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

응답하라 조회수 : 5,073
작성일 : 2012-09-09 00:49:23

응답하라 1997을 무한 반복해서 보고 있는 아짐입니다.

남편도 내가 보고 있으면 머리 들이밀고 같이 보는 주제에 드라마만 본다고 타박입니다.

이 남편이 제 첫사랑이에요.

결혼 16년짼가...

 

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 머리 뒤에서 후광을 봤습니다.

순간 주변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남편 얼굴만 보이는 초현실적 착시가 생기더군요.

더 놀라운것은 이 남자도 보자마자 티를 내며 소개팅 중매장이 내 친구를 구박해서 빨리 내 쫒았습니다.

그러더니 '애프터'로 만나서는 심호흡 한 번 하더니 자기 집의 어려운 이야기를 다 하더군요.

우리 부모님은 이혼하셨다...부터 시작해서 주저리 주저리...

저는 뭥미...하면서 계속 만났습니다.

 

세월은 흘러 흘러...많은 이야기와 사연이 있지만,

우린 헤어졌습니다.

그 사연이야 쓰기로 한다면 읽는 분들이 한 양동이 오바이트 할만큼 진부한 영화 속 그런 장면들이니 생략합니다.

 

헤어진 후 몇 년이 지나 주변의 친구들에게 청첩장을 계속 받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대학 졸업하면 몇 년 안에 결혼을 하는 분위기었습니다.

그 당시만해도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잌'이다 - 라는 말이 뭐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때 였습니다.

 

23일부터 케잌이 팔리기 시작해서,

24일에 피크로 많이 팔리고,

25일은 크리스마스 당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26일 부터는 당장 재고 떨이에 들어가야 한다.

27일은 당연히 폐기 처분이다....

 

폐기 처분할 나이에 도달하니 좀 마음이 급해지기도 해서

친구들 결혼식에 열심히 쫒아다니며 친구 남편의 친구들을 찝쩍여 보기도 하고,

회사 선배 동료들을 소개팅 해내라고 갈구기도 하고, 거래처 사장님 한테 까지 소개팅 해내라는 협박까지 했더랍니다.

결혼을 목표로 정말 무수하게 많은 사람은 만났지만,

설레기는 커녕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었어요.

 

때는 휴가철...다들 휴가를 떠난 작은 사무실에 저만 혼자 출근하게 되었습니다.

밖에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혼자 출근한 사무실에 달랑 대리 주제에 뭐 할 일이 있겠습니까.

멍 때리기를 한나절,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다 용기를 냈습니다.

첫사랑 남자에게 연락해 보기로.

 

소개팅 해준 친구는 유학을 가서 연락처도 모르고 (요즘처럼 이메일, 카톡, 이딴게 어딧습니까!)

설령 옆에 있다고 해도 쪽팔려서 물어보지 못했겠지요.

유일하게 생각나는게 그 남자가 자취를 같이 하던 선배 형이 OO회사에 근무한다는 것과 그 선배 이름이 기억났습니다.

죽기아니면 까무라치기니까 전화를 돌렸습니다.

114로요.

 

요즘도 회사 대표전화로 전화해서 거기 직원 아무개 바꿔달라고 하면 그냥 연결을 해 주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때는 잘 바꿔주더군요.

 

"아...OO 말입니까? 지도 만난지가 한참되서...XX회사 다닌다는 이야기만 들었습니다."

 

모, 이왕 된 김에 또 XX회사 대표 전화를 114에 물어보았고, 또 순조롭게 연결이 되었습니다.

 

"여보세요." 내가 말하는 순간,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잠깐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여태 낸 용기는 어디로 가고 전화를 끊을까 말까 갈등해야 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제 목소리를 알아듣는 거였습니다.

그것도 활짝 갠 목소리로요.

그리고 바로 그 날 저녁 재회를 했습니다.

 

몇 번의 만남 후, 또 이 남자가 우물쭈물 하는 겁니다.

집안에 대한 컴플렉스, 결혼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점 등등...

부산남자들이 터프한 것 처럼 보여도 영 중요한 상황에서는 자신없어 합니다.

 

또 용기를 한 번 더 내서....너 나랑 결혼하자. 그것도 올해 내에 하자. 선언을 했더니 좋아서 비실비실 죽더라구요.

 

그렇게 결혼해서 지금껏 잘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내내 happly ever after...는 아니구요, 남들 하는 거 다하고 그러고 살았습니다. 부부싸움도 뭣 같이 하고, 이혼하자고 쥐 뜯고 싸우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는 환타지죠, 환타집니다.

어디 넓은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집니까!

절대 만나지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 나이 40되서 긴가 민가 하면 만나질 수도 있어요.

 

절대 만나지지 않는데 드라마/영화에 속아서 우연만 바라고 용기를 내지 않는 것 - 이게 첫사랑에 실패하는 이윱니다.

 

그 때 연락한 남편 선배, 결혼식에 뵙고 아직 한 번도 못뵜습니다.

남편과 만나지 못했었더라면...더더욱 한번도 뵐 일이 없었겠죠.

쪽팔려서 죽는줄 알 뿐이지 실제로 사망하지는 않습니다.

잠깐 미친척 용기를 내면 사랑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 잠깐 잠이 안와 뻘 글 써봤습니다.

응답하라 보다가 미쳤나봅니다.

 

IP : 175.156.xxx.138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bluesmile
    '12.9.9 12:56 AM (121.148.xxx.165)

    이렇게 유쾌한 글들 많이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어요

  • 2. 우와..
    '12.9.9 12:57 AM (14.45.xxx.248)

    1997보다도 재밌어요 님 사연 드라마로 만들어도 재밌을듯..
    저도 그런 사람이 있는데 언젠가 용기낼수있을까요

  • 3.
    '12.9.9 12:57 AM (121.135.xxx.78)

    와 님 대단하네요

  • 4. 난 또 뭐라고..
    '12.9.9 1:14 AM (118.35.xxx.88)

    ㅋㅋㅋㅋ 재밌어요. 전 결말이 안좋을 줄 (?) 알고 떨면서 읽었는데,, 아니네요..

    happily

  • 5. 포로리2
    '12.9.9 1:18 AM (175.193.xxx.37)

    우왕 너무 죠아용~ 하트뿅뿅!!!!!!!!

  • 6. 원글이
    '12.9.9 1:25 AM (175.156.xxx.138)

    저 위에 우와..님,
    지금 당당 용기를 내시라니까 그러네요.
    창피해서 죽을 것 같아도 실제로 죽지는 않는다니까요.
    확~~질르세요, 질러!

  • 7. **
    '12.9.9 2:06 AM (71.156.xxx.83)

    원글님은 o형
    남편분은 a형 아닐까요?
    a형 남자들 결혼하자고 먼저
    말 못하는 경우 많다던데..물론 예외도 잇지만요~^^

  • 8. 콩콩콩콩
    '12.9.9 2:22 AM (121.178.xxx.94)

    멋지시네요....ㅎ
    저도 제인생에서 그의 오로라(?) 기(?) 암튼 이런걸 느낀 남자가 단 한명 있는데...
    안잊혀지네요.
    지금 중국에서 공부를 하는지라,,, 만날일도 없고, 그냥 딱 한번은 다시 만나보고 싶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용기내서 기회될때 꼭한번 만나보러 가야겠어요ㅎ

  • 9. 크크
    '12.9.9 6:00 AM (210.91.xxx.4)

    전 남편이 제 머리에서 후광을 본 쪽이죠..
    만나지던데요... 그것도 서울역에서요.. 근데 헤어지고난 뒤 너무 빨리 만나서.... 그때는 다시 연결되진 못했어요.
    결국 남편이 다시 전화해서 만나게 되었답니다.

    그건 그렇다치고.. 학교다닐 때 잠깐 사귀거나.. 사귀자고 쫓아다녔던 남자들이 자꾸 연락이 닿아서 미치겠네요.
    저번주엔 회사 부장님(?)이 회식엘 갔는데 누가 제 안부를 물어보더라구... 아는 사이냐고 해서 깜놀했어요...
    아..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철저하게 소멸되고 싶은데.... ㅠㅜ

  • 10. 끝에서두번째문단..으하하~~~
    '12.9.9 1:41 PM (122.35.xxx.41)

    ---------------------------------------------------------------------
    그 때 연락한 남편 선배, 결혼식에 뵙고 아직 한 번도 못뵜습니다.

    남편과 만나지 못했었더라면...더더욱 한번도 뵐 일이 없었겠죠.

    쪽팔려서 죽는줄 알 뿐이지 실제로 사망하지는 않습니다.

    잠깐 미친척 용기를 내면 사랑을 쟁취할 수 있습니다.
    ---------------------------------------------------------------------

    완전 공감합니다 ㅋㅋㅋㅋㅋ
    저도 그때 살짝 안돌았으면 노쳐녀였을것 같은 ㅋㅋㅋㅋㅋ
    재미난글 잘보고 갑니다 ^^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8346 아이한테 따듯한물 뭐 타서 먹이시나요? 6 목감기 2012/09/22 1,646
158345 남아 8,9세 한복 이쁜 싸이트좀 알려주세요.. 1 알려주세요... 2012/09/22 1,092
158344 컴 폴더의 문제해결 부탁합니다 007뽄드 2012/09/22 1,226
158343 티브이 없이 자녀 키워서 교육 및 진로에 성공시킨 선배님께 진지.. 16 ***** 2012/09/22 4,100
158342 신축 아파트 거실바닥이 장판인 경우도 있나요? 7 거실때문에 2012/09/22 4,993
158341 아동한복 원단은 어떤걸로 해야될까요? 3 급해요 2012/09/22 1,921
158340 부정교합 3 부정교합 2012/09/22 2,422
158339 화재로 인한 그을음....살림살이 사용 가능한가요? 2 궁금해요 2012/09/22 1,774
158338 감정적으로 힘들어요 35 여자 2012/09/22 11,996
158337 삼성서울병원이 성균관대의대병원인가요? 9 삼성 2012/09/22 10,251
158336 세아이 맘님들 도움 부탁드려요! 28개월 차이 6 세아이맘 2012/09/22 1,822
158335 박근혜 유신발언 관련기사(안보신분 보세요) 2 .. 2012/09/22 1,521
158334 안철수 ”3자 회동, 국민들께 추석선물로 드리자” 22 세우실 2012/09/22 2,546
158333 오토비스 중 무선과 충전형 의 다른점 3 그라시아 2012/09/22 2,328
158332 체르니 100에서 어드벤처 피아노 시작했는데 고민이예요 6 dff 2012/09/22 7,722
158331 르윈스키 134억받고 책출간한데여 클린턴과의섹스 스캔들 3 금마 2012/09/22 3,155
158330 (급)새우손질하다 손가락이 찔렸어요 1 새우까시 2012/09/22 2,738
158329 콧물 모닝 2012/09/22 1,210
158328 아들이 피라미드에..... 1 피라미드 2012/09/22 1,790
158327 선관위.."투표시간 늘리면 국민들이 밤새워 개표상황을 .. 8 ... 2012/09/22 2,151
158326 안철수후보님 찍는다는 이들 13 제 주변에 2012/09/22 3,055
158325 남편들도 심리치료받아야 할 사람들 많지 않을까요? 2 엄마 2012/09/22 1,882
158324 동네 반찬가게에서 13 반찬가게 2012/09/22 4,796
158323 컴퓨터에서 나오는 소리를 곰녹음기로 녹음하는 방법 4 어려워요 2012/09/22 3,356
158322 헤어졌습니다 16 딸기800 2012/09/22 4,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