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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가정 안에서, 지속적인 사랑을 위한 <명상 에세이>

| 조회수 : 2,401 | 추천수 : 0
작성일 : 2012-10-15 23:18:03

 

 


둘이서 <하나 됨>.........

 

 

82cook <자유 게시판>에 올라오는, 가정사에 얽힌 진지한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가정 안에서 부부의 지속적인 사랑은 가능한가? ..... ’ 라는 질문을 가지고 틈틈이

정리해 본 것인데요, 부부의 갈라섬이 없는 <하나 됨>의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것

<3가지>를 열거하고서, 그것을 중심으로 고전을 비롯한 책에서 인용한 글 이외에

개인의 상식적인 견해들을 덧붙였습니다. 다만 경제적인 문제는 생략했지요.

 

읽으시는 분의 개인적인 성향과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서 고루하거나 진부한 잡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이혼>과 <가족해체>의 파열음이 들리는

현대 ‘가정의 위기’ 를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남녀 개개인의 심리와 행동의 난해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부부간의 내면성 깊은

사연에 정답은 찾기 어려우니 참고가 되셨으면 하는데요, 글을 쓰는 직업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 공감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선의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숭고의 미학> ―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 작품, 러시아 출신 미국 화가

 

 

조망 ― 불확실성의 ‘이 세상 ....... ’

 

아마도 성별이 다른 남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일은 ‘숭고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라는 곳은 사람의 성격처럼 ‘가변성可變性’이

심한 곳이라서 좋은 출발이 반드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지요.

오전에 잘 나가던 일이 오후에 이르러 빗나가거나 헝클어지는 것이 세상일이고,

또한 너나없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이 세상, 우리의 일상임을

늘 목격하게 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삶은 ‘정답’을 말해 주지 않고 끝없는

의문 부호만이 있을 뿐이기에, 부부는 가정을 통해 가족을 구성하고 그 ‘물음표

(?......)’를 품고서 함께 긴 여정을 떠나는 도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또한 일상에서 <일>만큼 큰 골칫거리가 《인간관계》에서 시각의 차이로 인한

<조율의 어려움>이라는 건 누구나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이 인간이라는 피조물은 자기 자신과도 불화不和 관계 속에 살아가는 존재로서

또 다른, 자신과 갈등하며 살아가는 상대를 만남으로 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데요,

<이혼>은 결혼생활 중 누적되어 온 악순환에 대한 최후의 결단일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연륜이 더해지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스스로 알게 되지요,

참되고 의미 있는 것은 고통의 과정 속에 있고, 올바른 일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들, 인간은 세파世波를 겪으며 그 나약성으로 인해 항상 ‘유혹’의 흔들림을

안고 살아가기에 “의인은 없다.(로마서 3:10)”는 것이 《바이블》의 엄정한

지적인데요,

그렇지만 서로의 신뢰 속에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통해, 가정 안에서 부부의

지속적인 사랑은 가능할 것이라는 걸 전제로 제 이야기를 풀어가렵니다.

 

 


밤하늘의 아스라한 뭇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느 날, 한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하지요.

두 사람이 서로 자유의지에 의해 선택한 이 ‘사랑’이 보통 인연일까요?.........

 

 


신비가들에 의하면, 인간의 내면에는 광대무변한 우주의 크기와 비견할 또 하나의 장엄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한 인간을 출신이나 학력, 재력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이유이죠. 이런 ‘내면’을 간직한 인간의 양성兩性인 남‧녀가

하나가 되어 <가정>을 이룹니다.

 

 

결혼과 가정의 필요성

 

대부분의 연인이나 신혼부부는 자신들의 ‘사랑’이 시들지 않을 것처럼 말하지만

현대 과학은 ‘사랑의 감정수명’ 이 3년 안팎이라고 실증을 통해서 밝히고 있지요.

실제로, 남녀 관계의 불가해성不可解性으로 인해서인지는 몰라도 <결혼제도>가

인간에게는 맞지 않다고까지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년이 되면 반려자와 <혼인서약>의 통과의례를 거쳐서 가정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온전한 삶을 위해 서로를 돕는 일이고, 게다가 자손을 탄생하게 하며

양육시키는 과정의 소임은 <가정>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혼제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생명의 조화로운 생성의 역사는 영속될 수 없을

것이고, 이 전통적인 관습으로 인해 <가정>에 매이는 것으로 두려워한다면

세상에 ‘굴레’ 아닌 것이 얼마나 되겠는지요?

 

“양은 홀로 서지 못하고 반드시 음을 얻은 뒤에 설 수 있다.

그러므로 양은 음을 바탕으로 삼는다. 음 은 스스로 나타나지 못하고

반드시 양 을 기다린 뒤에 나타난다.” 《황극경세서, 관물외편 ‧ 5장》

 

북송 시대의 대학자 소강절(邵康節,1011~1077)의 말인데 음과 양을, 여성과 남성

으로 바꿔서 사용해도 이치가 꼭 들어맞는 내용입니다.

음과 양은 홀로가 아닌, 둘이 ‘합일’을 이루었을 때 균형을 이루고 조화가 이루어

지는 섭리를 설명한 것인데요, 음과 양, 여성과 남성은 이토록 상호의존적

이라서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제대로 존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이치인 것

이지요.

이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떨어져 있는 섬처럼 홀로는 정서적인

안정 등 온전하고 화목한 삶을 지향志向할 수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그래서 남녀 간의 사랑을 ‘거룩한 완전으로의 회귀’ 라고 독일의 철학자인 발터

슈바르트는 말하고 있는가 봅니다.

 

 


북한강물과 남한강물이 흘러내려 <두물머리>에서 만나 ‘한 물 덩어리’로 합쳐져 “출렁~~ ”

거리는 의미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한 몸 한 가족을 이루어 가는 섭리처럼 보입니다.

 

 

1. 자율성 ― 교양인의 도덕률

그런데 현실에서는 “어떻게 하면 결혼할 수 있을까요?”와 “어떻게 하면 이혼할

수 있을까요?”가 뒤섞여서 혼란스러운 현상들이 나타나곤 합니다.

좋은 생각과 아름다운 의지를 갖고 출발한 ‘인연’이 흉물스럽게 변질되어 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될 때 내밀한 ‘영혼 깊이의 사랑’에 대해서 회의감을 갖게

되겠지요.

시대의 영향이거나 <실용학문> 때문인지 남녀를 불문하고, 인성이 영악스러워진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특히 《탈무드》는 “남편의 부정不貞은 아내의 부정을 불러온다.”고 경고합니다.

결혼생활의 정신은 ‘사랑’ 이고 파경은 그 사랑의 아름다움이 깨지는 것으로,

만일 한 가정에서 이혼이 발생한다면 그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잠재적 사회

문제를 잉태하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개인에게 있어 무엇인가, 결핍이나 조절되지 못하는 욕망이 결국 상식과 이성을

넘어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유인하는 요인이 되는 것 같은데요,

서양의 <성 심리학>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속성을 각각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성은 모든 것을 만족시켜 주는 한 남자만이 필요하고,

남성은 한 가지를 만족시켜 줄 모든 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대 로마의 시인이자 철학자인 루크레티우스(Lucretius,기원전 98~55)가

통찰한 인간의 본성 중 일면입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동안,

그 가치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얻고 나면 곧 우리는

다른 것을 바라고, 비슷한 욕망이

우리를 사로잡아, 우리는 언제나 생을 갈구한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제3권 중에서

 

이러한 실증과 지혜를 통해 검증되고 통찰된 사례로 볼 때, 인간은 자유가 넘치는

시대에는 스스로 ‘자율성’ 을 강조해야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됩니다.

특히 현대인은 ‘인간의 영혼을 더럽히는 문화’ 로부터 방치되어 있고 이런

포화 상태로 널려져 잠복되어 있는 동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자율성이 어느 때

보다도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자율성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존엄과 그 생명에 대해 <윤리의식>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관습이나 법규를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과 양심을

따르는 교양인의 도덕률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마음가짐과 행위는 가정의 신성함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올곧게 지키는 역할까지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지요.

자율성을 벗어난 자유는 결국 이탈을 불러 오게 되고, 신뢰를 상실시켜 서로를

불행케 할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은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절제의 미학’

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이란 ‘대화’이다.” (A.v. 오레리)

 

 

2. 대화 ― 관계의 소통

누구든지 ‘진주의 상처’ 하나씩은 품고서 살아가는 것이 여정인 삶 속에 필요한

다른 하나는, 대화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겠지요. 즉 대화로써 부부의

접근성을 항상 유지하고 친화의 정을 쌓아가야 하는 그 정서적 교감 말입니다.

대화를 한다는 것은 ‘소통’의 다른 표현으로, 자연은 소통을 기반으로 해서

생성하고 순환하고 있기 때문에, ‘막히면’ 결국 질식과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고

내적으로 ‘쌓이는’ 것은 언젠가는 분출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갖게 됩니다.

 

내면으로 고요히 침잠해 들어가는 명상이나 성찰은 자기 자신의 본 모습과,

대화는 자신을 열고서 상대방과 소통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간의 <운우지정雲雨之情>도 너와 나가 서로 사랑의 신비를 느끼는

대화로서 소통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상대와 대화를 하면 ‘벽을 느끼는’ 문제마저 <대화>를 통해서 할 수밖에요.

상대를 향한 이 ‘으르렁’거리는 감정을 어떤 목소리에 담아야 서로 화목할까요?

얼굴 표정, 목소리의 미묘한 톤tone의 변화에 따라 상대의 감정은 천차만별로

다르게 반응하는 걸 우리는 늘 보게 됩니다.

 

폴 투르니에 말처럼 “모든 인간이 이렇게도 참된 대화를 갈망하고 있는데

왜 그런 대화는 드물고 확립하기 어려운가?” 하는 까닭은,

원래 인간은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성을 가지고 세상과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

하기 때문에, 그래서 현인賢人들과 역사가(A.토인비)는 “자기중심을 벗어나

서로 상대의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라.” 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이겠지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바라는 소망을 품고 살지만 세상은 그러한

인간의 소박한 꿈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지요.

우리는 모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가는 고독한 존재들이고

다가오는 내일을 알 수가 없습니다. 삶이 이토록 불확실성 하기에, 종교에 의지

하거나 자기만의 <이상향>을 만들어 놓고 탐닉에 빠지고, 금융상품으로 온갖

방어벽을 둘러쳐 놓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화의 단절이나 건조해진 감정은 여정을 더 힘들게 하는 또 다른 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고인 물은 썩지만, 흐르는 물은 언제나 신선하다.”

 

“아름다운 옥이라도 다듬고 닦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듯이”

(玉不琢不成器, 예기禮記, 학기편 18장)

 

“용기를 내어 그대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가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

 

“스무 살의 얼굴은 자연이 만들어주는 것이고, 서른 살의 얼굴은

삶이 만들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쉰 살의 얼굴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코코 샤넬)

 

 

3. 자기 쇄신 ― 신선미 新鮮味 의 항상성 유지

<젊음>과 <아름다움>은 남겨놓고 시간이 흐른다면 누가 세월을 탓하겠는가마는

이에 예외 된 자가 없으니, 신선미의 유지와 회복을 위한 노력에 시간을

들일 것을 권유하는데요, 독서(혹은 외국어 공부)와 더불어 적절한 운동입니다.

지적 모험과 운동은 지각知覺과 심신을 자극해서 열린 시각과 함께 몸에는

생동감을 주기 때문에 독서와 운동이 생활화되면 정신과 육체의 신선한 기운이

자연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 본래의 타고난 아름다움이야 한정적일 수 있겠으나 인체가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해 나가는 것처럼, 후천적인 노력으로 정신과 육체의 ‘신선미’를 늘 가꾸고

다듬어 가는 생활에서, 자신을 소외시킬 일이 있을까요? ........

남성들도 <아저씨>가 아닌, 늘 ‘푸른 청년’으로 나이 들어 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세월의 강물이 흘러서 사람이 한 생활에 오래 길들여져 있게 되면, 대개 누구나

조심성스럽던 말과 행동이 흐트러지고 몸가짐은 둔탁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가사家事에 몰입되어 자식을 낳고 키우다 보면, 처녀 적의 섬세하고 아름답던

목소리와 인성이 거칠어지고, 자신의 돌봄에도 미지근해지거나 망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인 물>은 ‘흐르는 물’ 의 청정성과 그 신선미를 따를 수가 없지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늘 푸르고 건강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자들 역시 마찬가지로 결혼 후 신사의 <매너>가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여성의 예민한 감성을 불쾌하게 자극하는 일들이 쌓이다보면 결국 남편을

존경심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각자 서로가 내심은 다른 길을 걸어가며 ‘함께

살아가는 타인’ 이 될 것입니다.

부부는 소외와 메말라 가는 감정을 경계하고, 가정생활과 사랑의 지속성을

위해서도 올곧은 자기관리의 노력이 늘 함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셔요, 이미 고갈되어 버린 우물에 누가 물을 뜨러 가겠나요?

 

남편과 아내는 상하관계가 아닌 삶의 동행자로, 상대의 부족하고 어두운 면을

등불처럼 밝혀주는 존재인 <도반道伴>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소속된 ‘평생의 파트너’ 로서 사려 깊은 배려와 자기 쇄신을

통해 사랑의 초심初心을 회복하면서 동행 했을 때, 삶의 짐은 훨씬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네요.

이미 세상 물정의 <언어>를 이해한 성년이 되어서 스스로 선택한 결혼이라면,

물살 빠른 듯이 흐르는 시간 속에 ‘신뢰와 사랑’ 의 관계가 지속되는 부부가

되어야 할 지난至難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옛 현철賢哲이 “사랑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다.” 고 전하는 말은 현대에서도

여전히 통하는 견해일 거라고 생각해 본답니다.

 

 


전북 부안 내소사來蘇寺 <사찰 문>

 

의 <조화와 공존>은 의 집합을 형성해 내듯이 남성과 여성의 <하나 됨>의

조화는 가정을 이루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며 우주의 질서에 협력하게 됩니다.

 

男女構精 萬物化生: 남녀가 서로 사랑해서 모든 만물이 번져 나온다.

                                                                                    《주역 계사전 하편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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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댓글일수록 예의를 갖춰 신중하게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march
    '12.10.16 8:22 AM

    아주 반듯한 청년?
    인듯합니다
    바른 " 탁견 " 공감합니다
    귀한 글로 ~ 오늘 시작합니다 .
    항상 깔끔정결한 글 ~ ~ 잘읽고 !

  • 바람처럼
    '13.3.18 10:24 PM

    저로서는 march 님께서, 실제 생활을 통해 대부분 ‘체험적’으로 알고
    계신 걸 사유하며,《글쓰기》로 차분하게 그려냈을 뿐입니다. ^^

  • 2. 해진맘
    '13.3.10 5:57 PM

    뒤늦게지만 글 감사합니다.^^

  • 바람처럼
    '13.3.18 10:10 PM

    좀 긴 글이지 않았나요?......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드려요. ^^

  • 3. 원주
    '13.3.19 3:45 PM

    참 부부로 산다는것이 어려운 숙제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한 가정의 부모로 아이들에게 고갈된 우물이 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역시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커가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바람처럼님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바람처럼
    '13.3.20 4:10 AM

    남녀가 부부로 인연을 맺어 살아간다는 게 정말 어렵고 귀한 인연인데,
    그 생활이 계속 지속되지 못하고 갈라서는 경향이 너무 흔해진 현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그렇지만 힘에 겹고 끊임없이 인내를 요구하는 과정 속에서도, 둘이서
    서로 맞춰가는 분들이 대다수인 게 또한 현실이기도 하지요.

    원주 님께서 늘 현실에서 겪고, 부딪쳐서 ‘경험적으로 알고’ 계신 것을
    저는 단지 글로 써보았는데 이런 글, 두 번 다시는 못 쓸 것 같습니다.
    불가해한, 즉 ‘알 수 없는’ 결혼생활이라는 《고난도의 문제》를
    설득력 있게 풀어 말한다는 게 한계가 있기 때문이지요. 글 읽으시면서
    간간이 거부감이 들지는 않으셨는지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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