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바람의 지문

| 조회수 : 784 | 추천수 : 0
작성일 : 2018-09-30 06:40:57

바람의 지문

                 - 이 은규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힌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어진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당신의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 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 문학동네, 『다정한 호칭』중에서




신문물로 이북을 하나 장만하였다


바람이 책장을 넘기지도

또 다른 바람이 책을 덮지도 못한다


다만, 

그사이 

나처럼 묵어 간

내 손가락만이 귀신 들린듯

안 읽은 페이지에서

읽은 페이지로,

다시 첫 장을 찍었다가

종국에는 막장으로 내 달린다


이북도

아침드라마도

사는 것도

결국 다정히 모두 만나는 곳


우리들의 막장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산이좋아^^
    '18.10.1 8:59 AM

    오가며
    가끔은 쉽지않는 고운시
    되새김질해봅니다.
    감사합니다

  • 쑥과마눌
    '18.10.2 12:14 AM

    저도 감사^^

  • 2. 공주
    '18.10.1 7:30 PM

    쑥과 마눌님 덕에 줌인줌아웃에 처음 댓글 써 보네요
    요즘 님 시 기다리며 82 엽니다.
    늘 님이 패러디한 아래의 시가 원시보다 더 통찰력있고 촌철살인... 좋아요
    등단해도 되겠습니다. 다수를 위하여....&

  • 쑥과마눌
    '18.10.2 12:23 AM

    좋은 시에 묻어 가서 그런겁니다 ㅎㅎ
    격려 감사해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2637 혼자만 즐거우면 된다는 생각 1 도도/道導 2024.05.02 95 0
22636 민들레 국수 오늘 도착물품입니다 도너츠 라면 1 유지니맘 2024.05.01 412 0
22635 명이나물 장아찌와 절에 핀 꽃 마음 2024.04.30 230 0
22634 깨끗하고 싶다 2 도도/道導 2024.04.30 180 0
22633 만원의 행복 진행상황 알립니다 4 유지니맘 2024.04.29 564 0
22632 소망의 눈을 뜨다 4 도도/道導 2024.04.29 157 0
22631 모든이가 볼 수 없다 2 도도/道導 2024.04.28 209 0
22630 밤 하늘의 별 처럼 4 도도/道導 2024.04.26 317 0
22629 배필 4 도도/道導 2024.04.25 366 0
22628 보고싶은 푸바오... 어느 저녁에 2 양평댁 2024.04.24 667 0
22627 남양주 마재성지 무릎냥이 10 은초롱 2024.04.24 1,243 0
22626 그렇게 떠난다 4 도도/道導 2024.04.24 332 0
22625 홍제 폭포입니다 2 현소 2024.04.23 423 1
22624 오늘은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는 날 4 도도/道導 2024.04.23 291 0
22623 아파트 화단의 꽃들 1 마음 2024.04.22 406 0
22622 민들레 국수 모금액입니다 1 유지니맘 2024.04.22 795 1
22621 여리기만 했던 시절이 4 도도/道導 2024.04.21 399 0
22620 진단조차 명확하지 않은 ‘암’!! 암진단은 사기? 허연시인 2024.04.20 552 0
22619 천사의 생각 4 도도/道導 2024.04.20 314 0
22618 산나물과 벚꽃 1 마음 2024.04.19 408 0
22617 소리가 들리는 듯 2 도도/道導 2024.04.19 270 0
22616 잘 가꾼 봄이 머무는 곳 2 도도/道導 2024.04.18 319 0
22615 민들레국수 만원의 행복 시작 알립니다 2 유지니맘 2024.04.18 680 1
22614 세월을 보았습니다. 4 도도/道導 2024.04.17 419 0
22613 이꽃들 이름 아실까요? 4 마음 2024.04.16 538 0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