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종종 일요일에 장거리 등산을 가는데요.
함께 가는 그룹이 있거든요.
대개는 부부동반으로 가고 사정이 있으면 배우자 없이 가기도 하고요.
산에 오를 때는 각자의 속도로 가기 때문에
뭐 딱 바로 옆에서 가는 건 아니라서 함께 등산 시작지점에 가서
각자 등산하다가 점심 도시락을 꺼내 먹을 때는 또 모여서 먹다가
하산 지점으로 각자 알아서 오는.. 그런 모임이예요.
산에 가서 가다보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기도 하고
한참 안 보이다가 또 다시 보기도 하고.
그러니까 별달리 구속력은 없고 함께 이동하는 것 외엔 각자 알아서 하는건데요.
이 모임에 우연히 제 대학교 남자후배가 있고, 그 부인은 저하고는 학교가 다른데
제가 아는 바에 의하면 저보다 다섯살 정도 어립니다.
제 대학교 후배는 지금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고요.
그 부인도 직업이 있는데 남편 못지않게 잘 나간다네요.
부부 둘다 뭐 별달리 근심거리도 없고 애들도 잘 컷고
본인들이 둘다 여유있는 집에서 공부 잘 하면서 컷고, 사는 내내 경제적으로 윤택하고
지금도 잘 살고 앞으로도 평생 잘 살거에요.
근데 이 부부가 뭐랄까 나쁘거나 못된 건 아닌데요,
좀 불편한게 있어요.
둘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데도 한번도 제게 존대말 비슷하게도 한 적이 없어요.
늘 말이 짧고, 한마디로 반말입니다.
저보다 나이 있는 우리 남편에게도 그래요.
그리고 뭐든지 자기네 맘대로 해요.
산에서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에는 밧줄이 있거든요.
이 밧줄은 경사가 아주 급한 곳에서는 한 사람이 다 내려간 이후 다른 사람이 내려가야지
누가 내려가고 있는데 위에서 다른 사람이 밧줄을 타면 밧줄이 크게 움직여서
밑에 내려가는 사람은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요.
한 2년 전인가, 거의 낭떠러지 처럼 된 경사지에 제가 먼저 밧줄타고 내려가고 있는데
제 후배가 밧줄을 타서 밧줄에 매달린 제 몸이 사정없이 절벽에 내동댕이쳐서
머리도 심하게 부딪히고 팔에 넓은 면적으로 찰과상을 입은 적도 있어요.
그게 겉에 입은 옷이 심하게 마찰이 일어나면서 몸을 보호했기에 망정이지
안그러면 큰일날뻔 했거든요.
그러고도 미안하단 말도 하지 않더라고요.
지난 주말에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이 코스가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고
중간에 우리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는 장소는 캠핑장 근처라서 거기 커피자판기가 있더라고요.
커피 마실사람~~.. 물으니까 다들 너무 추워서 한두사람 빼놓고는 다 먹겠다고 했어요.
제가 동전을 넣어서 하나씩 빼서 다들 마시고
마지막에 남편이랑 제가 빼서 한 모금이나 마셨을까 하는데
제 후배가 이제 다시 출발합시다.. 이러고 사람들 다 데리고 가는거예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제가 다시 산을 걸으면서
그 후배 따라잡고선 잠깐 얘기 좀 하자 했어요.
그러곤 마지막에 저하고 남편이 커피 막 마시기 시작했는데 출발하자! 이러면
우리가 마시다 말고 튀어 나가야 하는거냐..
그렇게 급하면 네가 커피를 뽑아서 사람들에게 다 주고
우리 부부에게도 주고나서 제일 나중에 네가 마시든지 말든지.
저번에도 밧줄 탈 때 내가 아직 다 내려가지 않았는데 네가 밧줄에 올라타서 내가 다쳤던거
그때도 미안하단 말도 하지 않아서 참고 아무 말 안했더니
세월이 가도 어째 사람이 하나도 배우는게 없냐고.
네 몸만 몸이냐고.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거냐고.
이 후배가 세상에 미안하다 말도 하지 않네요.
저도 더 이상 말하기 싫어서 그냥 먼저 내려왔습니다.
우리 남편 말에는
그거 깨우칠 사람이 아닌거 같다네요.
사람이 어려움 없이 자라서 내내 잘나가니까
자기네 맘대로 하는 것에 조건화가 된 거라는..
부부가 둘다 자만심밖엔 없다고.
사람이 남에게 공감을 하려면
본인이 어려움을 겪어본 경험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어쨌든 고생도 해보지 않고 평생 잘 나가면서 남의 어려움에 공감할 줄 안다는건
있을 수 없는 일 같아요.
우리 애들도 앞으로 내내 어려움이나 고생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렇게 살면 자기밖에 모르는 편협한 사람이 되겠다 싶어요.
그러니까 살면서 고생하는 건 어찌보면 사람를 키우는데 꼭 필요한건가봐요.
사람이란 자기가 겪어보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