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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환자의 유쾌한하루(펌)

스크랩 조회수 : 552
작성일 : 2008-09-09 14:29:44
이 글
오마이뉴스에서 유부연 님이 쓰신 글인데
어찌어찌 찾아읽다가 참,,감동적이라서 퍼왔습니다.


__


에그, 그 놈의 술.

지난 주 목요일 옥상에서 시원한 바람 쐬며 "자기야, 알았지? 술 조금만 줄이고 나 자다 깨지 않게 조금만 일찍 들어와 줘. 부탁해~"하고 예쁘게 말을 했건만 도대체 마누라 얘긴 어디로 들었기에 금요일 새벽이 되어도 안 들어오고 토요일, 일요일은 술독,일독 푸느라 종일 잠만 자는지.

월요일에 이비인후과 갔더니 성대 하나가 마비됐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는 "어휴~ 어쩌라고. 어쩌란 말이야"하고는 잠시 생각합니다. 이 놀라운 소식을 남편에게 알려야하나 말아야 하나. 얼마나 놀랄까. 눈물이 찔끔납니다. 그러다 용기를 내 전화를 걸기로 했습니다. 참부부가 되려면 아픔도 나누야 한다는 깨달음이 떠올랐거든요. 그날 남편은 일찍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화요일, 수요일도 남편은 술을 마셨습니다. 수요일 밤에 자다가 남편이 들어 오는 소리에 눈을 뜨니 열 한시 반입니다. 열 두시 전에 들어오느라 신경 좀 썼겠구나 생각하니 웃음이 납니다.

남편은 눕자마자 코를 골고 좁은 방에서 몸부림을 치며 잠을 잡니다. 아, 나는 또 잠을 도둑 맞았습니다. 남편이 미워집니다. 마음이 싸늘해지는 걸 느끼며 벌떡 일어나 책상 등을 켰습니다. 그리고 공책을 찾아 지금의 마음을 적기 시작했죠.

남편이 술을 마시고 오면 속이 상한다.
속이 상하는 이유는 남편이 술을 지나치게 많이 마신다는 생각, 과음은 건강에 나쁘다는 생각, 내 부탁을 무시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생각을 돌려 보자. 나는? 나는 남편보다 더 남편 속을 썩인다. 만날 아프니 이보다 더 속상한 일이 어디 있을까? 내가 속이 상하는 진짜 이유는 남편 때문이 아니고 내 문제 때문이다.

내가 내 문제를 제대로 볼 때까지 남편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계속 술을 마셔야 한다. 본래의 나는 남편이 술을 마셨을 때 화가 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사실 남편이 어떤 모습을 보여도 남편 본래 가치엔 변함이 없다.

마음을 돌린다는 건 많이 힘듭니다. 그래서 마음 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아니 마음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 화가 나고 속이 상해서 끙끙거릴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위에 적은 문구는 아예 명문화했습니다. 내용만 바뀔 뿐 형식은 늘 같습니다. 마음을 뻔한 틀에 채워넣는다는 걸 오랫동안 용납할 수 없었는데 아닌 밤 중에 뭐에 씌인 사람처럼 무심히 쓰고 있었습니다. 문득 경전을 사경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계속 써내려갔습니다.

나는 술을 자주 마시는 남편에게 화를 내는 나를 사랑한다.
이런 경험을 하는 내가 참 좋다.
나는 최고의 존재이다.
나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존경하고 사랑한다.
남편은 나에게 최고의 인연이다.
남편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며 최고로 여긴다.
남편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한다.
나와 남편은 최고로 만족한 삶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여기까지 쓰는 동안 어느새 가슴이 훈훈해져 있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요히 잠든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도 사랑스럽든지. 무릎으로 기어가 두 손으로 얼굴을 잡고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살풋 잠이 깨는지 얼굴을 찌푸립니다.

"자기야, 어쩜 이렇게 예쁘냐. 정말 예쁘다. 얌전히 잘거지? 발로 걷어차면 안돼. 나 잠 깨지 않게 얌전히 자야 해, 알았지?"

대꾸도 없는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남편은 마법에 걸린 듯 꼼짝도 하지 않고 아침까지 잠을 잤습니다.

어때요? 대단한 요술이죠?
IP : 211.181.xxx.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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