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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1년, 계엄의 그날 기억

지수 조회수 : 407
작성일 : 2025-12-04 16:51:20

집에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갑자기 카카오톡 단체방이 요란했어요. 대개 다른 단체방은 무시하는데, 평소에 절대 시끄럽지 않은 '절친단체방'에 뜨는 톡이 마음에 걸렸어요.

 

"계엄이랜다 미친"

 

무슨소린가 했습니다. 얘네가 평화로운 밤에 뭘 잘못먹었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뭔 헛소리야…

지하철 풍경도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고, 동요하거나 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들의 톡이 아무래도 이상한거예요. 그래서 크롬을 켜서 하던대로 연합뉴스를 접속해봤어요.

 

[속보]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발령

 

"아, 언론사도 실수를 하는구나" 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금은 2025년입니다. 이제 중년 소리 듣고 성인 딸을 두고 있는 저로서도, 계엄은 사회시간에 선생님한테 배웠고 TV드라마와 영화에서나 본거지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제 귀로 직접 들은 적은 기억에 없다구요.

 

그리고 MBC와 KBS 홈페이지를 차례로 들어가봐도 다 똑같았어요.

"아, 언론사들이 또 단체로 실수하는구나" 이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 언론사들이 하나가 오보내면 다들 서로 베끼다가 다같이 실수한 후 아무도 책임 안 지는거 어디 한두번 봤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크롬 검색창에 쳤어요. 'CNN.com'이라구요.

 

"South Korea president declared emergency martial law"

(남한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발령했다)

 

설마 하고 'Guardian.co.uk'라고 쳐봤는데 결과는 똑같았어요. 심지어 두 사이트 다 가장 첫페이지 윗단에 크게 박혀있었어요.

 

이제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현실을요. 지금 집으로 가고 있는 이 지하철이 아무 이상 없이 움직이고 있는게 신기하더라구요. 이정도 공포는 어렸을 때 중국과 북한의 전투기가 한국영공 넘어와 귀순하는바람에 공습경보 발령됐던 그때 이후로 처음이었어요.

 

집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앉아 아이패드 붙들고 있던 딸의 양 어깨를 붙잡았어요. 

 

"네 마음은 알아. 그렇지만 절대 나가면 안돼. 나한테 비겁하다고 하든말든, 나한테는 니가 제일 중요해. 절대로 나가지마"

 

딸은 그냥 눈알만 굴리면서 '이사람 왜이러지?' 하는 표정이더라구요.

 

"도대체 왜그래?"

"너 정말 모르는구나?"

"뭘?"

"정말로 모르는거지?"

 

의아하게 날 쳐다보는 딸에게 또박또박 말했죠.

 

"윤석열 대통령께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셨다"

"뭐?"

 

믿지 않으며 "뻥이지?"라고 하는 딸에게 "나도 뻥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야"라고 답하고, TV를 틀었어요. 집에 들어오면 딸이나 나나 늘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붙들고 있기에 언제 켰는지 기억도 안나던 TV를 틀었어요.

 

뉴스특보는 계속 흘러나왔어요.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표에 이어 계엄포고령이 발표되고 '박완수 계엄사령관'이란 말이 연이어 나왔습니다. 경찰이 외곽을 포위한 국회로 중무장한 한국최고 정예 특수부대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있었구요.

 

"방송도 언제 끊길지 몰라. 넌 절대 나서서는 안돼. 넌 계엄이 뭔지 몰라. 네가 지금까지 알고 살아왔던 '인권이 보장되는 선진국 대한민국'은 이제 없어"

 

딸은 아무 말도 없이 그냥 TV를 보고 있었어요. 저는 제가 하는 말이 역사에 부끄럽다는 것 알지만, 그렇게 말했어요.

 

저는 그때 이제 대한민국은 독재정권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했어요. 계엄정국은 거스를 수 없을 것이고, 정치인과 반대운동가들은 모두 연행되고 투옥될 것이고, 권력기관과 행정기관 언론기관 등등 순식간에 군에 접수될 것이며, 광주에서 몇천명 죽었으니 이번에는 서울과 전국에서 한 만명 정도 죽겠구나… 국회에 병력이 투입되는 순간 본회의장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며 "이제 본회의장 점거되고 의원 10명 정도 현장사살하는거 보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이제 모두가 알죠. 제 예상은 판타지에 가까운 거였고 계엄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던 역사를요.

 

그 뒤로 1년이 지나갔네요. 딸은 그 뒤로 자기가 애지중지하며 종이박스 밖으로는 꺼내지도 않던 응원봉 들고 여러 차례 현장을 지켰구요, 저는 일상을 계속해왔어요. 

 

아침에 TV를 보던 딸이 "와 벌써 1년이야?"라고 하고는 서둘러 학교로 나갔어요. 시험기간이라 어제도 밤샘하고 집에 와서 씻고 갈아입고 물건만 챙겨서 다시 나가는 딸에게 언제나처럼 "뭐 더 챙겨줘?"-"아니" 이런 대화를 하는데, 갑자기 1년 전이 생각났어요. 여의도에 나간다는 딸에게 "뭐 더 챙겨줘?"-"아니" 이랬던 대화가 떠올랐어요.

 

계엄 이후 1년, 제가 한 일이라고는 아는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내 의지와 판단에 따라 투표를 했던 '생활정치'밖에는 없어요. 여전히 마음에 남아요. 다들 모여서 의견을 분출하던 그 현장에 한 번도 안 나가보고, 딸에게도 철저히 '외면하라'고 했던 나는 역사에 부끄러운 일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요.

 

그날 여의도로 바로 나갔던 한 젊은 사람이 제게 이야기해준게 기억나요. 그날 여의도에서 나이드신 분들이 그랬대요. "군대가 오면 맨 앞은 죽는다. 우리는 살만큼 살았으니 우리가 앞에 서겠다. 젊은이들은 뒤로 가라"라고. 세상에는 그런 분들도 있었더라구요.

 

그래도 나와 달리, 딸은 참 바르게 자라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요.

IP : 49.1.xxx.189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ㅇㅇㅇ
    '25.12.4 6:23 PM (222.112.xxx.101)

    1년을 도둑맞은거 같아요.

    잠을 설치고
    아침에 눈을 뜨면
    마음 졸이면서 82에 들어오고..
    안도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1년이 지나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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