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당시 노통에 대해 비판적 스탠스로
정치 입지가 곤란해져 18 년간 야인 생활을 했다고 하는데
그때 인터뷰보니까 노통에 대해서는 그의 종로 연설을 듣고
불안하다고 생각한거 같았지만
그래서 그의 선택이 실패라고 하는데요
돌이켜 보면 김의 판단이 아주 틀린것만은 아닌것이
그의 판단도 어떤 현실에는 닿아있었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노통은 너무 빨랐고 김은 너무 조심스러웠다
노통은 이상주의자였고 김은 현실주의자
두 사람 모두 시대적 과제를 인식했고 , 각자의 방식으로 개혁을 추구했으나
그러나 정치적 협력이나 연대가 부족했고 , 이로 인해 두 노선이 분열되면서
결과적으로 더 큰 개혁 동력을 만들지 못한것
김민석은 노무현식 대중 정치를 일시적 감정 동원으로 보고 비판, 더 제도 기반의 안정적 개혁 추구.
그러나 민주당 내 주류 경쟁에서 밀리고, 2004년 비리 의혹으로 낙마, 긴 야인 생활 시작.
그가 꿈꾼 “엘리트 연합 기반의 실용 개혁 세력”은 민주당의 계파정치와 국민적 정서의 괴리 속에서 현실화되지 못하고.
이때는 결국 군사정권에서 민주화 이후 새로운 정치 모델 실험기로,
노통은 “시민 정치”라는 실험을 했지만, 현실 정치의 벽 앞에서 좌절하고
김민석은 “제도권 내부 변화”를 꿈꿨지만, 정당성과 동력 부족으로 실패하고
결국 이 두 흐름은 **"혁신"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두 축을 각각 대표했으나,
협력보다는 분열, 연대보다는 고립의 길을 걸으며 한국 정치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셈이네요.
그래서 각각은 각자의 방식대로 일정부분 성공하고 일정부분 실패했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노통이 오히려 김같은 엘리트 정치인을 흡수하여
기득권과 연대를 꾀하고 좀 속도를 줄이고 그랬으면
어려울때 그를 비호해주는 세력이 더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한국 현대사는 개혁-반동-개혁-반동의 사이클이네요
노통-이명박-박그네-문통-윤-이잼
모두 그런 사이클인데
너무 좌측으로 기울어 배가 운행하여
그담에 우측으로 확 기울어 운행하는 배가 나오고
김민석이 이잼의 리스크를 헷지할 수있을지
궁금하네요
이번 인사로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을
잠시 생각해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