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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는 제자’에게 ― 다산 정약용 선생의 말씀

| 조회수 : 7,081 | 추천수 : 0
작성일 : 2012-03-18 23:27:20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학實學을 집대성한 조선의 ‘르네상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관직 생활 18년에, 유배생활을 18년, 그리고 유배지에서 풀려나

고향에 돌아와서 다시 18년간 오로지 자신의 학문 완성에 힘쓰시다 돌아가셨지요.

1800년, 개혁 군주 정조 대왕께서 승하하시면서 ‘조선朝鮮’이라는 400여 년

묵은 큰 집은 이미 서까래부터 무너져 내리며 폐가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당시 조정에는, 현 정부 조직에서처럼 온갖 사욕을 추구하는 세력들에 의해

요직이 전횡되고 있었고 정약용 등 남인계南人系의 개혁적인 인재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국가보안법 위반혐의’의 공안 사범으로 몰려 대부분 멸문지화滅門之禍

되거나 귀양살이의 운명에 처해지게 되지요.

 

다산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실 때 황상(黃裳)이라는 15세

소년을 만나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은 선불교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제자가 준비하고 있을 때 스승이 나타날 것이다.” 라는 말

처럼 다산과 황상의 만남이 그러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리고 우둔한 제자가 자기 공부의 둔함을 호소하자, 스승은 ‘권학문勸學文’

을 손수 지어 황상을 격려하십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스승은 제자다운 제자를

만나고 싶어 하고, 제자는 눈 밝은 스승을 만나고 싶어 하지요.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다산의 지도와 황상 본인의 노력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후일, 마침내

공부의 ‘큰 뜻’을 이룬 걸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습니다.

 

 

~~~~~~~~~~~~~~~~~~~~~~~~~~~~~~~~~~~~~

 

 

◆ 《권학문勸學文》

 

『공부하는 자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너에게 해당되는 것이 하나도 없구나.

첫째, 외우기를 빨리하면(敏,민) 그 폐단은 소홀히 하게 되는 것이며

둘째, 글짓기를 빨리하면(銳,예) 그 폐단은 부실不實 하게 되는 것이요

셋째, 이해를 빨리하면(捷,첩) 그 폐단은 거칠게 되는 것이다.

무릇 둔하면서 파고드는 자는 그 구멍이 넓어지고,

막혔다가 소통이 되면 그 흐름이 툭 트이며,

미욱한 것을 닦아 내면 그 빛이 윤택하게 되는 법이다.

 

파들어 가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소통시키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부지런함이다.

닦아 내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 역시 부지런함이다.

이 ‘부지런함’을 어떻게 다할 수 있느냐?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방법으로서 외우고 글 짓고 이해하기를 빨리 하는 것이 장점이 아니라

폐단이 되며, 오히려 둔하고 막히고 미욱함을 극복하면 이것이 강점이 되며,

학문을 성취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특히 부지런히 노력할 것과 부지런히 할 수 있는 조건으로서 ‘마음가짐을 확고히

할 것’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전제로 제시하여 제자를 격려하고 이끌었다.

황상은 스승 정약용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부지런함三勤’의 가르침을 평생 간직

하였다....... 』

 

 

<원글>은 금장태 서울대 교수의 저서 《실천적 이론가 정약용》에서 옮겨 적음

 

 


​<사의재四宜齋>: 전남 강진읍 소재, 2007년 고증을 거쳐 원형대로 복원

 

다산 정약용 선생이 처음 강진에 유배되었을 때 동문 밖에 있던 주막집 노파의 주선

으로 이 집에서 1801년 겨울부터 1805년 겨울까지 만 4년을 머물렀다고 하는군요.

 

다산은 ‘네 가지(생각, 용모, 언어, 동작)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

의 <4의재: 四宜齋>라는 당호를 짓고,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제자들에게 교육을

베풀고, 저술에 힘썼다고 합니다.

 

 


​<사의재四宜齋> 내부: 정약용 선생이 기거하던 방

 

 


다산의 18년 유배지, 강진 <다산 초당>

 

 


다산과 교유했던 초의 선사(1786~1866) 작 <다산 초당> 전경: 원래는 초가집

 

 

부모를 통해서 이 세상에 오는 아기는 하늘로부터 받은 다양한 ‘지적 설계도’를

유전자 안에 간직한 채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아기가

‘공부머리’로 태어나지는 않습니다.

 

한 아이의 개성은 결국 ‘공동선’을 위한 것이고, 모든 자녀에게 공부머리를 요구

하는 것은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미래에 뜰 수 있는 전공을

찾아 주려고 하기보다는 잠재되어 있는 소질을 찾아 주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진정한 ‘자기’가 되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웃음조각*^^*
    '12.3.19 11:13 AM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에 대해선 잘 알지못하지만.. 얼마 전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다산 선생님의 지혜와 그 학문의 체계에 대해 털끝만큼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바람처럼님의 글도 눈에 잘 들어오네요^^

  • 바람처럼
    '12.3.19 7:14 PM

    웃음조각*^^* 님을 여기에서 뵙게 되니 객지에서 고향 벗을 만난 것 같아요. ^^
    자유게시판에는 ‘이미지’ 를 올릴 수가 없어서 자꾸 여기에 오게 되네요.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이란 책, 저도 시간이 되면 읽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

  • 2. 홍앙
    '12.3.21 9:17 AM

    그러지 않아도 학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아 몹시 마음이 우울한 나날인데 감사합니다. 다시 다잡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 바람처럼
    '12.3.21 7:39 PM

    공부를 하시다 보면 아시겠지만 역경계 시기가 있지요. 마치 배가 더 이상
    순항하지 못하고 맞바람을 만난 것처럼 제 자리에서 빙빙 돌 때처럼 말이죠.
    그런데 거기에는 그만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내려놓고 방황하고, 잘못 선택한 공부가 아닌가하는
    회의적이었던 때가 많았지요.

    살아가면서 흔들림 없는 ‘일심一心’ 을 유지한다는 것이 참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노력하는 가운데 시간이 흐르면, 다시 순경계의 ‘순풍’ 을 만나게 되는
    것이 또한 자연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올바른 일은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지요. ^^

  • 3. 쪽빛지중해
    '12.3.27 11:36 PM

    세상에~~이리 좋은글(그리고 사진)을 올려주시다니요!
    요즘 제가 처한 환경하고 똑 같아서 자주 읽어보게 될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빨리 외우고 쉽게 받아들여 이쁨을 듬뿍 받았던 큰아이가 그만큼 복습을 안하니 잊어 버리고
    느림보 거북이로 제 속을 태우던 작은 아이가 치고 올라오는데 무섭네요^^
    요즘 공부로 힘들어하는 큰아이에게 힘내라고 복사해서 보여 줄래요
    감사합니다 많이 많이 행복하세요~~ ^_____________________^

  • 바람처럼
    '12.3.28 9:00 PM

    쪽빛 지중해님,
    큰 아드님이 원래 머리는 뛰어난 듯한데 작은 아드님의 끈기를
    본받으면 되겠는데요.
    큰 아드님에게 ‘인백기천人百己千’ 정신도 가르쳐 주세요.
    ‘남이 백번하면 나는 천 번한다.’
    ‘다른 사람이 백번을 노력하면 나는 천 번을 노력한다.’ 라는
    뜻입니다.
    원글의 내용과 의미가 서로 통하지요. ^^

  • 4. 기쁜우리젊은날
    '12.5.19 5:44 PM

    정말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

  • 5. 해진맘
    '13.10.6 12:10 AM

    읽었습니다..

  • 6. 유키지
    '13.10.6 2:43 AM

    정말 좋은 글이네요
    정약용과 그 제자의 만남

  • 7. layesie
    '13.10.6 7:42 AM

    Saved

  • 8. 트리
    '13.10.6 8:56 AM

    공부못하는제자에게-정약용선생의글
    감사합니다 저장합니다~

  • 9. 코비
    '13.10.9 4:27 AM

    지금 제게 꼭 필요한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 10. 바다
    '13.10.9 8:09 AM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 11. 다잘되왔어
    '15.11.21 8:37 PM

    돼새기고 다시 읽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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