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호황의 한복판에서, 벌써 메모리의 장례식 날짜를 잡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진단은 이렇습니다. 올해 말 부족이 정점을 치고, 2028년 초 공급과잉으로 전환된다는 것. 그러나 같은 주에, 정반대의 진단이 나란히 발표됩니다 — 2028년까지 중대한 과잉은 없다는 것.
예언이 갈라질 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왜 갈라지는지에 대한 이해입니다. 갈라짐의 뿌리는 이 산업의 오래된 습성에 있습니다. 메모리 사이클을 꺾어온 것은 한 번도 수요의 실종이 아니었습니다. 호황의 한복판에서 서명된 증설 계약서들이었습니다. 공급이 많아질 것 같다고 나 혼자 공장을 안 지을 수는 없고, 안 지으면 그나마의 몫도 뺏기는 구조 — 죄수의 딜레마가 이 산업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고, 피크아웃을 경고하는 이들은 바로 그 유전자를 근거로 듭니다. 지금 3사가 발표하는 투자 계획들, 새로 그려지는 생산의 지도들이 2~3년 뒤의 과잉을 잉태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반대편의 진단에는 강한 근거가 있습니다. 오늘 발표되는 투자의 상당 부분은 아직 클린룸 건물의 단계입니다. 건물을 짓는 일과 웨이퍼를 투입하는 일 사이에는 수년의 시차가 있고, 착공 소식과 공급 증가를 같은 것으로 읽는 순간 시계는 앞서 갑니다. 과잉은 발표되는 것이 아니라 가동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 논란 전체에 빠져 있는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피크아웃이 온다면, 무엇의 피크아웃인가. 메모리는 이제 하나의 시장이 아닙니다. 범용 D램은 증설이 빠르고 전환이 쉬운 평원입니다. 중국의 참전이 가장 먼저 덮칠 곳도, 사이클의 오래된 법칙이 여전히 잔인하게 작동할 곳도 그 평원입니다. 그러나 HBM은 고원입니다. 하이브리드 본딩과 유리 인터포저, 수율과 고객사 인증이라는 관문들이 겹겹이 서 있어, 짓겠다는 결심과 공급하겠다는 능력 사이의 거리가 멀고도 험합니다. 죄수의 딜레마는 모두가 감옥의 열쇠를 가졌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관문을 통과하는 자가 소수라면 딜레마의 수학 자체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다음 하강이 왔을 때, 평원과 고원은 같은 비를 맞고 다른 깊이로 젖을 것입니다.
고원의 관문이 어떤 것인지, 하나만 실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차세대 HBM의 로드맵에는 유리 인터포저가 올라 있습니다 — 빅테크들의 거대 AI 칩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필연적 선택이고, 삼성전자는 이미 이 유리의 가능성을 보고 자체 개발과 공급망 구축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앞서 말한 “짓겠다는 결심과 공급하겠다는 능력 사이의 거리”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증설의 면적을 세는 눈에는 2028년의 과잉이 보이겠지만, 유리 인터포저와 하이브리드 본딩이라는 물리적 관문에서 발생하는 수율의 미세한 차이는 공급의 시계를 통째로 뒤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관문을 가장 먼저, 안정적인 수율로 통과하는 자가 다음 세대의 과실을 독식할 것입니다. 우리가 숫자로 지켜보는 사이클의 이면에서는, 이토록 시리도록 정교한 물리학의 싸움이 진행 중입니다.
저는 피크아웃이 오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조정은 올 것입니다 — 어쩌면 2028년에, 어쩌면 평원에서 먼저, 어쩌면 예언들보다 이르거나 늦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조정의 부재가 아니라 운명의 분기입니다. 피크아웃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시장을 전제하는 동안, 시장은 이미 둘로 갈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란의 승패 대신 두 개의 지표를 지켜봅니다. 착공이 웨이퍼 투입으로 전환되는 속도 — 이것이 과잉의 진짜 시계입니다. 그리고 하강이 왔을 때 첨단과 범용의 가격이 함께 무너지는가, 따로 견디는가 — 이것이 분기론의 성패를 판정할 것입니다.
호황의 정점에서 정점을 논하는 일은 언제나 소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소란의 한가운데서도 물어야 할 것은 결국 하나입니다. 이번 사이클은 과거의 반복인가, 아니면 구조의 변화인가. 저는 후자에 걸었습니다.
(차세대 로드맵과 관문 기술에 대해서는 KAIST 김정호 교수(테라랩)의 HBM4~8 로드맵 발표 영상을 참고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