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뼈아픈 후회

| 조회수 : 1,647 | 추천수 : 3
작성일 : 2019-10-09 03:18:37

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에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밀려와 있고

뿌리채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 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음으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자청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고 걸어 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거다




처음 읽었을 때엔

무척이나 찔렸던 시


세월 지나 다시 읽으니

뼈아픈 후회는 없다


나를 위했던

너를 위했던

채웠던 시간이

애쓰던 사랑이라는 거


그걸로 올킬


그 누구를 위한 사랑은

그 누구도 위한 사랑이 아니었음을





* 사진 위는 시인의 시

* 사진 아래는 쑥언니 사설

* 사진은 사랑하는 계절을 떠나 보내는 우리 막내의 노숙자 스삐릿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너와나ㅡ
    '19.10.9 11:37 PM

    어디인가
    멋지네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 생각나네요.

  • 쑥과마눌
    '19.10.10 4:10 AM

    동네 공원이네요.
    나무도 실연한 소년의 맴을 알아 주는듯해요

  • 2. 행복나눔미소
    '19.10.10 11:53 PM


    실연이라니 ㅠ
    아픈만큼 성숙해질터인데
    소년에게 위로되는 말은 아니지요 ㅠㅠ

    건성으로 보다가
    숨은 그림 찾기 했네요 ㅎ

  • 쑥과마눌
    '19.10.11 1:33 AM

    계절에 실연당하는 건
    당연지사 ㅋ

  • 3. 피어나
    '19.10.11 10:48 AM

    소짜 아니고 막내라 쓰셔서 쑥과 마눌님 글 아닌 줄 알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 시를 읽으니 뭔가 뜨끔한 게 잘못 산 게 분명합니다 ㅠㅠ

  • 쑥과마눌
    '19.10.11 11:30 AM

    우리는 고작 인간
    나를 위한 사랑이라도..
    나를 위한 희생이라도..
    그게 어딘겨

    내 맴은 내가 알아 하니
    니 맴은 니가 알아 받아
    오고 가는 지옥 속에
    커져 가는 폐허만 어찌 남기고
    떠나면 그만인 것을...말입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20880 (수정) 반디 수술 후 적응기와 처음 밥 주는 곳 노랑 냥이 중.. 4 냥이 2019.10.16 1,275 0
20879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곳... 2 도도/道導 2019.10.14 1,559 0
20878 일본 지도 위에만 콩만하게 나온 빨간점 사진 올립니다 7 lavender 2019.10.13 1,890 0
20877 맥스 13 원원 2019.10.11 1,381 2
20876 도도냥이 참치캔에... 14 복남이네 2019.10.11 1,963 0
20875 사랑초로 무한 지지를... 8 복남이네 2019.10.10 959 0
20874 잔치국수 5 sue 2019.10.10 1,510 0
20873 82쿡이 기사에 났네요 27 rlawlgus 2019.10.10 2,931 0
20872 광화문 CCTV 2시55분 현장 모습 1 abcd 2019.10.09 7,555 0
20871 뼈아픈 후회 6 쑥과마눌 2019.10.09 1,647 3
20870 총선에서 개헌선을 돌파해야 되는지 잘 알려주는 글~! 이재은 2019.10.08 411 1
20869 서초동엔 못갔지만 5 merong 2019.10.08 1,013 4
20868 추장네 고양이들도 인사 13 추장 2019.10.08 1,841 3
20867 내친구 도도한 동네냥이.. 26 복남이네 2019.10.08 1,885 3
20866 여행 다녀왔습니다. 18 살림열공 2019.10.08 1,392 2
20865 다들 심장 조심하십시오 19 짜가사리 2019.10.08 2,330 3
20864 고양이 사진 올리고 싶어요 8 우리동네마법사 2019.10.07 1,184 0
20863 맥스 23 원원 2019.10.07 1,380 4
20862 저녁은 부대찌개 9 anabim 2019.10.07 1,250 6
20861 이것도 해봐요...검찰개혁 찬반투표 36 날개다친새 2019.10.07 2,499 0
20860 우리집 댕댕이 초롱이입니다~ 20 미네르바 2019.10.07 1,539 3
20859 댕댕이-태양도 올려봅니다. 20 테디베어 2019.10.07 1,440 2
20858 냥이 올려봐요 14 Junhee1234 2019.10.07 1,421 5
20857 모두 포인세티아 ?? 10 아미달라 2019.10.07 874 3
20856 변함없는 지지와 사랑을 ... 15 복남이네 2019.10.07 91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