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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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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벗어놓은 실내 샌들로 보아서 여인이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던 중 잠시 틈을 내어
햇빛이 내리쪼이는 창가에 앉아 독서를 하는 모습입니다.
역광을 표현한 것이지만 두건의 빛의 흐름과 발밑 바닥의 햇살을 강조한 것은, 책을 읽는
사람은 세상이 주는 고통과 내면의 번민이라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희망의 빛’에 감싸여
그 광명의 인도를 받는다는 의미를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1. 첫 번째 이야기 ― 인터넷에서 보고 그대로 옮겨 옴
일전에 철학과 교수님 한 분을 뵌 적이 있다. ‘철학가가 바라보는 경제’에
대한 강연을 하셨는데, 그때 그 분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대해
구구절절 외우고 계셨다. 얼마나 놀랐었던지!.......
분명히 나도 전에 그리스 전쟁사에 관한 책은 읽은 터였다.
물론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는 책도 읽었다. 그렇지만 내 머리 속에는
그 책의 단 한 구절도 제대로 기억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 그 분께 이런 역사를 꿰뚫고 계시는 것이 정말 대단하시다면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책의 내용을 전부 기억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교수님께서는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겠는가?”하고 반문하셨다.
“나는 이 역사를 외우려고 그 책을 열 번도 넘게 읽어 보았다네.”
하시고는,
“자네도 몇 번씩 읽으면 금세 머리에 남을 걸세.” 하고 말씀하셨다.
2. 두 번째 이야기 ―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에서 옮겨 적음
인도印度 본토인인 한 증인이 법정에서 그 자리에 참석한 어떤 법관도 당해
낼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증거심리로 법정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후에 알려진 일이지만 그가 가진 유일한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책인 <오르가논Organon>의 복사판이었다.
이 책이 그의 유일한 장서였기에 그것을 마스터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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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가논>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논문」들을 말하지요.
모두 6편으로 <범주론>, <명제론>, <변증론>, <소피스트적 논박>,
<분석론 전서>, <분석론 후서>로 되어 있는데 4편의 논문들은
이미 번역되어 출판됐고, 나머지 <분석론 전 ‧ 후서> 2편은 아직
미번역 상태인데 이 논문들도 그리스어 원전原典으로부터 번역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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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세 번째 이야기 ― 80년대에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던 김중배 선생이
쓴 수필에서 읽었던 내용(오래전 일이라 희미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중국 어느 나라의 한 재상(宰相: 총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관료가 국왕의 신뢰와 배려로 재상에 임명되어 정무政務를 보게 되었는데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남달라 마치 ‘물이 흐르듯이’ 하여서
국왕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고, 신하들로부터도 존경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나라의 안정은 곧 태평성대로 이어졌으며 백성들은 불편부당 없는 치국의
보살핌 속에 살아가게 되지요.
그리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재상은 노쇠하여졌고, 위중한 병에 걸려 앓다가
결국에는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가족들은 재상이 기거하던 방 안에
들어가서 그가 남긴 유품들을 정리하다가 경상(經床: 선비의 책상)의
서랍을 열어 보고는 모두들 깜짝 놀라게 되었지요.
“아니, 겨우 책 한 권뿐이라니! ........ ”
그 명재상이 늘 책을 읽고 글을 쓰던 경상의 서랍 안에는 단지 <논어論語>
한 권만이 반질반질하게 손때가 묻은 채로 간직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재상은 정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자신의 방에서 논어 한 권만을 읽고 또
‘되풀이 읽으면서’ 나랏일에 고심苦心했으며, 논어의 가르침대로 조정朝廷의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 일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처리했던 것이지요.
아무튼 책 한 권의 힘이, 되풀이해서 읽게 될 때 이토록 크다는 뜻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라틴어 격언에,
“책 한 권 가지고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cave ab homine unius libri.”
이 말은 ‘한 권의 책만을 읽은(는) 사람의 편향된 사고력’의 위험성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들립니다. 하지만 또 다른 라틴어 격언에서는
“많은 책은 정신을 산란케 한다.distrahit animum librorum multitudo.”
역시 실증적 체험이 담긴 이런 말도 있습니다.
조선의 선비들은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하였다는데, 이 말 안에는
분명히 <잡서雜書>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인데요,
현대는 갈수록 물적‧사상적 과잉시대이기 때문에 독서에서도 지나친
남독濫讀은 스스로 절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잘 선택한 좋은 책이나 명저를 늘 반복해서 읽는 것은 이것저것 많이
읽어서 어설프게 아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며, 또한 되풀이해서 읽는 게
저비용의 내실 있는 <책 읽기>가 되겠지요.
특히 번역서적은 가장 훌륭한 번역본을 찾는 수고로움이 필요합니다.
<국회 청문회>를 보면 유난히 발군의 실력으로 시선을 끄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바로 변호사 출신 의원들입니다. 좋은 답변을 원한다면
좋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그들은 ‘선택과 집중’으로 <법이론>을 통째로 암기하고 있기 때문에
사안의 본질을 이미 파악하고, 상대보다 우위의 입장에서 질문을 하고
논리적으로 따지고, 때로는 합리적으로 설득하며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잘 끌어낼 줄 아는 토론의 명수들입니다.
자녀의 <독서지도>에 고심하시는 분들, 또 남보다 뒤늦게 <책 읽기>에
맛들이신 분들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읽은 책을 여러 차례 다시
반복해서 읽는 것도 독서의 한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폭 넓은 독서를 하시다가 이 방법을 사용하실 수 있겠고 혹은
어느 한 해에 한 두 권의 도서만을 따로 정해놓고 몰입해 읽을 수도
있겠는데요,
너무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음식물들을 맛보게 되면
나중에 정작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드물지 않을까요?
아마 <책 읽기>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겠지요.
결국은 양이 아니라 질이고, 깊이 있는 ‘사유력’이 보다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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