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기본 성향도 털털하지는 않을거에요.
거기에 환경의 영향이 있을거구요.
어릴때 집안이 망했어요.
그냥 망한게 아니라 완전히
빚쟁이들이 집으로 쫒아오고 엄마는 뒷문으로 도망가고...
나중에는 빚쟁이들이 제 고등학교까지도 찾아왔어요. 돈을 다 못받았다고요.
그때 아버지는 돈 번다고 어디 지방에 가서 얼굴도 볼 수 없었고 부자집 사모님이던 엄마는 시장 입구에서 좌판에 채소를 팔던 때였고... 저희는 겨울에도 연탄이 없어서 이불에 점퍼를 껴입고 지냈어요.
그때 알았어요. 4월이 얼마나 추운 계절인지...
아무튼 교무실을 통해 저를 찾아온 빚쟁이들은 다행히 험한 소리는 하지 않으셨고 위에 적은것과 같은 저희집 상황을 듣고는 혀를 끌끌 차고 돌아가셨어요.
저희 집이 망한 그날이후 매일 악몽을 꿨습니다.
아마 우울증 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매일밤 자려고 누우면 눈물이 나는데도 옆에서 주무시는 엄마가 들을까봐 눈물도 닦지 못해서 눈물이 흘러내려 귀에 고여있었어요.
그당시 한 5년 정도가 매일밤 울거나 잠이 들면 악몽을 꾸었던것 외에 전혀 기억이 없어요.
그래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어찌어찌 사무실에 보조로 취업했다가 늦게 공부해서 장학금 받고 대학도 가고 취업하고 승진도 남보다 빨리하고 결혼 같은건 안하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뒤늦게 가방끈 긴 남자랑 결혼도 했어요. 아이도 착하고 좋은 대학 입학했고요.
친척들이나 주위에서는 다들 착하다 장하다 복받았다고 해요.
그런데 제 마음속에 늘 알 수 없는 불안이 있어요.
그리고 인생은 결국은 고행길이라는 그런 허무하고 슬픈 생각이 항상 들어요.
하나뿐인 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까요?
부모님 없는 차가운 방에서 제가 떨고 있을때도 언니는 씩씩하게 친구들하고 놀러다녔어요.
그런 언니가 야속하면서도 그 철없어보이는 모습이 한편 위로가 되었어요. 그 언니가 젏은 나이에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도 물론 놀라고 걱정됐지만 막연히 괜찮을거라 생각했어요. 언니는 늘 씩씩하고 당당했으니까 그렇게 이겨낼거라 생각했던것 같아요. 게다가 그렇게 떠나기엔 정말로 너무 절었으니까요.
언니가 그렇게 떠나기 전까지는 막연히 열심히 살면 잘 살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던것 같아요.
저는 잠도 안자고 노력했고
온 식구가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지금 저는 객관적으로는 잘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감사하게도요.
사람들은 저를 친절하고 사려깊고 강인하고 활기차고 긍정적이라고해요. 저에게 의지하고 고민도 털어놓습니다.
제가 잘 들어주고 그들에게 힘을 준대요.
그런데 제 내면의 밑바닥은 허무한 회색빛이네요.
저도 지금 제가 잘 살고 있다는걸 알아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 행복하다고 느낄때도 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다 부질 없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어요.
혹시 저 같은분이 또 계실까요?
저는 잘 살고 있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