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1970년대는 한반에 학생이 70명 정도 되었었다.
나무로 된 책상과 걸상, 바닥도 복도포함 다 나무로 되었었다. 실내화를 깜빡하고 안가지고 간 날이면 양말을 뚫고 가시가 박혔었다. 지금처럼 맨들맨들한 나무가 아니라 거친 나무였기에.
청소시간에는 다들 한줄로 무릎꿇고 앉아서 걸레질을 했다.
걸레와 함께 윤을 반질반질 낼수 있는 여러 도구들이 등장했었는데 양초, 들기름, 석필갈아놓은것 등등
그게 뭐라고 완벽하게 준비된 여자애들은 서로 자랑하며 부러워하곤 했다.
그시절 월요일 아침엔 비가 오지 않는 한 전교생이 반별로 줄을 서서 교장선생님 훈화말씀부터 그 달 월례고사에서 공부잘한애들 상받고, 마지막으로 교가를 2절까지 부르고 나서야 끝이났다.
신기하게도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교가는 외우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교가만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화장실이었다.
지금 애들보고 그 화장실 쓰라고 하면 아마 다들 도망갈 정도로 벽은 시커먼 시멘트고 바닥은 뚫린 .. 잘못해서 발이 빠지면 큰일이 나는 그런 화장실이었다. 게다가 더 문제는 남녀공용이라서 남자애들은 뒤돌아서서 오줌을 쌌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까지 민망한 일은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거시기 했었다.
화장실 문에는 늘 누가 누구 좋아한다. 누구랑 누가 사귄다.. 이런 말들이 써있었다.
73년 국민학교 입학하고 2학년 올라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근처 다른 국민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었다.
나는 못내 아쉬워했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애랑 같은 반이 되어서 좀 친해졌었는데 급하게 이사를 가게 되다니.. 그리고 별로 멀지도 않은데 왜 굳이 전학을 가야했는지 너무 속이 상했었다.
지금도 그 남자아이 이름이 생각나고 그 안타까움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걸 보니 첫사랑이었을까?
그렇게 억지로 전학간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은 우리 엄마의 선배셨다. 그래서 잘 챙겨주신다고 전교1등 하는 남자애 옆자리로 나를 앉혀주셨다.
근데 그 아이는 아주 못된놈이었다. 생긴건 양 볼따구에 호빵한개씩 단것처럼 빵빵하게 생긴놈이.. 날 너무 못살게 굴었다. 책상에 금을 그어 절대 못넘어오게 한다거나 (심지어 자기 자기를 더 넓게 그림) 내 지우개를 수업시간에 계속 연필로 가운데를 돌려서 빵꾸를 내어놓는다거나 하는 진상짓을 하는 놈. 진짜... 재수없었다.
그당시 여자애들이 짓궂게 구는 남학생들에게 쫒아가서 꼬집는게 유행이었다.(하하하 유치하다.)
그래서 복도에서 막 뛰어다니며 남자애들을 쫒아다녔는데 도망다니다가 잡혀 꼬집힌 남자애들도 궂이 꼬집는 여자애들도 사실 즐기고 있었다. 관심이 없으면 그러지도 않으니까.
하여간 내 짝궁시키도 얄미운짓을 너무 많이해서 내가 몇번 꼬집은 적이 있다. 그시키도 꼬집히면서 웃었단 말이지...
그러던 어느날 ... 와 난 지금도 생각난다. 그 초록색 비단 한복
그렇다. 그시키 엄마였다. 그 초록색 비단 한복을 입은 짜리몽땅한 아줌마가 와서는
"우리 아들 맨날 꼬집는 애가 너니? 너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히 안둔다!" 이러면서 호통을 치고 가셨다.
나는 민망함에 엎드려서 아무말도 못했다.
아마 그 이후로 이시키는 엄청 내 눈치를 보았고 나는 학년이 끝날때까지 거의 한마디도 안했던것 같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서울대 나와서 교수가 되었다나 어쨌다나...
잊어버리고 싶어도 그시키 이름은 안잊혀진다.
모르겠다. 요즘은 자꾸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일본 애니매이션 중 추억은 방울방울 이라는 게 있는데 딱 나 학교다닐때의 모습이다.
딸셋인 그집 풍경도 우리집과 너무 흡사해 가끔 추억에 젖어 보곤한다.
그리운 밤이다. 자꾸 옛날 생각만 하니 더 늙은 느낌이 들지만 뭐 어쩌겠나.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