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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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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음에 감사한7,

봄날 조회수 : 3,951
작성일 : 2021-05-20 06:33:17
비 올 때마다 날궂이를 해서 힘들었어요.
제가 없는 사이에도 82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다들 바쁘신데 눈치 없이 긴 글 올려서 죄송했는데
몇몇 고운분들이 저에게 힘을 주시네요.

제가 사는 동네에 진돗개가 한 마리 있어요.
그 성견은 첫눈에 봐도 매우 용맹해 보여요.
곧게 선 귀는 흐트러짐이 없고
단단하게 말아 올린 꼬리는
이유 없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자기가 달은 것처럼
꽉 다문 입에는 입마개를 하고 있고
목걸이에는 이름이며 전화번호가 반듯 반듯 적혀있어요.

게다가 그 진돌군은
견주가 대담한 건지 견님?이 독립적인지
언제나 당당하게 솔로입니다.

한번은 찻길이 걱정되어
자전거 타면서 멀찍이 따라가보니
그 개가 가는 곳이 집주변에서 크게 한바퀴더군요.
주인에게 물어보니
견주랑 같이 다니던 산책길을
자기가 관리하는 구역으로 정해서
정확히 그 길로만 포인트를 주고 다닌대요.
그 똑똑이는 견주도 바쁘고 자기도 원하는 것이 따로 있으니
정찰 시간이 되면 주인님께 입마개를 딱 해달래서
완장 찬 경비병마냥 동네 순찰을 돈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요.보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저희 병실은 간병인 포함10명이 있는데
화장실이 딱 하나 있어요.그 중요한 걸 몰랐어요.

다른 병실엔 누워있는 환자가 많아 문제가 없는데
우리는 기저귀 찬 사람이 세 명에
기저귀 안 찬 사람이 다섯이라
환자들끼리 묘한 신경전을 벌여요.

대소변을 침대에서 해결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니 거기에도
난관이 있더라고요.화장실 빌 날이 없는 거예요.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이 이 닦고 수건 빨고 그릇 씻는 곳이 화장실이고
변비를 달고 사는 환자가 들어가면 나오지 않는 곳도
화장실이니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요.

기저귀만 떼면 세상이 다 제 것일 줄 알았는데
때 아닌 화장실 쟁탈전에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그러다가 좀 멀고 가기 힘들지만
직원이 다니는 화장실을 알게 되었고
이젠 대소변 문제로 열 받을 일이 없게 되었어요.
(간병인이 그곳까지 휠체어를 밀어줘야해서
처음에는 말도 안 했을 거예요.이해해요.)

깁스를 풀고 침대 밖을 나와보니 갈 수 있는 영역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 요양 병원도 카드 없이는
엘리베이터에 못 오르게 되어 있는데
저는 가벼운 운동을 해야 해서 휠체어로
매일 같은 층, 좁은 복도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어요.
-거기에도 재활 시간이 되면
더듬더듬 혼자 하는 운동이 어려웠어요.

그러다 우연히 카드를 지닌 간병인을 따라가게 되었고
엘리베이터 끝에 옥상을,
세상에나 그런 환~한 옥상을
병원 온 지 한달 보름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는 치매 환자가 있어서
입원 환자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비밀로 한 것이 많아요.

놀랍게도 우리 층에 갇혀있을 땐 몰랐는데
거기에는 비장애인의 세계가 있더라고요.
넓디 넓은 공터에는 간병인들이 텃밭을 만들어 두었고
줄 맞춰 정갈한 땅 위에는
어린 상추니 고추니 대파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바람 불어 선선한 가장자리에는
빨갛고 노란 꽃들이 가득하고
가운데 바닥에는 푹신한 인조 잔디도 깔려있어서
저처럼 걷기 운동이 필요한 사람은 딱 좋겠더라고요.

참 이상하지요.
왜 간병인과 간호사들은
병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았을까요?

씻는 곳만 해도
샤워장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병실 스케쥴이 정해 있어서
개인이 씻고 싶다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했어요.
일없다는 말을 잘 하는 간병인이
바닥이 미끄러우니 혼자 들어가지도 말라고해서
한동안 여사님 말을 믿고 따랐지요.
-일주일에 한번 목욕을 하는 날은 빨래감도 엄청 나와서
그걸 빨고 널어주는 것도 큰일일 거예요.

하지만 머리 떡지고 가만 있어도 땀 줄줄 나는 저에게
일주일에 한번 목욕은 가혹한 일이었어요.
너무 간지럽고 씻고 싶어서 어느 날은

그날 샤워 날짜가 있는 병실에
휠체어를 끌고 들어가
그 병실 간병인에게 어렵게 물어보았어요.

실례인 줄 알지만 환자들 목욕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있겠냐고요.

그런데 쉽게 돌아온 대답은
점심 식사 전이면 끝난다는 말이었어요.^^
씻기 싫어하는 환자도 있어서 그 사람은 건너뛴다네요.

몰라서 지나가고 알아도 해결 못 하는 것들.
가만 보니
정말 똑똑하고 유능?한 환자는
병원이 환자에게 주는 혜택을 누릴 줄 알고
보험 회사에서 주는 비공개 서비스도
줄줄이 꿰고 있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곳에서조차 환자에게 필요한 정보들은
돈과 수고가 연관되어 있으니
물어봐야 대답해 주고
찾아다녀야 알려주네요.

아직은 잘 걷지 못하는 나이 많은 강아지지만
저도 독립적이고 가족에게 짐 안 되는 진돗개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열심히 운동하고
눈 크게 뜨고 귀 세우고 입 닫고 살아야 할 거예요.

ㅡ오늘 아침엔 제 앞에 계신 고령의 환자분이
이런 얘길 해줬어요.
어떤 남자가 아내가 아기 낳는 장면을 보았더래요.
그곳에서 이따만한 머리가 나오는 모습을 보고는
남자가 충격을 받아 한동안 아내와 잠자리를 못 하게 되었다네요.
아들 내외가 전같지 않음을 눈치 챈 어머니가
아들을 앉혀놓고 하는 말.
여자의 그곳은 '죽 떠먹은 자리' 같아서
네가 걱정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단다 하셨더래요.^^



IP : 121.168.xxx.26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괜찮아
    '21.5.20 6:50 AM (221.162.xxx.233) - 삭제된댓글

    글 고맙습니다
    글올리실때 딱보게됩니다
    어서 쾌차하세요
    오늘도 좋은날 행복한하루되세요~~^^

  • 2. 건강
    '21.5.20 7:13 AM (124.54.xxx.73) - 삭제된댓글

    글잘읽고있어요
    깁스풀고 화장실도 가시고 정원도
    가신다니 제가 다 기쁘네요
    빨리 회복되어 산에도 가시게되길바랍니다
    오늘도 어제보다 더 회복되세요
    힘내세요
    응원할게요

    저도 수술후 엉금엉금 복도걷던때는
    숨차고 기운없어서 언제 걷나했는데
    지금은 뛰기도합니다

    금방 옛말할때가올거에요

  • 3. ㅁㅁ
    '21.5.20 7:40 AM (121.130.xxx.122) - 삭제된댓글

    어휴
    글만으로도 환경이 너무 ㅠㅠ

    으 ㅡㅡㅡ
    저 수술후 4개월 통깁스만으로 아프지않은 다리보다
    굵기가 3센치나 가늘어져서 황당했었어요
    얼른 얼른 회복해 날개를 달으시길

  • 4. 이뻐요
    '21.5.20 7:41 AM (211.231.xxx.206)

    우리가 가진 행복상자에
    열쇠가 감사해하는 마음 이라고
    들었는데
    제목만봐도
    글쓰신분이 참 복 많이 받겠다 싶네요^^
    글도 잘쓰시고..
    잘읽었어요 고마워요♡♡♡

  • 5. 매니큐어
    '21.5.20 7:54 AM (124.49.xxx.36)

    어쩜 이리 담담히 수필처럼 글을 쓰시는지요~ 요양원 옥상이 눈앞에 선하네요^^ 아침에 마음이 부대껴서 짜증이 날것 같았는데 그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아요. 어서 조금씩 쾌차하셔서 이 글이 한 10편쯤되면 여기저기 활기차게 걸으시며 휴 덥네요~ 이런 일상글도 기다려봅니다.화이팅요!

  • 6. 건강
    '21.5.20 8:14 AM (61.100.xxx.37)

    반가운 마음에
    집 바로 코앞에 있는
    고등학교아이 아침먹이면서 씁니다~


    오늘도 비가 오려나봐요

    이마트 별다방 행사 우산주는거 응모해놨는데
    오늘부터 나눠준다고(공짜라 좋은 아줌마)
    일찍(그래봐야 10시오픈)
    나가서 일등으로 받아오려구요

    저도 오늘의 계획 써봅니다
    원글님 힘내세요

  • 7. 출근중
    '21.5.20 8:18 AM (110.70.xxx.109)

    깁스 풀고 그렇게 자유롭진 않지만 침대붙박이에서 해방되신거 축하합니다. 기저귀 벗어던지고 화장실 이용하시게 된것도 축하해요! 그런데
    그 진돌이는 어쩜 그렇게 기특하죠? 정말 세상에 이런일이!
    요양병원 옥상.. 한번도 가본적 없는 곳인데 눈앞에 그려지네요.
    이제 더워지는데 몸조리 잘하셔서 간병인의 도움 없이도 여기저기 다니고 얼른 퇴원하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팠던거.. 죽떠먹은 자리처럼 아무렇지 않게 싸악 낫기를 바랍니다!!

  • 8. 봄날
    '21.5.20 8:35 AM (121.168.xxx.26)

    오늘 상대방 보험 회사에서 실사 나온다고 했어요.정신 없는 중에 제가 혹시 헛말하고 실수할까봐 좀 떨려요.숨 한번 크게 쉬고 더하고 뺄 것도 없이 제 모습 그대로 보여주려고요.

  • 9. ...
    '21.5.20 8:38 AM (59.12.xxx.242)

    원글님 빨리 완쾌해서 얼른 집으로 가세요
    집이 주는 행복은 또 다르겠죠
    그리고 또 일상얘기 올려주세요!

  • 10. 일관성
    '21.5.20 8:44 AM (116.127.xxx.157)

    다른 세대의 유머는 평소 내가 알던 범주가 아니라 진짜 참신한 거 같아요.

    봄날님 나름의 슬기로운 병원생활 노하우를 만들어 가실 거 같아요. 힘드시겠지만 재활 열심히 하셔서 빠른 퇴원하시길 빌게요^^

  • 11. 어머
    '21.5.20 10:27 AM (58.224.xxx.153)

    어쩜 글을 이리 잔잔히 묘사가 .. 읽는게 아까워서
    찬찬히 몇번을 읽었네요
    이런분이 옆에 계시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는게 재미있을거 같아요

  • 12. 아침에
    '21.5.20 10:32 AM (14.7.xxx.54)

    선물같은 수필을 남겨주셨네요.
    봄날님 글이 올라오면 마음이 설레어요.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을 소소히 담담히 재미나게 풀어주실까 하고요.
    힘들어도 그 속에서 재미를 발견하고 즐거움을 찾아가는 봄날님 오늘도 행복하세요^^

  • 13. 봄날님
    '21.5.20 11:09 AM (59.6.xxx.191)

    댓글에는 꼭 댓글 달고 싶어서 로긴부터 하고 읽는답니다. 저도 몸이 많이 아파서 주변 분들 도움이 많이 필요한지라 의젓한 진도개처럼 살기는 틀렸지만 그래도 총총하게 잘 살아보려구요. 기저귀 떼시고 옥상도 가실 수 있게 되셨다니 정말 좋네요. 차차 잘 회복하시길 빕니다. 오늘도 좋은 글 아껴가며 읽었어요. 감사해요.

  • 14. 좋은글
    '21.5.20 12:46 PM (125.128.xxx.153)

    봄날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님의 글을 만나면 봄날의 햇살을 만난것처럼 따스하게 감겨들어요.
    님...얼른 쾌차하시고 글 계속 써주세요~
    님의 글솜씨 부럽습니다.

  • 15. ^^
    '21.5.20 12:46 PM (118.235.xxx.160) - 삭제된댓글

    봄날님도 댓글님들도 다 이쁘신 분들...^^

  • 16. 넋두리
    '21.5.20 1:33 PM (211.38.xxx.162)

    어제 4시간을 목놓아 울었어요. 내가 못가진것. 놓친것을 억울해하고 내자신을 원망하고 학대했어요. 님글은 보면서
    어리석음에 반성하게 됩니다. 수필같은 스토리 늘 잘 읽고있습니딘.

  • 17. 봄날
    '21.5.20 1:58 PM (121.168.xxx.26) - 삭제된댓글

    https://youtu.be/PNxs3VYXs18

  • 18. 감사7
    '21.5.21 9:00 AM (118.235.xxx.133)

    두고두고 읽고 싶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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