정도.


 

점판암 채석장 흔적들

세로 결 보이시죠?



1500년이 흘렀는 데도 완벽.

넓고 납작한 점판암을 우물 정자로 빗겨 쌓아 정밀하죠.

당연 아래 남한강에서 가져온 강돌도 있구요.

부석사 석축단을 최고로 아는데 여길 따라올수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성내 강돌들


삼국시대엔 돌팔매 특화 부대가 있었답니다.

당서(唐書)고구려전에는 매년 정초에 돌 싸움을 벌였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때는 척석군(擲石軍)이라는 돌팔매 부대를 두었다는 기록도.

정월대보름 마을 단위로 돌을 던지며 싸우는 풍습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이리.

/보름날이면 만리현 위에서,숭례문·동대문·서대문 등 삼문 밖과 아현 사람들이 편을 갈라 몽둥이를 들거나

또는 돌을 던지면 서 편싸움을 한다. 이 싸움은 한쪽이 져서 달아날 때까지 하는데,문 밖이 이기면 경기도만

풍년이 들고, 아현쪽이 이기면 나머지 지역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동쪽 사면~~

저 높이만 7미터는 족이.

동문은 현문(懸門),즉 사다리를 이용. 



상부 하중을 견디기 위해 하부(이끼 부분)는 반칸을 돌출해 넓게 쌓았고. 



곡선의 미!

 

산성의 총설계자,공사책임자는 미적 감각이 남달랐을지도~~~~~~.

경사 구간을 경영하면서도 천연덕스럽게 곡선을 살렸네요.

말굽같은 돌출부는 실전이나 산성 유지라는 기능적인 면에서도 만점이었을 겁니다. 

산성은 4백미터 고도 정상에 위치.

앞은 남한강이요,뒤는 소백산 줄기.

총둘레는 800여미터 정도,,,서쪽은 급경사라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고.

정상 가까이 중심을 빙둘러 석축했기에

경사가 심한 동이나 서쪽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현기증을 느낄정도.

 

산성는 구축방식에 따라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요.

정상을 중심으로 머리띠를 두르듯 쌓는 방식을 테뫼식이라.

온달산성은 9부 능선상에 내탁(內托)하여 축조된 테뫼식 산성의 대표주자.

포곡식(包谷式)도 있는데,이는 정상~능선~계곡을 이어서 쌓는 방식입니다.

남한산성,북한산성처럼 우리산성 대부분이 포곡식이죠.

산성내 물 등 거주 공간이 마련되기에 장기간 농성이 가능해서죠.

포곡식은 산과 골짜기를 끌어안아 크게 둘러쳐,

길이도 길고 면적도 넓어 긴급시에 주민이 함께 농성합니다.

'wall'이라고나 할까요?

영주들이 거주하는 'castle'하고는 또 다른.


성문은 북,동,남 이리 세곳.

북문의 경우 지금은 없어졌지만 초기엔 밀어 여는 성문도 있었겠죠.

나머지 두문은 성벽을 절반만 쌓고 아래로 사다리를 놓고 오르내리는 현문(懸門).



정면으로 보이는 문이 북문(北門)으로 온달산성의 정문.

북쪽면,,,그러니까 남한강이 바라다 보이는.
북문에서 돌출된 성벽,즉 치(雉) 보이시죠?

이는 최근 복원한 것이고 나머지는 원모습.
치는 고구려 성벽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성벽을 돌출시켜서 쌓은 것으로 이곳 외에도 두군데에 치가 더.

성 오른쪽으로 동문이 보이네요,,,석축을 절반만 쌓고 사다리로 오르내리는 현문 형태. 

 현문(懸門)이요?

말그대로 사다리문을 올려놓고 비상시에는 치워버리는.

평상시 사용하다 비상시 막아버리는 성곽의 암문(暗門)하고 비슷한 역할.



왼쪽은 단양쪽으로 남한강 하류,우는 영월 쪽 남한강 상류.

앞마을은 영춘면.

예전엔 영춘현으로 단양군 보다 격이 더 높았네요.

삼국사기,동국여지승람에서는 영춘을 을아단현이라 온달산성을 아단성이라 했네요

乙이 上을 뜻하니 한강 상류에 있는 아단현이라는.

 

자,어떠시나요??

산성도 산성이지만 풍광이 좋아요.

보이는 저 마을이 영춘으로 상리,

아랫쪽(현 온달산성 쪽)이 하리인데 상리 쪽에 상위나루가 있어요.

상위나루에서 온달은 화살을 맞아 숨졌고 장사를 지냈다는 전설이.

또한 산성에서 18km 떨어진 영춘면 사지원리(왼쪽 먼산 너머)에는

고구려식 계단 적석총인 '태장이묘'가 있는데 온달의 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답니다.

앞의 야산 강변쪽에는 '쉰돌'이 있어요.온달이 장수들과 쉬었다해서.

그 쉰돌엔 윷판이 새겨져 있는데 온달이 장수들과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여기서 시선을 확대해 봅니다!


강 건너 우측 보이는 산이 태화산으로 충북과 강원도 경계를 이룹니다.

저기에도 고구려 산성인 태화산성이 있죠.

포곡식 산성으로 온달산성과 비슷한 역할을.

유독 영월,영춘 남한강 변에 많은 고구려 성이 있는데는 이유가 있다는.

그것도 산 정상이 아닌 남한강 변에 바짝 붙어서.

왕검성,대야산성,정양산성,완택산성 등등.

고대엔 '강=길'

남한강 수로를 확보하기 위한 고구려 산성들.  

역시 산에 오르면 인문지리가 읽히고 역사가 보여요.

예전 게시물 올릴 때는 몰랐는데 오늘 알았다는.

그땐 첩첩산중 단양~영월 남한강 변에 산성들이 왜 이리 많은거지?...하며 의문을 품은 정도.

온달산성 위쪽 부터 영월까지 태아산성,대아산성,정양산성,완택산성 등 4개나 있으니.

 

그 산성을 찾아 영월까지 남한강을 한번 잠시 거슬러 올라보죠!



영월 쪽 남한강 따라 595 지방도로에서 바라본 소백 연봉 북사면.

온달산성은 사진 우측 하단 남한강 변에 있고.

좌측으로 능선길을 타면 구룡산 지나 태백산이 나오겠죠.

 

고대의 길은 늘 물길을 따릅니다.

특히 우리나라같은 산악국가에서 '강은 곧 길'

우리나라 고지도를 보면 모든 길은 강을 중심으로 표현되요.

그래서 고지도를 보면 산수에 얹혀 사는 마을들이 더 코믹하고 정겹게 보입니다.

영춘서 영월까지 595 지방도로도 철저히 남한강을 따라요.

첩첩산중에 강을 따라 난 길이다 보니 길 아래로는 강이 흐르죠.

이 길들은 산과 강이 맞닿는 산록 변을 지나다 고개를 넘고,

다시 강으로 바싹 붙는 상승과 하강을 반복합니다.




영춘 상리(온달을 장사지냈다는 그곳) 고갯길서 바라본 남한강,그리고 멀리 소백산 연봉.

남한강은 단양~영춘~영월까지 첩첩산중을 비집고 흐릅니다.

저 모습이 남한강 변에서 삶을 이어온 자들의 전형적인 마을 형태.

산들 사이로 물이 흐르고,

수천만년 산이 선사한 충적토와 강이 만들어준 모래톱 위에서의 삶.

산은 땔감과 도피를,강은 물과 이동을 주고.




태화산 아랫 길목에서 남한강&대아산성

 

왼쪽 마을은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산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고을이죠.

그런데 이곳 남한강변에는 서로 마주하는 두개의 산성이 있어요.

태화산성과 대아산성!

그런데 두개나 있는 이유가 있어요.

여기가 두 물길이 만나는 요충지 거든요.

그래서 강변따라 난 595지방도로와 88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곳.

(사진에서) 끝으로 하얀 절개지가 보이는데 뒷쪽 봉우리가 대아산성.

그리고 그 뒤쪽으로 88번 지방도로.

88번은 김삿갓면~중동면~상동면을 지나 태백산과 함백산을 가르는 화방재(백두대간)를 너머 태백시에 이릅니다.

영월 상동,중동이라니...혹 학창시절 지리 시간 기억나시나요?

탱크 등등 군수품에 절대적인 세계적인 텅스텐 산지(지금은 다 파먹음)

상동은 단위 광산으로는 1위(흠;;그땐 이런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텅스텐은 우리말로는 중석(重石)이라 하죠.

금속 중에서 녹는 점이 가장 높은 3410°C 여서 전구 필라멘트 등에 사용하는 전략 광물.

 

태화산 정상서 보면 아래~



태화산 정상서 각동리.


우측 물길 따라 내려가면 영춘 온달산성 방향,

좌측으로 거슬러 오르면 고씨동굴,정양산성 거쳐 영월읍.

사진 중앙의 강변 산자락 하얀 절개지 보이시죠?

위쪽 작은 봉우리가 대아산성.

남한강은 이곳에서 두위봉,백운산(강원랜드),태백산에서 흘러온 새 물길을 받습니다.

첩첩산중 물길 따라 영월군 중동,상동 고을이 들어섰고.

우측 멀리 펑퍼짐한 봉우리가 사북,고한의 뒷산인 두위봉~백운산 능선.

(며칠 전 산행처.한여름 야생화 천국)

 

그러면 대아산성서 본 태화산은?  



대야산성 남한강 변에서 바라본 남한강 & 태화산.

 

맞은편 태화산 우측 4부 능선에 태화산성이 있어요.

양 산성을 통해 남한강 수로를,아니 길을 오가는 군사와 물류를 통제했을 터.

대아산성 앞 각동리에서 강 따라 조금만 오르면 잘 아시는 고씨동굴이 나옵니다.

그 시절 수학여행 필수 코스!

고씨동굴서 수키로 오르면 또하나의 중요한 산성이 나오는데 정양산성!

여기서 영월읍은 지척.




태화산성에 서면?

이렇게 태화산성은 태화산 정상 인근이 아니라 남한강 변에.

영월읍도 멀리 한눈에 들어와요.바로 앞이 영월화력발전소.

발전소 뒤쪽 산이 계족산 능선으로 여기에도 정양산성이 있네요.




정양산성

정양산성도 계족산(889) 남한강변에 바짝 붙어서 있어요.

물론 남한강 수로 장악이 목적.

계족산 정상엔 왕검성이라는 산성이 또 있다는.



계족산(정양산성)에서 바라본 남한강 수로...멀리 소백산 주능선이자 백두대간.

 

수로 중앙 다리 보이시죠?

고씨동굴 들어가는 그 다리입니다.그러니 강 건너 우측은 당연 태화산.

황톳물 끝으로 대아산성이 보이고.

대아산성 좌측 계곡으로 난 88 지방도로는 두위봉,백운산에서 흘러온 강을 따라 달립니다.

정말 아름답고 손때 덜탄 그런 오지.

고한,사북,태백시 쪽 가시려거든 시간이 좀 들더라도

영월읍에서 획일적인 38국도를 타지 마시고 우회해 고씨동굴 지나 이길을...

두길은 태백시에서 만납니다.

우측 아래로 우리나라 최초 화력발전소였던 영월발전소가 보이고.

물론 인근 함백 탄좌의 석탄을 이용했으나 지금은 천연가스.

최초 삭도(케이블카) 설치 구간이기도,무연탄을 발전소까지 끌어올린 것.


좌측 정상으로 흔적들 보이시죠?

  그리고 멀리 소백산 능선들도.

V홈의 비로봉~국망봉이 선명하네요.

좌측 끝 히미하게 백두대간 길 구룡산도.



계족산에서 영월읍.

 

읍 뒤쪽으로 페러글라이딩의 겅지 벌마로 천문대가 있는 봉래산(802)

차가 정상 까지 오를수 있어 가는 길 들르시면 전망이 ㅎㄷㄷ.

절대 후회 안하실 겁니다.

왼쪽으로 서강(西江)...우측이 동강.

둘이 만나서 드디여 한강이라는 이름을 얻으니,남한강!

동강 상류는 정선읍의 조양강.

우측 멀리 오대산 비로봉이 보이고.

좌측 끝이 원주 치악산 능선.

이렇게 서강은 치악산과 계방산,오대산이 원류...동강은 태백 검룡소에서.

우측 앞이 완택산으로 여기도 완택산성이 있네요.

전시 때 영월읍 일대 주민들의 농성 처.

원나라 잔족세력들 침략 때 피신했다는 기록도 나오고.


정리합니다.

 고구려군의 남하 루트는 이러했겠죠.

1.파주~춘천~원주~제천~단양~영춘 이러거나,

2.제천에서 영월으로 동진해  남한강을 따라 남하. 
태화산성,대아산성,왕검성,정양산성,온달산성 등 고구려 산성들이  이를 증거합니다.

'남한강=길' 

 

다시 온달로 리턴!!


우측 봉우리가 영월 마대산(1051)


마대산 아랫 쪽에서 김삿갓이 신혼을 보내고 뭍혔네요.

지금은 숫제 일대 행정명을 김삿갓면으로 바꾸었고.



최근에 성내 위쪽에 정자 하나가 생겼어요.

앞으론 남한강,뒤로는 소백산이 한눈에 들어온 명당자리.

옛 온달이 지휘하던 서장대나 동장대는 딱 저 자리에 있었을 겁니다.

과일도 깍고 앉아 쉬노라니 문득 생각이 드네요.

'보름달 뜨는 그 어느날 비박(bivorac) 한번....'

그때 보름달은 태백산~소백산 연봉 그 백두대간 어드메에서 떠오를 겁니다.



역사 속으로 한눈을 팔아봅니다.

온달산성의 지리적,역사적 위치!


온달산성은 고구려가 장악하면,북으론 남한강을 통제하고 남으론 소백산을 방어.
반대로,신라가 장악하면 소백산 배후기지로 하고 남한강 향하는 대고구려 전초기지.
그러면 누가,언제,왜 쌓았을까?
죽령~계립령(현 조령 인근) 북쪽은

소백산~월악산~조령산~희양산(문경)~속리산(보은) 이북과 한강 이남 지역의 사이.
즉 충주~단양 일대는 삼국시대 전략적 거점이였어요.
고구려는 국원성(충주)을 제2의 수도로 삼고 남진 전진기지로,그리고 단양과 영춘은 동쪽 날개로 삼습니다.

먼저 충주~영춘과 단양 일대는 최초 백제 땅이 됩니다.
광개토대왕이 남하를 시작한 390년대 이후 1백여년 간은 고구려로 넘어가죠.
현존하는 고구려 비는 두개 있는데,

고구려의 초기 수도 집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충주의 고구려중원비.
광개토왕비는 아들 장수왕이,중원비는 장수왕의 손자 문자왕이 세웠습니다.
각각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정복사업을 칭송하는게 주 골자.
충주 중원비에는 '고려태왕.....조왕(祖王)'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손자 문자왕이 장수왕을 祖王이라 칭합니다.장수왕은 장수해 아들이 먼저 죽음.
당시 고구려는 울진,영덕,평해,포항(냉수리고분이 고구려식)까지,,,죽령 넘어 안동,의령까지 진출.
안동,의성,영춘엔 고구려 무덤양식인 계단식 적석총(집안의 장수왕릉&태왕릉이 대표적)이 있고.
온달산성 소백산 너머 순흥에는 남한에선 유일하게 고구려식 벽화도 있습니다.
서역인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는데 널방 입구에는 서역인 모습의 역사가요.
고구려를 상징하는 삼족오(三足烏)도 그려져있고.
경주 호우총에서는 장수왕이 광개통대왕에 제사지낼 때 쓰던 그릇인 호우가 발굴되었어요. 

당시 신라 세자가 고구려 인질로 끌려가기도.
중원비에는 신라토내당주(新羅土內幢主)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당주'란 고구려 지방관리를 말하는 데, 고구려가 신라에 통치관리를 직접 파견했음을 알수있는 것.
또한 '의복건립처'라는 조공 장소가 있어

고구려 태자가 직접 신라왕을 이곳에 불러 조복(祖服)을 하사했습니다.
심지여 신라 매금(寐錦,신라왕)을 노객(奴客)이라고 칭하기도.
광개토대왕은 400년에는 3만 대군을 이끌고 신라원병 요청을 받아들여 가야를 치죠.
그런데 고구려 남하 정책에 대한 당시 백제와 신라의 대응이 좀 다릅니다.
백제는 북위에 밀서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며 대항합니다.
그러나 그 밀서가 발각되 장수왕의 보복을 당하지만 신라는 납작업드렸다는.
결국 백제 개로왕은 아차산(광진구)에서 살해당하고 한성서 웅진으로 천도합니다.

이제 신라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죠.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고 고구려와 맞서기 시작합니다.소위 나제동맹으로 1백년간 지속.
그리고 나제동맹은 '성왕 대 진흥왕'(시호에서 느낌이 오죠? 다이네믹 같은 거)이라는 두 걸출한 군왕대에 절정을.
때마침 장수왕 후 고구려는 귀족간 극심한 권력투쟁이 벌어집니다.

안장왕은 피살되고 어떨 땐 2천명이 주살되기도. 이어 영원왕,평원왕,영양왕 시대로 접어듭니다.
이들은 왕권 강화를 위해 평양성(장수왕 때 평양천도)의 내성(內城)인 국내성을 신축하고 신진 세력을 양성하죠.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온달,거문고의 왕산악,을지문덕.

이같은 혼란기를 틈타 백제,신라는 한강 일대를 점령합니다.

때는 백제 성왕,신라 진흥왕 대로 550년 즈음.
고구려 남진으로 백제가 일대를 빼앗긴지 거의 150년만이네요.
그러나 신라는 1백년 동맹을 배반하고 백제로 부터 한강 일대를 빼았습니다.
열받은 성왕(공주에서 부여로 천도)은 신라 응징에 들어가요.
3만 군사를 아들에(성왕 사후 오른 위덕왕) 주고는 신라군이 주둔하고 있는 관산성(옥천)을 치게하죠.
그리고 그는 야밤 아들들을 격려키위해 호위군 50명만 거느리고 관산성으로 향하고.
정보가 샜는지 보은 삼년산성에 주둔해있던 도도(김유신 조부인 무력의 비장)의 매복에 걸려 머리가 베입니다.
(역사는 가끔 이리 황당한 것으로 물줄기가 바뀌곤하죠)
이때부터 백제는 급격한 내리막을,반면 신라의 중흥기가 열리고.
이 즈음 진흥왕이 551년 경 적성(단양)을 탈환 후 공덕비를 세우니 바로 적성비(단양).
적성비(국보)가 있는 곳이 바로 단양읍 남한강변 적성산성이죠.

고속도로 휴게소에 국보가 있다구요??? 
중앙고속도로 상행선 단양휴게소(성재산)에 있어요.
산성은 일부만 남아있지만 당시는 전략상 온달산성 만큼이나 중요.
북은 남한강,동은 죽령천,서는 단양천에다 배후가 바로 죽령(소백산)이 받치고 있죠.
이 적성산성이 신라가 쌓은 산성이라는 근거로 20키로 떨어진 온달산성도 신라가 쌓았다는 주장을 하기도.
죽령 넘은 영남인들은 적성산성을 지나 충주나 제천으로 갔으니 지리적 중요성이야 더 말할 필요가요.
고구려는 절치부심.
빼앗긴지 40년 지난 후 고토 수복에 들어갑니다,,,총대장이 바로 온달장군.

이리 적성산성과 온달산성은 연관 관계가.

물론 태화산 태화산성,남한강을 가운데 두고 위치한 태화산성 맞은편 대하산성도 마찬가지.



여기서 의문 하나!!


온달은 정말 바보였을까, 그리고 그 바보가 공주를 취했다고요???
바보 온달 얘기는 김부식의 삼국사기 열전편에 나와요.

김부식의 정치적 의도가 들어갔겠죠.

분명 온달은 고구려 최고 장수로 고구려 조정에서 온달은 평원왕의 신진세력 육성책의 소산.
온달(溫達,~591)

성은 온씨.봉성 온씨의 시조로 김제시 금구엔 온씨 집성촌도 있어요.
영원왕 때 태어나서 평원왕 사위가 된 후 많은 전과를 올리다 영양왕 1년에 온달산성서 전사.
영양왕은 을지문덕이 수나라를 물리치던 그 왕.
온달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가 유일합니다.우리가 아는 바보 온달 얘기는 다 여기서.
김부식은 산국사기에서 10명의 인물을 열전에 기록했는데 온달도 그 한명.
온달은/신라에 빼앗긴 계립현(峴)과 죽령 서쪽의 고토를 회복치 않고서는 돌아오지않겠다/고 다짐하고 출진.
그리고 /아단성(阿旦城) 아래서 날아온 화살을 막고 전사했다/고 삼국사기는 전하고 있습니다.
아단은 영춘의 고구려 지명.

여기서 내 궁금한 것은 온달의 평양성에서 출발 후 남하 루트!
당시 한강 하류는 신라 주력군이 있었으니 강원도 산간지역을 거쳤겠죠.
1.파주~춘천~원주~제천~단양~영춘 이리,

2.혹은 영월을 거처 남한강을 따라 남하했던지.
인근 영월 쪽엔 태화산성,대아산성,왕검성,정양산성 등 고구려 산성이 많은게 이를 밑받침. 

그러면 온달산성은 누가 쌓았을까요?신라설과 고구려설로 나뉘어요.
1)석축방식이 경주 남산성,보은 삼년산성과 유사하고
2)인근에 단양 적성산성이 있고, 3)산성이 남한강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신라설을.
1)고구려 산성의 특징인 치(雉)가 세군데 있고

2)인근에 온달 전설이 너무 많다는 점을 들어 고구려 산성으로 본다는.
그런데 산성 정상에 서면 온달산성을 쌓은 이유가 다중적임을 한눈에 느낄수있어요.
정면의 남한강 뿐만 아니라,소백산 능선도 한눈에 들어오기에 남하하는 신라군을 한눈으로 꿰뚤수있다는.
영춘에는 온달 관련 전설이 너무나 많네요.

온달이 한두달 머물렀다면 그런 얘기가 전해질수 없었겠죠.
1)상리나루는 온달장군이 무술을 수련하고 장사 지낸 곳.
온달을 장사지낼 때 관이 움직이지 않았는데 평강이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생사가 이미 결정됐으니 편히 가라/ 하니 관이 움직였다는.
2)온달산성 아래 절벽에 있는 공주굴에서는 온달과 평강이 사랑을 나누었고,
3)온달동굴(산성 바로 아래 남한강 가에)에선 온달이 무술 수련했고,
4)'쉬는 돌(쉰돌)'은 바위에 윷판이 새겨져 있는데 온달이 후퇴하다가 윷을 놀았다는,
4)하류의 군간(軍看)나루는 온달의 군사들이 파수를 보던 곳이고.
5)군간나루 북쪽의 '선돌'은 온달을 도우려 달려오던 누이가 패전소식에 그만 굳어 돌이 된 것이라는.
6)영춘면 사지원리에 있는 고구려식 계단 적석총인 '태장이묘'는 온달장군의 무덤이라고 전해오고 있고.

 

요즘 지방자치 간 역사 소유권을 놓고 티격태격들 하죠.
1)고려 공양왕릉을 놓고 파주,동해시가 싸우고,

2)홍길동을 놓고 강릉,장성(전남)이,

3)심청전은 옹진군과 곡성군이,
4)요즘엔 울진대게 대 영덕대게 간 원조싸움이,최근엔 포항대게가 가세했고.
5)온달도 그래요.
광진구는 아차산이 온달이 전사한 그 아단성이라며 최근에 온달 동상을 세우고 난리가 아니죠.
아차산성은 아단성에서 음운이 변형되었다는 논리로.
그런데 영춘의 고구려 이름은 을아단현(乙阿旦縣)이여요.

을지문덕 처럼 흔히 乙은 上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풀면 한강 상류에 있는 아단현이 되겠죠.
삼국사기에 "아단성(阿旦城) 아래서 날아온 화살을 막고 전사했다' 했는데 그래서 아단성이 온달산성이겠죠.
참고로,평양 인근 동명왕릉 옆 진파리 4호분을 북한에서는 온달평강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역사학 만큼 정치적인 학문도 없죠.
김부식 삼국사기 열전(列傳) 온달조(溫達條)를 발췌 정리하면 이래요.

/온달(溫達)은 평강왕 때 사람으로 얼굴은 우습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고왔다.
밥을 구걸해다가 어머니를 봉양하였고,다 떨어진 옷과 해어진 신으로 시정(市井)을 오가니,
사람들이 바보 온달이라고 했다.평강왕의 어린 딸이 울기를 잘 하니,농담삼아 늘 이렇게 말했다.
"항상 우니, 바보 온달에게나 시집 보내야겠다"

<중략>
구구려에서는 3월3일이면 낙랑 언덕에 모여 사냥을 하고,잡은 것으로 신에게 제사 지냈다.
사냥하러 나가자 군사들이 모두 따랐고 온달도 그 동안 기르던 말을 타고 따라갔다.
남보다 빨리 달렸고,짐승도 많이 잡았는데 이를 따를 자가 없었다.왕이 놀라며 칭찬을 하였다.
이때,후주의 무제(武帝)가 요동으로 쳐들어 왔다.온달이 선봉이 되어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다.
감탄하여 말하기를,"이 사람은 내 사위다."하고,벼슬을 주어 대형(大兄)으로 삼았다.
온달이 아뢰기를,"신라가 우리 한강 북쪽 땅을 빼앗아 군현을 삼으니,백성들이 원통해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군사를 주신다면,반드시 우리의 땅을 되찾겠습니다."
떠날 때 온달은 맹세하기를,

"계립현(鷄立峴)과 죽령(竹嶺)의 서쪽 땅을 되찾지 못한다면 돌아오지않겠다."하였다.
온달은 신라군사와 아단성(峨旦城) 밑에서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장사를 지내려 하니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공주가 와서 온달의 관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이미 결정되었으니, 마음놓고 돌아가소서." 그러자 드디어 관이 움직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다./


고구려 총사령관이 바보였다??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칭송한 신라 화랑도의 위상하곤 너무 비교되지않나요??
온달은 일국의 당대 최고 장수였고 많은 공도 세웠습니다.
수나라는 온달이 죽은지 5년 후 고구려를 침략해요.당시는 영왕왕 재위시절.
당시 수나라 사신과 대화 내용이 삼국사기에 나와요.
"신라가 빼앗아간 땅 수백리를 우리가 되찮았다"

이는 당연 온달장군에 의해서겠죠.
온달이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고토를 되찾아오겠다고 말한 그 계립령,
그러니까 월악산 미륵대원 터 인근에 온달무덤으로 전해지는 적석총이 있어요.
또 온달이 전투 후 쉬다 공기놀이를 했다는 공기 바위(1미터)가 있고.
온달이 단지 온달산성에서만 전투한게 아니라 충주~단양,영춘 까지 중원을 누볐다는 얘기겠죠.

삼국사기는 정치적인 산물.

'고려사'가 고려를 문어뜨린 조선세력들이 집필한 것과 일맥이 상통하죠.

신라 왕실계로 경주 김씨 김부식(1075~1151) 자체가 철저히 정치적인 인물.
삼국사기의 극단적인 실례 하나~~.
삼국 중 가장 먼저 건국한 나라는?? 초등생도 알듯 당연 고구려,백제,신라 순.
그러면 보수 역사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그 삼국사기에도 그리 서술되었을까?
신라는 기원전 57년에,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백제는 기원전 18년으로 나옵니다.
신라가 가장 앞섰다니,황당.
조선조 선조실록은 둘입니다.선조실록과 수정선조실록 이리.
전임 권력이 쓰고나니 후임 권력이 완전히 뒤집어 다시 쓴 것..

그래서 당시 인물도 영웅에서 역적으로 왔다갔다.역사는 승자의 기록.



 유려한 곡선의 미(美)


설계자는 아래 남한강의 구비치는 물줄기에서 영감을 받았을지도.

저 말굽 형상이 가리키는 산 보이시나요?

마대산(1051)입니다. 우측은 어래산.

마대산~어래산 사이에도 많은 서사가 있네요.



동북방향~~~

마대산 봉우리를 넘으면 영월이요,

우측 어래산 너머너머엔 정산,고안,태백이 나오죠.

당시 대한민국 무연탄의 80%를 캐내 산업화 시대의 용광로였던 그곳.

영월 마대산과 어래산 사이,와석리 노루목에 역사적인 인물 한명이 있으니~~.


  삿갓 김병연(1807~1863)!

행정동명도 예전 하동면에서 김삿갓면으로 바꿔버린.

노루목은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마대산 자락에 있어요.

온달산성 앞 영춘읍에서 935번 지방도로를 타고 동남쪽으로 배틀재를 넘으면 충북의 동쪽 끝인 의풍리.

의풍리서 마구령을 넘으면 부석사가 나오죠.

그러니까 부석사에서 이곳 온달산성으로 오려면

마구령 너머 의풍리로 나온 후 935 지방도로를 타면 가장 빠른 길이네요.

(그러나 난 지금 죽령으로 우회했고)

노루목은 영춘면 의풍리와 영월 김삿갓면 와석리 사이.

 

김삿갓은 유랑 후 57세 되던 해인 1863년 전라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서 13년 살다 객사.

30년 길 위의 인생, 결국 길에서 인생을 완성.

3년 후 차남 익균이 와석리 노루목으로 이장을.

김삿갓 어려 백일장에서 조부를 비난하는 시를 쓴 곳은 영월 동헌 앞마당.

김삿갓은 결혼 후 와석리 어둔으로 들어와 살았다는.

삿갓 김병연(金炳淵)은 1807년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회암사 그곳)에서 태어났어요.

그가 6세 때 조부 익순(益淳)이 홍경래난 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고,

부친은 남해로 유배를 갔죠(구운몽의 저자 서포 김만중도 남해 유배).

이후 조부의 죄가 멸족에서 폐족으로 감형되어 병연 형제는 모친에게로 돌아갑니다.

눈을 피해 모친은 가족을 이끌고 영월 삼옥리로 들어온거죠.  

할아버지 김익순은 순조 때 일어난 홍경래난 때 선천 부사로 결국 농민군에 투항.

그러나 관군이 토벌 후 김익순은 관군에게서 농민군의 우두머리 목을 사서

자기의 전리품으로 속여 조정에 올렸다 가중 처벌로 처형됩니다.

병헌은 20세 때 영월 열린 향시(鄕試),즉 백일장에 응시합니다.

백일장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근저인 충효를 지방까지 장려하기 위한 시책 중 하나.

백일장 시제는 바로 이것.

'홍경래난 때,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

김병헌은 /한번 죽어서는 그 죄가 가벼우니 만번 죽어 마땅하다/는 격정의 글로 장원.

백일장 장소는 영월 동헌으로 단종이 목졸려 죽은 바로 그곳.

 

그해 모친으로부터 자신의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죄책감(?)에 마대산 자락인 어둔이 계곡으로 들어와 은둔생활을 합니다.

양백지간이 십승지로 여겨졌기에 살기 위해 들어왔겠죠.

잠시 한양으로 올라가 공부했으나 24세 되던 해에 출세에 대한 생각을 접고.

학균을 형에게 입양시키고는,

그해 얻은 차남 익균을 남겨둔 채 ' 죄인이 하늘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삿갓을 쓰고 방랑을 떠납니다.

금강산을 시작으로 함경도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을 유랑하다 말년엔 부석사 안양루에도 올랐죠.

57세 되던 해인 1863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에서 13년을 머물다 사망.

3년 후 차남 익균 등에 업혀 주검으로 와석리 노루목으로 귀향합니다.

영월군 김삿갓면 어둔리 선래골(선락동)에는 집터가 있고,근처 노루목에는 묘가 있어요.

선래골(仙來),선락골(仙落)은 김삿갓을 의미.



큰 나무들이 사라지자 엉겅퀴,쥐오줌풀 등등 야생화 터전으로.



성내 가장 위쪽인 남문 쪽 쉼터.

저기에 앉으면 부드러운 곡선의 성체와 남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고개를 돌리면 남쪽의 소백산까지.


남문(南門)

 

남문서 보면 소백산이 한눈에 들러오고

왼쪽 봉우리가 김삿갓의 마대산.

마대산은 어래산(1065)으로 이어지고 백두대간 선달산(1239)과 만납니다.

일대도 십승지로 알려지면서 많은 백성들이 핍박을 패해 이곳으로 들어왔죠.

 

그래서 일대는 수탈없는 세상에 대한 염원 담긴 지명들이 많아요.

'命生洞'....未死里' 등등

남사고가 지은 '남격암 산수십승 보길지지'(南格菴山水十勝保吉之地)에도 이곳을 10승지로 지목했네요.

求人種於兩白!!

'사람은 소백과 태백 사이에서 구하라'

난세를 피해 이곳 양백지간에 들어왔겠죠.

기묘사화 때는 노루목 바로 옆 어래산(御來山) 미사리 계곡으로 조광조 후손들이 흘러 들어왔어요.

그래서 조촌(趙村)이라는 마을을 생겼죠.

조촌서 미사리 계곡을 따라 더 오르면 명생동(命生洞)이 나옵니다.

命生洞....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곳.

미사리 계곡의 미사리는 '未死里'.

'죽지않는 마을' 이니 이곳에 정착한 이유를 알만하네요.

 


남쪽 사면의 훼손구간~~

석축의 속살을 볼수있어 좋네요.

시간 절략을 위해 중앙부는 흙이나 그냥 돌들로 채우는데 데 저리 외벽을 쌓듯 공을.

온달산성의 원형이 잘 보존된 원인이겠죠.


중앙 너머로 선달산.

선달산은 동진해 태백산에,서진해 소백산에 닿고.



산성 정상서 남으로 시선을 돌리니~~~~~~~~~~소백산 연봉이.   

산성 정상에서 북쪽 남한강 풍광만이 전부는 아니여요.
山과 水를 종합세트로 즐길 수 있는 이런 곳도 흔치않을 겁니다.

이리 보니 고구려 군이 이곳에 주둔했다면

북쪽으론 남한강 수로를 남쪽으론 소백연봉 까지 한눈에 감시할수 있겠어요.

봉우리 바로 뒤가 정상 비로봉.

좌측 능선을 넘으면(늦은맥이재,마당치,고치령) 부석사가 나옵니다.

구인사는 지능선들 사이로 숨었네요.

난 바로 아래 저 계곡,능선들을 헤집고 난 차길을 타고 왔고.



중앙 간이 의자 보이시나요?

정자에 간이의자까지...관의 배려가 읽히네요.

앉아 쉬는데 문득 이 멜로디가 떠올라......



박미경 - 민들레 홀씨되어 (1985年)

 

저 때 친구 집서 저녁을 먹는데 대학가요제? 인가 하더라구요.

마침 저 노래가 흘러나왔고

어,좋네! 뭔가 타겠다...

타긴 타더군요.장려상.

그리고 세월은 흘러.

언젠가 노래방서 불러보았는데 생각 보단 어렵더라는....

지금 게시물 정리하면서 들는데, 좋네요.

https://youtu.be/_PGD7tuYo1c



어느새 내마음


민들레 홀씨되어

(남한)강 바람 타고

훨~훨~~

그대 곁으로 간다....


<부석사에서 소백산 너머 온달산성 까지 끝>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씨페루스
    '21.9.5 4:28 PM

    우리나라에 저렇게 육중하고 장대한 성이 있군요.
    삼국시대에 저 곳이 얼마나 중요한 각축장이었는지 성을 보고 알수 있겠네요.
    온달산성 정말 멋져요. 꼭 가야겠습니다.
    다행히 차로 이동하셨다니 wrtour님 따라떠나기 쉽겠네요^^

  • wrtour
    '21.9.8 12:52 AM

    등산은 싫어하신듯 ㅎ
    1500년 전에 저런 장대하면서도 치밀하게 쌓았는지 갈때마다 놀라워요.
    더 놀라운건 저런 대단한 산성에 일반인이 아는 사람이 거의없다는 것이여요.
    가끔 게시판에 단양 여행지 추천 얘기나오면 언급하신 분이 한분도 없더군요.

    교통편도 편하니 꼭 한번 들르시길.
    주차장서 쉬엄쉬엄 30분이면 충분.
    단양으로 들어오실 때는 꼭 중간 구인사 산길따라.귀가는 남한강 따라.
    남한강 영월읍 거치시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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