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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권여선작가의 봄밤은 봄이지만, 밤이더라

| 조회수 : 1,534 | 추천수 : 2
작성일 : 2017-07-05 02:12:53

안녕 주정뱅이라는 단편집에 

첫 번째로   나오는

그 짧은 단편인 봄밤.

페이지 수가   서른한   페이지밖에   안 되는

그 소설 하나를 읽고,

나는 더 이상의 책을 읽지 못하고 덮었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권여선의 글은

공부를 아주 잘 하는   우리 반   전교 일등의

노트필기 같다.


딱 필요한 만큼만

요약하고, 정리하고, 차트를 그려 놓은..

그런 메마르고   정 없는

그런 싸가지   노트 같아서

빌려가서 벼락치기하는   반 친구들이

그 사무적인,

그 뼈대만 남긴,

그 무심함에 투덜거리지만

핵심은 다 들어있음을 감탄하고 만다.


실패를..

연민을..

따스함을..

이리 표현할 수도 있다.


어린 아들을 뺏기고 술주정뱅이가 된 전직교사 영경과

그 영경의 표정에서 여자 노숙인을 발견한

진짜 노숙인 신용불량자 수환이가

후다닥 해버리는 친구의 재혼식에서 만나고,

지난 세월이 챙겨준   류머티즘과   알코올 중독에

둘이서 다정하게 요양원에서 살아간다. 


모..뭐냐..?

리빙   라스베가스에   니콜라스 케이지냐..?


새로울 거 없는 서사에

딱히 더 새로울 거 없는 

모범생다운 분모와 분자로 표현되는 인간군상학까지..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익숙하지만 건조하고

건조하지만 날카로운 통찰이

억센 뼈다귀처럼

목에   터억   걸려, 

읽는 사람   마음고생시킨다.


그   마음고생 끝에

심쿵이 있다.


그 심약한 두 주인공이

서로   죽을힘을   다해 

서로를 보낼 때까지 버텼다는 거에..

자신에게 돌아 올 행운의 몫이 

서로라는 거를 알아보는 지점에 말이다.


그렇다.


무언가,

누군가,

죽을힘을   다해 버틸 대상이 있다는 거

삶의 어느 고비에서 만나든

행운의 몫이 맞다.


그래서,

권여선은 전교 일등이고,

전교 일등의 노트나 소설은 

다정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지만..

짧고 맞는 말만 적어 놓은

빠싹 마른 뼈다귀가 무성하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ripplet
    '17.7.5 12:58 PM - 삭제된댓글

    잘 읽었어요.
    권여선 작가 기억할게요
    여자고 문과생인데도 그런 사무적이고 메마른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꼭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비유하신 '노트필기' 얘기는, 마치 대학시절의 제 수업노트를 들킨 것 같아 뜨끔하고 재밌었어요ㅋㅋ.
    근데 전교 1등.....요?;;;;;; 전 그냥.....필기만 즐겁게 한 걸로ㅎㅎ.

  • 2. 초모
    '17.7.20 8:51 AM

    알쓸신잡 김영하 커피 보다가
    권여선작가의 '봄'이 보이길레 들어왔어요

    저는 눈물만 흘리다가 말았는데
    더이상 표현할 길이 없어서...

    이리도 내 마음 표현해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김영하의 책읽어주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소개해주셔 읽었는데..(그분은 "이모"를 읽어주셨죠!)

    오늘 김영하작가와 뭔가 많이 얽히네요

    노는 언니의 노는 마당이 궁금합니다^^

  • 쑥과마눌
    '17.7.23 12:17 PM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글이 쓸쓸했을 수도 있었는데요.

    권여선 작가의 내공이 상당하시더군요.
    비슷한 느낌을 받는 사람을 발견하는 건 기쁜 일이네요

  • 3. Harmony
    '18.3.17 11:46 PM - 삭제된댓글

    작년에 올리신 시 이지만
    우연히도 조금전 이글을 읽고...읽으니 쓸쓸해지네요.ㅜㅜ

    죽어서도 보이지 않는 나는 살았을 때부터 유령이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365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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