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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생크림요구르트 조회수 : 1,159
작성일 : 2005-01-08 14:24:09
마농님 글 읽다보니 저도 어렸을 때 살던 집이 그리워져서...^^
주절주절 적어 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는 저희 집 경제사정이 상당히 심란했습니다-.-;;
아빠는 일류대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 엘리트;이시기는 했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평사원 월급으로 처자식과 늙으신 부모님과 줄줄이 딸린 동생 먹여살려야 하는데...

아빠네 집은 정말 심각하게 가난했었나 봅니다.
엄마가 아빠랑 연애하던 시절에는 다 쓰러져가는 무허가주택이 아빠네 집이었답니다.
두 분 결혼하시고, 제가 태어난 뒤에도
집이 없어서 이리저리 이사다니며 서울시내 전전하기를 수차례...
마침내 제가 유치원에 들어가던 해 장만한 것이
경기도 팔당댐 근처 한 시골마을의 작은 집이었습니다.

마농님 사시던 집처럼 초가집은 아니고, 그래도 지붕은 기와였어요^^;;
집 주변에는 둥근 돌로 쌓아올린 돌담이 빙 둘러 있고...마당은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
집 옆에 작은 텃밭은 하나 있어서, 옥수수랑 푸성귀 몇 가지 키웠고...

하지만 나머지 부대시설(;)의 수준은 무척 흡사합니다.
창호지문, 아궁이, 대문에서 십여미터는 가야 나오는, 텃밭 구석의 널빤지 변소-.-;
전화 더운물 가스는 물론이고, 제 기억으로는 처음엔 수도물도 잘 안 나왔던 것 같아요.
아빠나 삼촌들이, 뒷마당에서 수동식 펌프로 열심히 물을 긷곤 했으니까...

방은 안방 외에 작은 방이 두 개 더 있었는데,
안방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기거하시고,
작은 방 하나에서는 엄마 아빠가 저희 남매 데리고 주무시고,
고모 삼촌들은...사실 어떻게 분배;;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고모 셋 삼촌 둘이었는데;;
아마 고모들은 할머니 방에서 자고 삼촌들은 제일 작은 방 쓰고..그러지 않았을지.

아, 그러고 보니 고모 삼촌들은 입주 가정교사로 종종 집을 떠나 있곤 했네요.
다행히 다들 공부는 잘 했는지...
돈이 없어서 고모들은 결국 대학 못갔지만요ㅠㅠ

그 무렵에 우리 엄마 그 열악한 환경에서 징하게 시집살이 하신 거,
우리 아빠 왕복 세시간 넘게 걸려서 서울로 출퇴근 하시던 거...생각하면 지금도 한숨이..;;

버트 그러나 부모님은 고생하셨지만
덕택에 저는 정말 사랑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어른들만 득시글거리는 집에 아가가 한 명 생겨났으니 얼마나 귀여움 독차지했겠어요.
곧 동생이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른 : 아이의 비율이 9 : 1에서 9 : 2로 늘어난 거 쯤이야^^;;
고모가 안아주고 삼촌이 업어주고 엄마가 놀아주고 아빠가 옛날얘기 해주고...

게다가 시골 마을, 어린아이가 놀기에 좀 좋나요.

봄에는 엄마랑 고모랑 산으로 나물 캐러 다니고,
여름에는 날마다 시냇물에서 수영하고,
가을에는 밤 도토리 주우러 다니고,
겨울에는 삼촌이 만들어 준 썰매 타고...
밭 일구고, 산딸기 따고, 올챙이 잡고, 우리집 처마 밑에서 태어난 새끼 제비들 구경하고...
그게 얼마나 축복받은 환경이었는지, 꽤 커서야 알게 되었지요.

거기서 2년 넘게 살다가,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빠가 해외지사로 발령받으셨죠.
그 시점에서 또 생활환경이 정말 극적으로 바뀌었지만...그 얘기까지 하면 너무 길고;;

지금은 정말 그런 집에서 살라고 해도 못 살 것 같지만^^a;
내 아이에게도 한번쯤은 그런 생활을 하게 해주고 싶다는 미련은 남습니다.
대지의 기운과 자연의 변화를 피부로 직접 느끼며 사는, 그런 생활을.

눈조차 오지 않는 2005년의 서울에서,
처마에 달린 고드름 따먹던, 1980년의 한 시골 마을을 추억해 봅니다...
IP : 218.145.xxx.220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혜진(띠깜)
    '05.1.8 2:37 PM (220.163.xxx.184)

    맞아요~~ 넘 행복한 어린 시절이셨던 님이 부럽심니다.
    그래서 제가 산청 중에서도 지리산 제일 촌 구석에 시집 안 갔심니까.
    우리 아이에게 시골이란 추억을 줄라고....^^

  • 2. 퐁퐁솟는샘
    '05.1.8 2:42 PM (61.99.xxx.125)

    아~~~~
    저도 국민학교적이 생각납니다
    봄에 고모들 나물뜯으러 갈때마다 꼭 끼어서 가고
    가서는 논의 물 고여있는곳에 홀랑 빠져서 감기걸리고...
    널빤지로 네모난 구멍있는 변소에 새로산 분홍 슬리퍼 빠뜨려서 엉엉울고...
    두달정도 지나서 인분 퍼낼때 그 슬리퍼가 팥죽색으로 변했더군요
    워낙 돈이 귀한 집안이라서 그걸 깨끗이 빨아주길래 신었는데
    그때는 더럽다는 생각을 크게 하지는 않았네요
    건져서 다시 신게 된것만 해도 고마워서리....ㅋㅋㅋ
    아이들에게 이 대목을 이야기하면
    그걸 더럽게 어떻게 신었느냐고 합니다
    아! 그리고 세수대야를 걸쳐놓는 세면대역할을 하는
    아주 굵은 철사로된것도 있었는데...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어서
    간신히 구한 까스명수병에 설탕물넣어서
    나뭇가지 꺽어다 손잡이할거 꽂아놓고 뒷마당 한구석에 놓으면
    맛있는 까스명수표아이스크림이 탄생했지요
    까스명수병이 터져서 그 유리조각을 떼어내서
    쪽쪽 빨아먹던 그 맛~~~~~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음식이었는데
    그때는 먹고살기 바빠서
    어른들 눈을 얼마든지 피할수 있었어요
    아~~~
    그립다 그시절~~~

  • 3. 둘리
    '05.1.8 4:22 PM (218.236.xxx.86)

    생끄림 요꾸루또님!!
    눈와요..^_^: 지금!!
    유후~

  • 4. 생크림요구르트
    '05.1.8 5:27 PM (218.145.xxx.165)

    앗 진짜네요...이런 민망할데가-.-;;;;
    (아직 퇴근도 못하고 있습니다ㅠㅠ)
    그래도 눈 오니 너무 좋네요*^o^* 왈왈왈~(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싶은 기분^^;;)

    김혜진님...지리산이라면 정말 시골생활의 진수를 누리셨겠군요^^;
    퐁퐁솟는샘님 팥죽색 슬리퍼ㅠㅠ 홈메이드(;;) 아이스크림 얘기 너무 재미있어요~

  • 5. 헤르미온느
    '05.1.9 1:53 AM (218.153.xxx.96)

    시골집의 추억, 넘 정겹네요...
    극적으로 바뀐 해외에서의 신기한 경험도 얘기해주세요...
    남미쪽으로 가서 혹시 집에 하녀가 한 7명쯤 되신건 아니셨는지...^^

  • 6. 마농
    '05.1.9 2:18 AM (61.84.xxx.24)

    시골은...정말 아이들에게는 천국같아요.
    마지막에 고드름 따먹던...그 구절이 왠지 마음이 찡..해요.
    전 도시에서 자랐지만..그래도 제가 어릴때 고드름 아직 기억나요.
    그거 끊어서 칼싸움하기도 했었는데..ㅎㅎ;;
    그건 그렇구...헤르님처럼 저도 궁금해요. 틈나실때 나머지 이야기도
    해주세요..^^

  • 7. 시골아낙
    '05.1.9 9:38 AM (59.29.xxx.170)

    지금도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아궁이에 불때고 처마에 달린 고드름으로 칼싸움하고 봄이면
    산으로 밭으로 나물띁으며 사는 시골아낙 여기있읍니다
    봄되면 우리집으로 모두들 나물 띁으러 오세요...
    아참! 근데 아쉬운게 요즘은 시골집에서도 제비둥지 보기 힘들어 졌담니다
    왤까요? 논에 약을 많이 치기땜에 그런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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