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창한데, 제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좀 해보렵니다.
오늘 진실이란 놈이 나와 분탕치는 바람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제 모교는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학교입니다.
선배 중에 유명한 이를 꼽는다면, 음..... 박지만이랄까요? OTL.
학교배정을 받고서 신입생 소집날,
제 친구와 저는 현대계동 사옥 근처를 이리돌고 저리 돌아서 겨우 학교에 당도했더랬습니다.
계동사옥 옆길을 쭉 따라 올라가면 되는 거였는데,
대로변에 있었던 중학교와는 달라 한참을 헤맬 수 밖에......
첨 본 학교 풍광에 친구와 전 넋을 잃었죠.
고풍스러운 중세의 성을 방불케하는 학교 모습!
이런 멋진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는 희열에,
전 학교에서 나눠준 '인촌 김성수 전기'를 다 읽느라 밤을 새웠습니다.
동아일보사에서 편찬한 그 책을 읽고 전 인촌의 교육관과 항일정신(?)에 그만 매료되었죠.
학교를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인촌 김성수의 동상입니다.
동상 앞엔 이병도가 지었다는 비문이 검은 대리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민족의 태양으로 받드는 님,..... 굽어 살피소서 이 나라 이 겨레를.....'
전체 내용은 세월이 흘러 잊었지만, 위 글귀는 지금도 확연하게 기억합니다.
그리고 인촌 동상을 좌우에서 보위하며 서있는 두 개의 기념비.
하나는 3.1운동 책원비이고, 다른 건 6.10만세운동 기념비입니다.
3.1운동과 6.10 만세운동이 모교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리는 거죠.
와우, 반일투쟁에 있어서 커다란 두 흐름을 양 휘하에 거느리고 서있는
인촌 김성수의 거대한 동상!
전기를 읽고 매료된 저에게 인촌은 그야말로 대단한 항일투사로 여결질 수 밖에.....
다른 깨우침이 없었다면, 인촌은 여전히 저에겐 그 이미지 그대로였겠죠.
많은 선생님들 중 특히나 역사 선생님들의 강의는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거였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것이 교육이 문제라며 여러 인사들과 민중들이 십시일반으로 만든 학교를
인촌이 일제와 야합해 빼앗은 거며,
학도병 징집에 앞장섰던 인촌의 만행들 하며......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기가 막혔던 건........
제가 지금도 존경해마지 않는 한 선생님의 질문이었습니다.
'너희들에게 있어 3.1운동 책원비와 6.10만세 운동 기념비는 어떤 의미냐?'
.
.
.
.
.
.
저희들에게 두 기념비는 심하게 말해서 장난과 놀이의 대상이었습니다.
훌쩍 키큰 아이가 손만 들면 잡히는 높이의 그것들은
경외의 대상도 기념의 의미도 아닐수 밖에요.
광주일고를 나오셨던 그 선생님의 모교엔
하늘 우뚝 솟은 광주학생운동기념비가 서있답니다.
일제의 간악하고 서슬퍼런 탄압에도 항일의 깃발을 곧추 세웠던 그분들의 의지만큼이나 높은....
그러나 제 모교의 두 기념비는 더러운 친일반역자, 김성수 동상의 받침대 높이도
따라오르지 못할 정도로 초라하고 조그마한 미니어쳐 정도에 불과했죠.
2학년 때,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이후부터
제 시야에 김성수 동상과 두 기념비는 다르게 보였습니다.
가장 높았던 만큼 비둘기 똥으로 하얘진 그 동상 모습에 시원해 했죠.
졸업한 지 어언 20여 년이 훌쩍 지나갔지만, 아직도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졸업식에 이례적으로 김상만이 온다고 해서 대학생들이 하던 방식대로
상장수여식때 모두 뒤돌아서기가 실패했던 겁니다. 동을 뜨기로 했던 학생회장의 배신으로...
둘째는, 이병도가 헌정한 그 기념비를 박살내지 못한 겁니다.
뭐 학교의 전통이기도 했지요. 선생들의 감시때문에 단 한 번 이루어 질뻔 했다는데....
그 놈의 것이 화강암이라 깨지질 않더라네요.
아직도 김성수 동상은 두 역사적 기념비 보다 우뚝 솟아 있겠지요?
씁쓸한 3.1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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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친일파 청산
파란노트 조회수 : 224
작성일 : 2009-03-01 13:07:28
IP : 173.68.xxx.229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구름이
'09.3.1 1:18 PM (147.47.xxx.131)예... 친일의 무리들이 저 하나 잘 먹고 살자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해방후에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붙어서 마치 독립운동한 것 처럼 위장하고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원통한 민족사의 굴곡입니다.
이제라도 바로 잡으려 하는데 딴나라당이 가로 막고 나선거지요.
뉴또라이들은 자신들의 조상들이니 당연히 악을 쓰고 가로막기에 나선것이고요.2. 파란노트
'09.3.1 1:34 PM (173.68.xxx.229)참고로 제가 모교 모교하는 건,
더러운 설립자(사실 설립자도 아니지요, 강탈자가 맞겠지만)가 세운 유형의 그것이 아닙니다..
제마음의 모교는
저에게 올바른 역사관과 가치관을 심어주셨던
제가 존경해마지 않은 선생님들, 그 무형의 것입니다.
그 선생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들 떠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3. 내 아이에게
'09.3.2 1:22 AM (122.35.xxx.157)학교에 세워진 흉상 이야기 해줬더니 작은 아이는 아닐거라며 충격에 울더군요.
사실은 알려줘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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