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5월6일 밤 국군 보안사는 서울 잠실의 한 아파트를 급습하여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핵심 간부들을 검거했습니다. 베란다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는 보안사 요원들에 맞서 김문수 등 남성들이 대걸레 자루로 대항하는 동안, 서혜경, 유시주 등 여성들은 화장실 세숫대야에 문건들을 불태웠습니다.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짧은 교사생활을 거쳐 가리봉전자에 위장취업해 이미 해고자가 되어 있던 24살의 유시주는 그날 밤 말로만 듣던 송파 보안사의 ‘하얀방’에서 자신도 고문을 당하면서 밤새 김문수의 끔찍한 비명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고문자들이 알고 싶어했던 것은 심상정·박노해의 소재였습니다. 사라진 동생의 행방을 찾아 나선 유시민은 다른 구속자 가족들과 함께 송파 보안사의 대문을 흔들며 불법구금에 항의했고...
-공장 갈 때는 대학 졸업자인 걸 숨기셨죠?
“학생인 걸 숨기려고 파마를 뽀글뽀글하게 해서 갔죠. 몇 군데 면접하면서 소중한 경험도 했어요. 제가 집이 가난하네 어쩌네 해도 공부를 잘해서 남에게 무시당한 경험이 없었잖아요. 들킬까봐 쫄아서 면접을 보는데 하대를 당하니까 자존감이 팍 떨어지면서 굉장히 위축되는 거예요. 저를 보는 그 눈빛 앞에서 제 목소리가 기어들어가더라고요.”
-서노련 사건으로 함께 고생한 김문수 지사는 가끔 만나나요?
“김문수씨가 부천에서 국회의원 할 때 망년회에서 한번 본 게 마지막이었죠.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김문수 의원이 정당연설원으로 나와서 김대중 후보를 불온한 자로 모는 걸 우연히 버스에서 듣고 토할 뻔했어요. ‘사회주의는 말짱 꽝이었다’ 이렇게 생각이 바뀔 수는 있지만, 빨갱이로 몰려 고생한 사람이 남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건 예의가 아니죠. 운동권 중에서 한 부류는 과거를 액자에 걸고, 다른 한 부류는 쓰레기통에 처박아요. 둘 다 올바르지 않아요. 영광과 미숙함을 다 공유해야죠. 그 연설 이후로 저는 김문수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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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대표의 부인하고는 오랜 친구인데 불편하지 않나요?
“불편해진다고들 하던데 저희는 친구 정체성이 더 강해요. 여학생 서클과 노동운동을 같이 했죠. 제가 오빠에게 소개했고요. 수학사로 박사를 딴 올케는 제주도에서는 유명한 수재였고, 조용하지만 독립심이 강한 여자예요. 둘이 오빠 흉을 같이 보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