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원지대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의 참전준비 문제
1965년 2월 10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일본사회당 (현 사민당)의 '오카다 하루오'의원이 당시 방위청 장관을 상대로, 아래와 같은 질문을 합니다.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일본 국회는 자민당 (현 아베의 정당) 의원들의 욕설과 고성으로 뒤덮이고, 그 다음날 이 '미쓰야 연구'는 일본 언론에 의해 대서특필되며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집니다.
'미쓰야 연구'는 당시 베트남전과 중국의 핵개발에 따른 제2차 한국전쟁 발발에 공동대응하는 일본, 한국, 미국이라는 세개의 화살을 의미하는 것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합니다.
이 연구는 극비 자위대 전시 시나리오로서, 자위대 통합막료회의 사무국장 이하 육상・해상・항공 자위대 막료감부의 영관급 장교와 방위청 방위1과 직원 등 84명이 63년 2월부터 5개월간에 걸쳐 만들어낸 총 4개 파트 1,419쪽 분량으로 한반도전쟁시 자위대 활동의 모든부분을 커버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는 언론을 통해서는 앞의 세 파트는 공개, 마지막 파트는 비공개 되어, 일본 외무성 산하 평화안전보장 연구소에서 복사나 사진촬영이 금지된채 열람만 가능합니다.
오카다 의원의 폭로로, 당시 방위청 장관 '고이즈미 준야'는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되는 데 그가 바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아버지며,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미쓰야 연구'가 있은 지 정확히 40년 뒤인 2003년, 이 '미쓰야 연구'로부터 시작된 전시 자위대의 대응 및 관련 법규를 명시한 '유사법제(有事法制)'를 국회 통과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