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오랫동안 아프셨는데
아버지가 오랫동안 아프셨는데
부모님에 대해서 그런류의 감정한번도 못느껴봤는데 어린아이 입장에서는 그럴수도 있겠다 싶기는 하네요
지금은 철이 들었으니까 그런거고 동생분 진짜 힘들겠어요..ㅠㅠ
저도 부모님에 대해서 그런류의 감정한번도 못느껴봤는데22222
다 자라지 않은 불완전한 아이의 마음과 어느 정도 성숙된 어름의 마음의 차이가 아닐지..
조카가 서른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뽀얀 애기 얼굴을 하고 있어요.
동생은 진심으로 딸을 사랑한대요.
솔직히 저는 진심으로 부모님을 사랑하진 않아요.
청소년기에는 멀쩡하고 부모도 친구들 앞에서는 괜히 창피합니다.
사회역할 인지부조화를 잠시 겪는 시기 같아요. 자연스러운거고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따뜻해요.
부모는
미성숙한 나이에 만난 나랑 직접 관련된 가족이고
조카는
그 보다 성숙한 나이에 만난 나와 한다리 건너 가족
청소년기에는 멀쩡한 부모도 친구들 앞에서는 괜히 창피할 때가 있어요. 사회역할 인지부조화를 잠시 겪는 시기 같아요. 자연스러운거고요.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따뜻해요.
전 이해되요. 그럴수 있죠. 다들 환경이 다르니 이해못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전 외모떄문이 아니라 언행떄문에,, 너무 창피했어요. 교양없고 창피한 말만 하는..ㅠㅠ
어린 아이의 미성숙한 시기에 자연스러운 마음 같은데요.
저도 아빠 직업을 어릴때 부끄러워했는데요. 엄마가 쉬쉬하셨어요. 어디가서 얘기하지 말라고. 부모님 태도가 중요한거 같아요. 운전하셨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시절에 운전할 줄 아시고 생업삼고 하는게 뭐 그리 부끄러울 일이라고 자식한테 그랬나몰라요.
저도 어릴때 가난한 농사꾼 부모님이 많이 부끄러웠어요.부모님을 부끄러워하는 자신이 또 부끄러웠고요.
그런데 어느순간 우리 부모님이 죄 지은것도 아니고 나쁜일 하신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그런 마음이 없어졌어요.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은것을 알아버린거죠ㅜㅜ
꼭 미성숙한 시기라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게
다 큰 아들은 절 부끄러워해요.친구들 앞에 입에 올리지도 않고요.
그런데 딸은 또 엄마를 그렇게 좋아하고.
중간이 없네요.
암튼 부모님에대해 저 같은 감정을 한번도 느껴보지 못 하셨다는 분들은,
부럽습니다.
어릴 때 자기 아빠 직업을 부끄러워 하고 숨기는 애가 있었어요
동네에서 정육점 하셨는데 같은 반 애들이 쟤 왜 저러냐고 이해할 수 없다며 못됐다고 욕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부모님 직업이나 외모 갖고 부끄러워 하는 건 또래 애들도 이해 못 하긴 했네요
알거같아요
저도 농사꾼아버지 부끄러운적있어요
국민학교시절에 경운기를 타고 학교왔는데
제가 수첩을 경운기에 떨어트렸는데
그게 뭐라고 장화신고 아빠가 경운기타고 학교와서 주고갔어요
양복입지않은 아빠가
아빠 뭐하시냐 물으면 농사지의세요하는게 챙피했어요
이제 50이넘어서
그시절이야기하면서...어린마음이니 그랬구나 해요
제차가 경차였는데
딸은 늘 학교코앞에서 내려달래고
아들은 좀 좀 떨어진곳에서 내려달래고
말은 아했지만 내차가 부끄러웠나 싶었지만 묻지않았어요
동생분은 부모와는 다르니까요
동질감?안쓰러움? 그런거같아요
평생 농사 ㆍ노동일 하신 울 아버지
당연히 학교가본적도 없으신데
7남매 다 잘 키워. 세상에 내보내니
장례때 다들 훌륭하시다고 우러러뵈네요
조화 조기가 300개 넘게 들어오고 장관
구청장이 직접 조문오니 엄마 표정도
덩달아 밝아지셨어요
저도 학교다닐때 부모님직업ㆍ 호구조사가
참 싫었는데 나이들고보니 이만큼 성장한건
다 부모님 덕이라 생각해요
이번 장례식 치루고 우리 아들도 할아버지
할머니 대단하게 생각하네요
저는 가정환경조사서 쓸 때 가장 괴로웠어요.
저는 부끄러움의 대상 차이보다는
내 생각의 크기 차이였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어린아이와 어른 (미성숙과 성숙)
저도 생각의 깊이가 없던 어린 아이였을땐 부모님을 부끄러워
했었어요.
근데 커서는.. 부모님이 늙으셔서 겉모습이나 뭐나 더 나아질것도
없으신데 하나도 부끄럽지 않더라구요.
보고 싶고 많이 그립네요.
저요
공사판에서 좀 다치고 그 후로는 일을 안 하셨고
엄마가 식당 다니면서 자식들 키웠어요
돌아가신 지금도 창피해요
마누라와 자식이 벌어온 돈으로 술이나 드시던, 끔찍합니다.
1239님 현답에 무릎을 탁
성실한 아버님 보고 훌륭히 자란
자식이 부모님 보내드리고 난
22338님 글을 보니 찡해 옵니다.
예전부터 부모님을 사랑하지못했고
지금도 관계가 꽝인 상태에서
제가 낳은 아들이 문득문득 저랑 같은 반응을 보일 때
찔끔해요.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것일지 몰랐을 때 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https://theqoo.net/hot/2692233566
가족이란 게 제겐 참 어렵습니다.
어린 아이였잖아요.
대놓고 무시하기도 했죠.
제 친구는 엄마가 무당...
지금도 불면증에 불안하다고 해요.
어리고 철이 안들어 그런거겠죠.. 저도 부모님이 부끄러웠던 기억이 없어서ㅠ
원래
조선시대까지는 농업기반사회였는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산업화 진행되면서 농업이 많이 죽어갔죠 .
농민들집들은 농사지어도 돈을 많이 못버니 많이 어럽게들 살아간 집들이 대부분 . 자손들도 많이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산업화 물결탄 집 자손들은 경운기대신 자가용타고 다녔을테니.
근데 농촌지역 농민집안등이 양반핏줄타고 온 집들이 많아요.
집성촌도 많고 선산 있고 선산에 오래된 조상묘도 있고
족보있고 문중있고 ..이정도면 너무 기 안죽어도 되는데^^
오히려 장사가 발달달 구역에 사는 집들은 돈은 잘 벌어도
또 족보있고 문중있는집 부러워 하고 그래요
자기가 못 가진걸 부러워 해요.
전봉준장군도 농민이지만 원래는 양반핏줄탄 집이에요.
농민자식들이 너무 위축되어 안살아도 되었어는데 돈이 최고로 자리잡은 시대에는 돈벌이 어려웠던 참 농민들과 농민들 자식들이 위축되고 많이 어렵게 살았어요.
댓글 달아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여기 글 올리고 저도 저를 되돌아봤어요.
과연 어리고 철이 안 들어서 그런걸까,미성숙해서 그런걸까 하고요.
그러다 이런 답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를,엄마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ㅡ단 한 명ㅡ도 없어서
제가 그렇게 대했던 거더라고요.
동생은 딸을 무척 사랑해요.언니지만 저는 은연 중에 동생 눈치를 봐요.
땡땡이를 함부로하면 안돼.
동생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잖아
하면서요.
치마를 예쁘게 입고 있는 강아지를 봐요.
견주를 봐서라도 발로 못 차요.
헌데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는 엄마를 미워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함부로 했어요.
늘 옆에서 부부가 서로 욕하는 모습을
평생 보고 자랐죠.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가족 중에 어느 누구도
아버지한테,혹은 엄마한테
귀하고 존경스럽고 훌륭하신 분이다
라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했고
아버지는 아내를,엄마는 아버지를
아버지는 또 아들을 미워했어요.
마음이 아프네요.
항상 그런
안들어 그렇다는 분들은 최소 부모님이 열심히 사시던 분이었을까요??
저희 부모님은 본인들은 성실히 사셨다고 하지만 성인이 되어 돌이켜보면 전혀 그렇지 않으셨거든요.
특히 아버지는 지금까지 술없이 못 사는,, 나름 부유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랑 하교길에 남의 집 담벼락에 앉아서 눈 시뻘개져서 술 마시고 있던 모습, 모른척 했어요.
바로 앞을 지나갔는데도.. 얼마나 창피하던지..
항상 옷도 대충 입고, 신발도 대충 꿰어 신고, 구겨 신고..
근데 저는 제가 철 없어서라고 생각 안해요.
자식 생각했으면 그러고 못 다니죠. 최대한 깔끔하게 입고 언행 바르게 해야죠.
그게 부모 아닌가요.
지금 저희 형제들이 다 잘 돼서 주위분들이 다 부러워하는데 한 거 없는 저희 부모는 본인들 덕분이라고ㅎㅎㅎㅎㅎㅎㅎㅎ
뭐 해준 게 있다고.. 겨우 밥만 먹여줬는걸요.
저 80년대 중반생인데 학원 한번 다닌 적 없어요.
저는 철 없어서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 편하자고인지 모르겠지만 부모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게 당연하다고, 그런 부모가 있다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여기 글 올리고 저도 저를 되돌아봤어요.
과연 어리고 철이 안 들어서 그런걸까,미성숙해서 그런걸까 하고요.
그러다 이런 답을 찾았습니다.
아버지를,엄마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ㅡ단 한 명ㅡ도 없어서
제가 그렇게 대했던 거더라고요.
동생은 딸을 무척 사랑해요.언니지만 저는 은연 중에 동생 눈치를 봐요.
땡땡이를 함부로하면 안돼.
동생이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라잖아
하면서요.
치마를 예쁘게 입고 있는 강아지를 봐요.
견주를 봐서라도 발로 못 차요.
헌데
우리 부모님은
아버지는 엄마를 미워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함부로 했어요.
늘 옆에서 부부가 서로 욕하는 모습을
평생 보고 자랐죠.
동네 사람 어느 누구도
가족 중에 어느 누구도
아버지한테,혹은 엄마한테
귀하고 존경스럽고 훌륭하신 분이다
라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는 며느리를 미워했고
아버지는 아내를,엄마는 아버지를
아버지는 또 아들을 미워했네요.
저는 엄마가 부끄럽고 정 떨어진적이 있는데... 저는 유학생이라 엄마랑 영화 볼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한국 왔을때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보러갔어요. 그런데 영화관 자리 앉자마자 엄마가 쉬지 않고 떠드시는거에요. 질문도 하고 얘기도 하고... 그래서 너무 성가시고 주위에 매너가 아니니까 제가 다른 빈자리로 옮겨서 봤어요.
영화 다 보고 나오는데 엄마가 광주 사람들 너무 별나다고 하면서 그래서 광주 민주화 운동 발생한거라고 해서 그때 부끄럽고 정떨어지고 실망했어요. 고향 경상도 입니다.
저는 집안에 아주아주 늦둥이로 태어났어요. 그러다 보니 사춘기때 아버지는 이미 할아버지의 모습이었고 툭하면 아프셨어요. 그리고 노년에는 시내에 노인분들이 쭈욱 앉아계시는곳이 있는데 아버지가 거기계시는거예요. 저는 모른척 못본척 하고 빠른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났어요.
아주 어린시절 아빠를 너무 좋아하고 아빠만 따라다니던 저였는데... 사춘기 시절에는 못내 그 모습이 챙피했었나 봅니다.
부모님께서 부지런하시고 사이좋셨지만 많이 배우신 분이 아니다 보니 모든 집안 행정처리는 저의 몫이었어요. 그런데 엄마도 많이 배우시지는 못하셨지만 여장부 스타일이셨고 저의 결정을 항상 지지해주셨고 믿어주고 서포트해주셨어요.
저는 커서 최소한 아이들에게 울 엄마가 나에게 해주셨던것 처럼 아낌없이 베풀고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름 열심히 공부해서 유학도 다녀오고 지금은 중견기업 임원으로...아이들도 엄마를 매우 자랑스러워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려서는 아빠를, 커서는 엄마를 많이 이해한것 같아요.
미성숙이라기보다 부모님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기대가 컸기때문이라 생각돼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는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자식들을 돈이 없어도 사랑하고 희생하는
아마 원글님이 부끄러웠던 것은 가난한게 문제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기대한 사랑을 주지
않아서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부모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 당시의 경제와 없는 사람들의
궁궁한 삶을 이해하니까 부모가 짠 한거고요.
솔직히 저도 지금 우리 부모님이 부끄러운데 우리 부모님은 재산도 있고 소위 나름
그 당시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지만 부끄러워요.
그들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없는 사람들을 하찮게 보는 생각과 선입견들이
부끄럽네요. 그래서 원글님의 마음 시분 이해해요.
누군가가 누군가를 소중히 대하는 시선하나가...정말 너무나 소중한거구나...
댓글에서 느끼고갑니다.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게 이거예요.
부부가 서로 위하고 사랑하면
나중에라도 자식들에게 자연적으로 존경받게 된다는 거요.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남들도 따라서 소중히 여기게 된다는 거요.
조선시대까지는 농업기반 사회였는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산업화 진행되면서 농업이 많이 죽어갔죠 .
농민들집들은 농사지어도 돈을 많이 못버니 많이 어럽게들 살아간 집들이 대부분 .
자손들도 많이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농촌아이들이 경운기 타고 다닐때 산업화 물결탄 집 아이들은 자가용타고 다녔을테니.
어린나이에는 경운기보다 자가용이 부러웠을테고
흙으로 만든 한옥집보다 시멘트로 지은집이 튼튼해 보였을테고
어린나이엔 뭐든 신문물이 좋아보이니 어쩜 당연했을듯요. 이해도 되네요.
그치만 댓글중 어느분이 부모님 농사지어서 창피하셨다고 하는데 안그래도 되는게
농촌지역 농민집안등이 양반핏줄타고 온 집들이 많아요.
집성촌도 많고 선산 있고 선산에 오래된 조상묘도 있고
족보있고 문중있고 전통 한옥집에 살아보고
이정도면 너무 기 안죽어도 되는데^^
다들 남들 앞에 기 안죽는거 하나만 있어도 든든하잖아요.
이런거 없어도 농업자체가 뿌린대로 거두는 정직한 업종에 건강하게 돈버는 직종이지 창피해할 이유도 없어요.
오히려 장사나 산업이 발달된 구역에 사는 집들은 돈은 잘 벌어도
또 족보있고 문중있는집 부러워 하고 그래요
자기가 못 가진걸 부러워 해요.
전봉준장군도 농민이지만 원래는 양반 핏줄탄 집이에요.
농민자식들이 너무 위축되어 안살아도 되었지만 돈이 최고로 자리잡은 시대에는 돈벌이 어려웠던 농민들과 농민들 자식들이 위축되고 많이 어렵게 살았을거라 추정됩니다.
조선시대까지는 농업기반 사회였는데
일제시대 한국전쟁 산업화 진행되면서 농업이 많이 죽어갔죠 .
농민들집들은 농사지어도 돈을 많이 못버니 많이 어럽게들 살아간 집들이 대부분 .
자손들도 많이 위축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농촌아이들이 경운기 타고 다닐때 산업화 물결탄 집 아이들은 자가용타고 다녔을테니.
어린나이에는 경운기보다 자가용이 부러웠을테고
흙으로 만든 한옥집보다 시멘트로 지은집이 튼튼해 보였을테고
어린나이엔 뭐든 신문물이 좋아보이니 어쩜 당연했을듯요. 이해도 되네요.
그치만 댓글중 어느분이 부모님 농사지어서 창피하셨다고 하는데 안그래도 되는게
농촌지역 농민집안등이 양반핏줄타고 온 집들이 많아요.
집성촌도 많고 선산 있고 선산에 오래된 조상묘도 있고
족보있고 문중있고 전통 한옥집에 살아보고
이정도면 너무 기 안죽어도 되는데^^
다들 남들 앞에 기 안죽는거 하나만 있어도 든든하잖아요.
이런거 없어도 농업자체가 뿌린대로 거두는 정직한 업종에 건강하게 돈버는 직업이기 때문게 부모가 농사꾼이라고 창피해할 이유도 없어요. 어린나이엔 세상을 잘몰라서 그랬겠지만
오히려 장사나 산업이 발달된 구역에 사는 집들은 돈은 잘 벌어도
또 족보있고 문중있는집 부러워 하고 그래요
자기가 못 가진걸 부러워 해요.
전봉준장군도 농민이지만 원래는 양반 핏줄탄 집이에요.
농민자식들이 너무 위축되어 안살아도 되었지만 돈이 최고로 자리잡은 시대에는 돈벌이 어려웠던 농민들과 농민들 자식들이 위축되고 많이 어렵게 살았을거라 추정됩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아버지가 창피했어요.
저희 아버지가 부자시고, 유머도 많으시고, 저를 이뻐라 하셔서 속으론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헤어쪽이 횅 하셔서 아이들이 저를 많이 놀렸거든요. 저만 지나가면 ㅇㅇ아 ㅇㅇ아 대머리 깎아라 하는 노래 아시죠? 그거 부르면서 놀렸거든요.
그런데 중2때 우리 동네 언니가 아버지가 주는 장학금을 받게 되면서 그집 엄마가 우리 집으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지역 초.중.고 학생들중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수십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계시다는 걸 알려 주셨거든요. 등잔밑이 어둡다고 우리 가족들만 몰랐지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대요.
초. 중. 고 졸업생들중 형편 때문에 상위 학교로 진학을 못하는 학생이 생기면 선생님들이 아버지와 연결을 시켜주어 대학 졸업때까지 지원하게해 주셨다고...
그 밖에도 아버지의 모교이기도 한 지역 학교들에 공사로인해 돈이 필요하면 그것도 동창회장인 아버지가 다 해결해 주셨대요. 큰 공사는 잘 사는 동창들이랑 같이 후원하고 작은 공사나 포크레인 같은 차가 필요하면 아버지 돈으로 다 해주셨대요(담임선생님이 이야기 해주심).
그 이야기를 듣고 부터는 아이들이 뭐라고 놀려도 창피하지 않고 늘 아버지가 자랑스러웠어요. 아이들도 제가 아무리 놀려도 창피해하지 않으니 재미가 없었던지 그때부터는 놀리지 않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