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친언니와 오랜만에 외출을 하게 되었어요
..암환자인 언니와의 외출은 항상 무겁고 특히 지금은 신경이 예민해질 수 밖에요
택시 타자는데 부득불 버스 타고 싶다고 해 외진 종점에서 타야 할 버스를 기다리는데
중학교 1,2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옆에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 학생, 통화 중 마스크 끈을 손으로 배배 꼬는 것 같은 손장난을 치더니 세상에, 마스크 끈이 툭 끊어지는 거예요
세상 당황한 학생의 옆모습. 귀가 다 새빨개졌더라고요.
엄마랑 통화하던 중 같았는데 엄마에게 사정을 말하니
학생의 어머니 목소리.. (여분으로) 마스크 가지고 다니라고 했어! 안했어! 같은 쩌렁짜렁 소리 ㅎㅎ
마침 근처에 있는 약국이 문을 닫았고 (늘 자주 문이 닫힘)
마트도 없고 편의점도 좀 멀리 떨어져 있는 좀 외진 종점입니다
초행인지 아니면 실생활 요령에 익숙하지 않은지 남학생은 당황도 하고 엄마한테 혼도 나고 시선을 계속 두리번 거리느라 타야할 버스도 놓친 것 같았어요 (정말 울것 같았음요)
아무래도 저라도 나서야 할 것 같아
백 속에 있는 무려 장당 89원, 여분의 (국내생산 ㅋ)덴탈마스트를 학생에게 건네 주려는데
제 옆에서 역시 다 듣고 계시던 구원의 천사 등장
성성한 백발이 참 곱고 단아한 모습의 할머니셨는데 역시 무적의 만능가방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가방 지퍼를 사뿐 여시더니 그 안에서 종류별로 있는 마스크 중 무려 개별포장 kf-ad 마스크를 얼른 꺼내 학생에게 건네주시더라고요 순간 제 손은 민망. 나 따위가 나댈 것이 아니었다 라고 덴탈 마스크를 꼬깃 도로 넣으려는데..
그런데 그 남학생 너무 귀여운 게, 마스크를 받고 천원을 꺼내 할머니께 드리더라고요 ㅎ
할머니께선 눈웃음 후 말씀 없이 손짓으로만 휘휘 아니다 아니다 표현하신 후 타야할 버스가 와 바로 승차하시고 총총 사라지셨죠
어쩔 줄 모르는 그 남학생에게 학생의 어머니가 바로 전화가 와 어떻게 되었는지 마스크는 샀는지 묻는 것 같았어요
이렇게 저렇게 소곤소곤 엄마에게 설명을 하는 것 같은데
저와 언니도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와 학생을 마스크를 잘 썼는지 엄마에게 혼 안났는지 설명을 잘했는지
확인(?)을 못 하고 그대로 버스에 승차했어요
그런데 버스에서 울언니가 앉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예요.
저는 너무 당황해서 언니 왜 그래 그랬는데
그냥, 그냥, 너무 예뻐서. 하며 계속 진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거예요
언니 울면 안돼. 일단 손으로 눈 만지지마 라고 했는데 왜 제 작은 백은 그 분의 가방처럼 만능 가방이 아닐까요
언니를 달래 줄 티슈 하나가 없는 거예요.
꾹꾹 눈물을 손등으로 찍어 누르는 언니를 겨우 달래고 그렇게 외출을 마쳤습니다
집에 와서 언니랑 냉면 해 먹으면서
너무 좋더라 그 할머니와 그 학생..
오히려 우리 그냥 버스 타길 잘 했다 그치 하면서 둘이 맛있게 잘 먹고 한참을 웃었네요
앞으로 살면서도 '그녀와 그 아이가 있던 풍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고 나도 꼭 그런 잘 나이 든 그녀,가 되어야겠다
그러려면 일단 만능가방부터 뭐 사야할지 생각해보는 ㅋ 그런 밤과 새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