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 특히 도시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생존경쟁으로
내몰리게 되고, 또 그걸 당연시 받아들이는 현상이 현대 사회인의 운명인 듯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보편적인 가치관에 의해 살아가는 생활이 아니라
실적과 성적에 따라 우열이 나누어져 성과에 차등이 생기게 되는, 그런 무한경쟁의
현실 말이지요.
이런 상황이 성찰 없이 지속될 때 어느 날, 영성(靈性, Spirituality)의 결핍으로 인해
내면의 분열된 위기에 몰린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일상을 보더라도 T.V, 컴퓨터, 휴대폰 등 정보통신 매체를 통한 넘쳐
나는 정보가 편의성을 넘어 오히려 생활의 장애를 불러오는 것 또한 현실이지요.
도시생활의 온갖 소음은 끊임없이 사람들의 신경계를 자극해 극심한 <스트레스성性>
질환에 시달리게 되고, 매일같이 그런 환경 속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과부하過負荷’가 걸린 삶을 단순화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틈틈이 복잡해진
내면을 정화하지 않으면,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성으로부터 누구라도 안전할 수가
없겠지요.
또한 생업을 위한 <일>의 어려움에 더해, 가족뿐만 아니라 생각과 시각이 다른 사람
들과의 ‘관계를 위한’ 소통의 어려움이 늘 거칠게 도전해 오는 것, 역시 정신적인
압박감의 큰 요인이 될 것입니다.
강희안(1417 ― 1464) 작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
농업사회에서 진화된 산업화 사회에서는 ‘똑똑하고 강한 자’가 시대의 모델이 될 수
있었겠지만 현대와 같은 정보화 사회와 미래의 <드림 소사이어티, Dream Society>
에서는 창의력과 감성을 지닌 ‘현인賢人’이 더 바람직스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현인’의 조건은 학덕도 중요하겠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화>할 수 있는
지혜의 능력과 함께 삶에서 여백의 가치를 알고, 그 소요逍遙를 선용할 줄 아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을 잘 알고 있는 현인이야말로 자기 몸과 마음을 잘 조율해서 휴식할 줄
도 알 것입니다.
현대인들처럼 생존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자기 파괴적인 가치를 지향指向하는 것에
대해 <바이블>은 “세상을 얻는 것보다 생명을 더 소중히 할 것”(마태 16:26)을
말하고 있는데, OECD국가 중 40대 가장의 사망률이 가장 높은 건 무슨 뜻인가요?
우리 사회의 속도와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성 질환이 생명을 단축하는,
한 중대한 요인이 된다면 중년 가장이 가장 많이 죽어나가는 사회가 <희망사회>가
될 리는 결코 없겠지요.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에서도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조선의 화가인 강희안이 그린 <고사관수도>는 “고결한 선비가 물을 보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한 처사가 강가에 엎드려 수심水心을 내려다보고 유유자적하며
삼매三昧에 잠겨 있어요.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꿈같은 인간 세상
人間如夢’의 덧없음을 명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시원스레 척 늘어진 덩굴줄기가 건듯 스치는 바람결에 하늘거릴 때 시름에 겨운
속세의 짐들은 잠시 망각하거나 모두 벗어놓고, 이렇게 무위無爲가 되었습니다.
사람들과의 속사에 얽힌 풍진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안겨 흐르는 물을 관조
하는 한 선비의 편안하고 넉넉한 여유에 ‘소요의 멋’을 엿볼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스위스 추상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 ― 1940) 작
<자화상>
현대인들은 틈틈이 세상의 소음, 번잡한 일상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정신을 쉬게 하고
자신을 살피는 시간이, 내적 충전을 위해서도 요구됩니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
일과 인간관계에 시달리고 지친, 개인의 정신적 긴장을 마땅히 풀어놓을 수가 없다면
그의 <자화상>은 일그러질 수밖에 없겠는데요,
아무래도 영혼과 몸은 평안과 건강을 유지할 수 없고, 왜 살아가는 이유도 대답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사람이란 자신의 내심 깊은 성소에
‘명상의 쉼터’를 늘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하겠지요.
오늘날, 도시‧농촌생활자 할 것 없이 모두 한 목소리로 바쁘다고들 말합니다. 항상
분망한 나날을 보내는 게 일상이다 보니,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도 없이 늘 쫓기듯 살아간다는 이야기는 현대인의 불행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고는 해도, 문명이 태동한 이래로 지금처럼 <돈>을 흔하게
쓰던 때도 없었을 듯하고 <소유물>이 많았던 시절도 없었을 터인데 여전히 사람들은
<돈>과 <소유물>에 갈급한 상태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또한 영성적으로 빈곤한
현대인의 한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천천히 함으로써 빨리 해진다.’는 <독일격언>이 속도에 너무 길들여져 있고 성취욕
에 과열된 현대인에게 어떤 정도程度와 가능성을 줍니다. 일을 급하게 서두르다
보면 더욱 늦어지고, 자연의 순리대로 추진해갈 때 오히려 느리지만 실수 없이 뜻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1. 요한 파헬벨 - 캐논 D장조 (Canon in D Major)
2.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3.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 제2악장 - 엘비라 마디간 (Elvira Madigan)
4. 본 윌리엄스 - 푸른 옷소매의 환상곡
5. 베토벤의 바이올린 <로망스> 제2번 F장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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