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임신을 조절하기 위해 다양하고 기발한(때로는 아주 위험한) 방법들을 고안해 냈습니다. 현대적인 고무 콘돔이나 피임약이 발명되기 전, 과거 사람들은 주변의 자연물이나 경험적 지식을 활용해 피임을 시도했습니다.
1. 자연 유래 차단막과 살정제
현대의 콘돔이나 살정제와 비슷한 역할을 하도록 주변의 재료를 활용했습니다.
동물의 내장 (초기 형태의 콘돔): 고무가 발명되기 전, 중세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는 양, 돼지 등 동물의 맹장이나 장기, 생선 부레 등을 가공해 콘돔처럼 사용했습니다. 주로 매독 같은 성병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으며, 가격이 비싸 사용 후 깨끗이 씻어 재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악어의 똥과 꿀: 고대 이집트(기원전 1500년경)에서는 악어의 똥에 꿀이나 산성 우유를 섞어 반죽을 만든 뒤 여성의 질 속에 넣었습니다. 꿀의 끈적함이 정자의 이동을 막는 물리적 차단막 역할을 하고, 악어 똥의 산성 성분이 정자를 죽이는 살정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바다 해면(스펀지)과 식초: 고대 로마인들은 천연 바다 스펀지를 식초나 레몬즙에 적셔 질 내부에 삽입했습니다. 산성 환경이 정자의 활동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이를 활용한 것입니다.
2. 먹거나 마시는 피임약
실피움(Silphium):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피임용 식물입니다. 피임과 낙태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금보다 비싸게 거래되었고, 로마의 동전에 새겨질 정도로 인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너무 엄청났던 나머지 고대에 이미 완전히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수은과 납: 고대 중국 등 일부 지역에서는 수은이나 납 같은 중금속을 기름에 섞어 마셨습니다. 이는 신체를 극도로 병들게 하여 임신을 막는 데는 일정 부분 작용했을지 모르나, 심각한 중금속 중독으로 신부전, 뇌 손상, 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매우 치명적인 방법이었습니다.
3. 행동적 방법
질외사정: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피임법입니다. 기원전 고대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역사가 깊지만, 실패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수유기 무월경법: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하는 동안에는 호르몬 변화로 인해 배란이 억제되어 임신이 잘 되지 않는다는 자연적인 신체 반응을 이용해 아이들의 터울을 조절했습니다.
역사적 전환점: 우리가 아는 '현대적 의미의 고무 콘돔'은 1844년 찰스 굿이어(Charles Goodyear)가 온도 변화에도 고무가 녹거나 굳지 않게 만드는 고무 가황 처리 기술을 발명하면서 비로소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들의 번식조절
1. 착상 지연 (Embryonic Diapause)
가장 대표적이고 신비로운 생물학적 번식 조절 방법입니다. 암컷이 교미를 하여 수정란이 만들어졌더라도, 지금 당장 새끼를 키우기에 환경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수정란을 자궁벽에 착상시키는 것을 미룹니다.
해당 동물: 캥거루, 곰, 오소리, 노루 등
먹이가 부족하거나 날씨가 척박할 때, 또는 이미 젖을 먹이고 있는 새끼가 있을 때 수정란의 발달을 일시적으로 완전히 멈춥니다. 이후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발달을 시작해 새끼를 낳습니다.
2. 사회적 억제 (Social Suppression)
엄격한 무리 생활을 하는 일부 동물들은 서열에 따라 번식 권리가 철저하게 제한됩니다.
해당 동물: 미어캣, 늑대, 벌거숭이두더지쥐 등
무리의 최고 우두머리(알파) 암수 한 쌍만 번식을 독점합니다. 우두머리 암컷은 공격적인 행동으로 스트레스를 주거나 특정한 페로몬을 뿜어내어 다른 하위 서열 암컷들의 호르몬 분비와 배란 자체를 억제해 버립니다.
3. 브루스 효과 (Bruce Effect)
새로운 수컷이 기존 무리의 우두머리를 쫓아내고 집단을 장악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해당 동물: 쥐, 들쥐, 개코원숭이, 사자 등
임신 중인 암컷이 낯선 수컷(새로운 우두머리)의 냄새나 자극에 노출되면, 체내 호르몬 변화가 일어나 스스로 임신을 중단하고 유산을 유도합니다. 새로운 우두머리 수컷은 자신의 핏줄이 아닌 새끼를 죽이는(영아 살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암컷 입장에서는 헛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새로운 수컷의 새끼를 다시 갖기 위해 신체가 적응한 결과입니다.
4. 인간에 의한 동물 피임
물론 야생이 아닌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은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인간이 직접 피임을 해줍니다.
반려동물 및 길동물: 수의학적 목적과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중성화 수술(TNR 등)을 진행합니다.
동물원 동물: 한정된 공간에서의 과잉 번식과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호르몬 주사, 피임 임플란트 삽입, 먹이에 섞어 주는 동물 전용 경구 피임약 등을 적극적으로 사용합니다.
요약하자면, 동물들은 쾌락을 위해 교미를 하고 임신만 피하려는 의도적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독한 자연에서 새끼의 생존 확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신체적, 사회적인 방식으로 임신과 출산 타이밍을 아주 정교하게 조절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