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가 어떤 면에서 좋으며
주이와 진이의 육아 일기는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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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요. 슬프고 괴로운 기억들을 잊는 것은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한 자연의 이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조차 잊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가 재롱을 피우고 행복한 즐거움 주어도 그 순간뿐, 며칠만 지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아기였을 때 그 부모에게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온갖 세상의 힘듦과 어려움도 아이의 웃음에 눈 녹듯이 사라지고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아이가 자라면서 그런 효도를 점점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이들 어릴 적에 틈틈이 저축을 했습니다.
돈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저축했지요.
아이로 인해 행복했던 순간을 메모해서 훗날 힘들고 괴로울 때 그것을 인출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저축해서 좋은 점은 참 많습니다.
그 중에 세 가지를 고르자면,
첫째, 아이들의 커가는 모습이 기록으로 남습니다.
둘째, 훗날 펼쳐 볼 때 당시의 행복했던 감정이 그대로 살아납니다.
셋째, 아이들의 존재감과 자신감이 커집니다.
특히, 세 번째로 좋은 점은 정말 상상 할 수 없이 큽니다.
주이와 진이가 초등학교에 2-3학년 무렵에 자신들에 대하여 쓴 아빠의 글을 읽어 보고
얼마나 좋아하던 지요.
아빠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예뻐했는지 틈만 나면 다시 꺼내 보곤 하더군요.
그리고 무엇을 하건 더욱 자신감 넘치는 아이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 제가 썼던 이야기들 몇 가지 한번 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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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7-30
주이는 요즘 동생 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좀 받고 있다.
주이가 장난감 가지고 놀려고 하기만 하면 진이가 나타나선 제 언니가
가지고 노는 것을 빼앗으려 한다.
진이는 막무가내로 때 쓰면서 달라고 조르니 자꾸만 주이 보고 양보
하라고 하게 되고, 그러니 주이 입장에선 불만이 크다.
어떨 땐 주이가 끝까지 장난감을 안주면 엄마한테 달려가선 울면서 조른다.
언니 장난감 뺐어. 달라고…….
그럴 때 마다 하는 말은…….
"주이야... 언니가 양보 해야지..."
"으이그... 귀찮아 죽겠어..."
그러면서 할 수 없이 양보 하곤 한다.
자꾸 진이의 역성을 들어 주니깐 진이의 버릇이 나빠지고 주이의 불만도 커지는 것
같아서 이젠 가급적이면 저희들 둘이 알아서 해결 하라고 모르는 척 놔두기로 했다.
하루는 진이가 주이의 머리를 톡톡 쳤다.
진이는 관심의 표시로 사람들을 가끔 톡톡 치는 버릇이 있다.
몇 대를 참고 가만있던 주이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야..!! 진이야...!! 내가 너보다 힘 더 쎄..!!
너도 한번 맞아 볼래..??"
그러더니 진이 머리를 주먹으로 퍽~!!
"으앙~~~~"
"쪼끄만 게 까불고 있어..."
나와 아내는 보고도 모른 척 하고 있었더니 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엄마한테 갔다가 나한테 왔다 하더니 혼자 엎드려서 우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깐 주이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진이한테 가서 울지 말라고 달래주었다.
그러자 진이는 언제 싸웠냐는 듯이 제 언니 목을 끌어안고 뽀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끼리 다툴 때는 가급적 어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기들끼리도 자연스레 위계질서가 잡히고 서열이 정해지는 법이니까…….
이제 19개월인 진이는 아직 말을 잘 못한다.
정확하게 발음 하는 것은 딱 4단어뿐.
'아빠, 엄마, 언니, 뽀뽀'.
나머지 말은 찌찌..빠빠..쮸쮸.. 무슨 말인지 통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내는 귀신처럼 다 알이 듣는 모양이다.
"응..?? 물 달라고..??"
"응..?? 쉬이~ 한다고..??"
"응..?? 잘못 했다고..??"
"응..?? 밖에 나가고 싶다고..??" 등등…….
진이 입장에서도 유능한 통역사가 있어 생활에 불편이 거의 없으니
굳이 말을 제대로 배울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진이는 발음을 정확히 못 할 뿐이지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은 거의
90% 이상 정확히 알아듣고 행동을 한다.
가끔 제 엄마가 뭐라고 야단을 치면 꼭 진이가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뽀뽀..."
하면서 주둥이를 내밀고 달려든다.
거기에다가 대고 야단칠 위인은 아마 아무도 없으리라.
가끔 내가 야단 쳐도 주둥이 내밀며, "아빠... 뽀뽀...".
벽에 낙서해서 야단치면 "뽀뽀..."
가끔 팬티만 입고 쉬이~ 해도 " 뽀뽀..."
컵에 물을 방바닥에 쏟고 나도 "뽀뽀..."
밥상의 반찬을 젓가락으로 어지르고도 "뽀뽀..."
아무튼 사람들이 제 뽀뽀에 꼼짝 못한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진이는
자기의 비장의 무기를 아주 잘 써먹는다.
주이와 진이는 한 배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의 성격이란 후천적인 면보다도 선천적인 요인이 더 많이 작용 하는 것 같다.
주이가 아기였을 때 썼던 방법이 진이에겐 안 통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아기들도 하나의 인격체로 자기의 개성을 살려 키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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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08-06
주이와 진이는 식성이 다르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에 대하여 보이는 관심도 다르다.
주이는 배가 아주 고프기 전 까지는 먹을 것을 별로 찾지 않는다.
군것질도 거의 안하는 편인데, 진이는 정 반대이다.
저녁상을 차리는 것만 봐도 진이는 놀던 것도 팽개치고 달려와선
젓가락 한 짝 들고 이것저것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밥상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 갈 때면 진이는 자기가 거든답시고
밥상의 다른 한쪽을 붙잡곤 낑낑 거리며 방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TV에 빠져있는 제 언니의 손을 잡고 억지로 상 앞으로 끌고
와선 언니를 자리에 앉히고 자기 또한 제자리에 앉아선 밥을 먹기
시작 한다.
"주이야. 너 그렇게 밥 조금밖에 안 먹다가 진이가 더 커지면 어떻게 할래?"
"흥~~ 그래도 진이는 동화책도 못 읽잖아..."
"밥 먹는 거 하구 동화책 읽는 거 하구 먼 상관이 있다고 그래?"
"그래도 내가 언닌데 머……."
이렇게 엉뚱한 소리만 하곤 한다.
그동안에 주이가 하던 일들을 요즘 점차 진이에게 빼앗기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일이 내가 샤워를 할 때 속옷을 챙겨 오는 일이다.
그동안엔 내가 욕실에서 '주이야. 아빠 속옷.' 하고 소리치면
주이는 얼른 장롱에서 나의 속옷을 꺼내어 대령 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에 진이는 한술 더 떠서, 내가 옷 벗고 욕실에 들어가는
기미만 보이면 내가 소리치기도 전에 얼른 뒤뚱거리며 장롱을 열곤
속옷을 꺼내어 욕실 앞으로 달려와선 내가 받을 때까지 '압빠..압빠..' 하며 소리 지른다.
어떨 땐 위에 것만 두개, 또 어떨 땐 아랫것만 두개씩 들고서…….
그걸 본 주이는 그 일은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라며 진이가 들고
있는 속옷을 빼앗으려 가끔 다투곤 한다.
그러더니 요즘엔 둘이 합의를 했는지 공평하게 속옷을 한 가지씩
가져 와선 아빠를 욕실 앞에서 기다린다.
이젠 웬만한 일들은 둘이 다투지 않고 나누어서 하는 편이다.
식사 후에 빈 그릇들도 사이좋게 하나씩 들고 부엌 설거지 통 속에
집어넣기도 하고, 장난감도 둘이 사이좋게 같이 어지르기도 한다.
샤워 후에 속옷 입을 때나, 퇴근 후에 집에 들어서면 서로 먼저
인사하며 달려들 때 딸내미들은 잘 뒀단 생각이 문득 문득 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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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여름 어느 날의 일기군요. ^^
20여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다시 읽어봐도 그때의 정경이 눈에 어른거립니다. ^^
날짜를 계산해 보니 주이는 다섯 돌이 지났고 진이는 두 돌이 아직 안되었을 시기입니다.
읽다 보니 주이가 동화책을 읽는 장면이 나오는군요.
그렇다면 주이와 진이는 한글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익혔을까요?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