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관계는 1980년 ‘서울의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생이었던 유시민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고,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다. 두 사람은 학생운동에 투신하며 동지로 거듭났다. 유 전 이사장이 넉넉지 못한 사정에 혼수를 마련하기 어렵게 되자, 당시 이 수석부의장의 부인 김정옥씨가 손에 낀 반지를 유 전 이사장의 부인 한경혜씨에게 주라고 빼줬다는 일화도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80년 ‘서울의봄’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생이었던 유시민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고,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회장이었다. 두 사람은 학생운동에 투신하며 동지로 거듭났다. 유 전 이사장이 넉넉지 못한 사정에 혼수를 마련하기 어렵게 되자, 당시 이 수석부의장의 부인 김정옥씨가 손에 낀 반지를 유 전 이사장의 부인 한경혜씨에게 주라고 빼줬다는 일화도 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대단한 우정이네요
더 슬퍼 하셨군요 ㅜㅜ
많이 우시더라구요
사진보니 저도 눈물이...
저는 어릴 때 봤던 5공 청문회에서 보았던 이해찬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요.
저희 부모님과 연배가 비슷하셔서 더 슬프고...
한 시대가 저물어가는 기분이에요.
유시민님 소중한 분들을 떠나보내실 때마다 진심으로 아파하시는 것 같아요 ㅠㅠ
너무 많이 우시더라구요 ㅠㅠ
진정한 동지.
사
이해찬 총리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큰 기둥이셨습니다 ㅠㅠㅠ
반지 빼주며 신부에게 주라고 ㅠㅠ
눈물날만 하네요 ㅠㅠ
보답을 해야할텐데 보답할 길은 없네요,그저 열심히 응원하는 길밖에는
마음으로만 그저 그저 고맙다고만 끝없이 고맙다고만.....
인생과 숭고한 희생에 배워
다시는 독재와 폭력과 압제에 나를 우리를 버려두지않으려고
1203내란의 밤에 여의도의사당에 나갔습니다
머리수 하나만 보탠다는 심정으로요
그리고
폭력과 고문으로 사람이 죽는걸 볼 수없고
그런 하늘아래서는 하늘을 볼 수 없어서요
그래서
해찬옹의 고문후유증으로 떠는 손을 영상에서 뵐 때
안타깝고 감사했고 늘 가슴이 메여왔습니다
사람은 뭘까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건가를
그리고
행동해야하는가를요
과거가 살린 오늘의
우리는 나는 잘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른이해찬님을 따라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민으로 잘 살겠습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어른이해찬님
정치인의 죽음에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나..
너무 안타까워요...조금더 우리곁에 계시지 ㅜㅜ
김대중 노무현 이해찬을 보내며
마음이 뻥 뚫린 기분입니다
흔들리지 않고 잘 살아내야될텐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말 고문했던 놈들은 고문으로 형벌을 내려야함.
기사보니 눈물이 흐르네요
두분 비행기 에서 뵀는데 그때도 너무 피곤해 하시는 모습보고
가슴아팠었는데요
눈물 나더라구요 이해찬님 보좌관으로 유시민작가님이 정치시작하셨다더라구요 ㅠㅠ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두 분 인연이 남달랐군요.
유작가님 많이 슬퍼하시는 모습에.. 더 가슴 아프네요.
그들이 평생을 평생 싸워 이룬 전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가
뿌리 깊게 안착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 운동 해주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마음 편하게 일상을 살수 있는거죠
너무 고맙습니다
애도합니다
유튜브에서 하나씩 찾아보며 고인을 기리고 있는 중이에요.
결기가 남다르신 어른이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