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쯤 회사가 외곽쪽에 사옥을 짓고
이전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자차 출퇴근과 함께
산 아래 사옥에서의 생활이 시작됐지요
사옥 뒤와 옆은 바로 산.
그리고 사옥 옆엔 회사 소유의 풀밭.
(나중에서야 그곳이 한때 밭이었다는 걸 알았죠)
올 봄까지는 그쪽은 아예 관심도 두질 않았어요
그냥 풀과 나무로 뒤덮힌 공간이라...
봄이 오니
켜켜이 쌓인 마른 풀과 줄기들 틈을 비집고
갖가지 새순들이 솟아나기 시작했어요
한때 무성하게 풀로 뒤덮히고 자라서 들어갈 수 없던 공간이
겨울동안 내린 눈에 풀과 줄기들이 얼고 녹고 삭아서 다시 거름이 되고
드나들 수 있게 되었어요
시골 출신이고
어렸을때부터 산과 들을 누비고 다니는 걸 좋아했던 터라
봄이 오자 저는 또 점심 시간마다 사부작 사부작
그 방치된 공간을 탐험하기 시작했어요
사옥 짓고 이사하기 전부터 저희 회사 공장이 있던 터라
이쪽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좀 있었는데
이 방치된 곳을 드나들거나 관심있어 하는 사람은
없었더라고요.
아..봄에 두릅이 필때만 두릅 따러 직원 한분이 왔다갔다 할뿐
그 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나 봐요.
올 봄
그 방치된 산 아래 공간에서
저는 망초대를 열심히 뜯어서 삶아 말려놨고
사이 사이 다른 직원들과 두릅도 따서 먹었어요
다른 직원들은 두릅 딸 때만 갔다 왔다 할뿐
두릅 철이 다 지나자 더이상 가질 않았죠
저는 두릅을 따고
망초 나물을 따서 잘 말려뒀고 ( 겨울에 나물로 잘 먹어요)
그렇게 오가면서 보니
아주 예전에 밭으로 경작할때 심어진 들깨 씨가
뜨문 뜨문 자연스레 나고 자라고 있어서
조금 자란 모종을 캐다 한쪽에 심어두고 깻잎만 두어번 따서 먹었어요.
늦봄쯤엔
풀이 조금 자란 사이로 도라지 몇개가 또 여기저기 자라났길래
순 따서 다른 나물과 나물 밥을 해먹었고
몇개 캐서 도라지 무침을 해먹었드랬죠
어느날은 일반적인 풀로 보이지 않는 풀이 한쪽에 군락처럼 자라있길래
발로 쓰윽 쓸어보니 허브 향 같은 향이 퍼지는거에요~
검색해보니 '박하'였어요
한동안 싱싱한 박하를 뜯어 박하차를 마셨고
박하잎도 잘 말려 두었어요
두릅을 따며 오갈때보니
두릅나무 아래쪽에 머위가 조금 자라고 있고
또 머위 주변으로는 돌미나리가 자라고 있더라고요.ㅎㅎ
머위 뜯어 머위쌈을 해먹었고
돌미나리는 미나리전을 해먹었더랬어요.
도시 출생인 직원들은 그런게 눈에 보이지 않고
또 관심도 없었고
저는 그런게 눈에 너무 잘 보이고 좋아했고요.
밭이었던 곳 주변엔 나무도 두세그루 있었는데
봄이 되어 꽃이 피니
나무 하나는 개복숭아
나무 하나는 돌배
나무 하나는 매실...
어찌 그리 종류별로 한그루씩 있는지
꽃이 피고 지는 봄과 늦봄까지는
이곳을 드나들 수 있었어도
한창 과실이 맺고 수확할 시기에는
엄청나게 자란 풀과 나무들 때문에
접근할 수 없어서 열매를 따진 못했지만
멀리서 보면 그래도 열매가 맺혀 있는게 보이긴 했어요.
재미있게도 그 나무들 사이에 두릅나무도 있었고
그 두릅나무 사이에는 또 일반 줄기는 아닌
덩쿨 줄기 같은게 초봄에 순이 쑥쑥 자라고 올라오길래
검색해서 찾아보니 '키위'였어요.
이 키위 줄기 두세개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걸까?
참 신기했는데 새가 키위먹고 싼 ㄸ에서 발아해서 자랐거나
사람이 먹고 버린 씨에서 자랐거나 둘 중 하나겠죠??
키위 줄기가 쑥쑥 자라났지만 이또한 열매를 맺었는지
어땠는지는 알수가 없었어요.
접근할 수 없는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죠
밭 주변에 밤나무가 있는데
올 가을은 이곳에서 밤을 제법 주웠어요
올해 열매가 풍작인가 봐요
밤나무 주변엔 으름덩굴이 무성하게 있는데
으름도 몇개 열렸지만 패스~
또 산아래 주변으로 다래 덩쿨이 제법 있는데
세상에나 다래가 엄청 열렸더라고요
주렁주렁 열렸는데 다래 덩쿨은 워낙 높게 자라고 뻗어서
어찌 어찌 겨우 딴게 스무개 정도.
후숙해서 먹으니 너무 맛있었어요
그리고 오늘
키위가 궁금해서 오랫만에 밭이었던 그 곳을
다시 가봤어요
여름내내 무성하고 접근하기 어려웠던 풀도
다 뉘어져서 다닐 수 있겠더라고요.
장화신고 우산으로 바닥 쳐가면서
키위덩굴이 있던 곳으로 가보니
키위 덩굴이 아주 튼실하게 잘 자라 있었는데
잎은 서리에 말라 버렸고
열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열매가 맺지 않은건지, 맺혔지만 없는건지 궁금해요.
그러고서 그냥 되돌아 가려는데
아! 봄에는 눈에 뜨지 않던 대추나무가 바로 뒤에 있었어요
봄에도 그 자리에 있던 나무긴 했는데
대추 나무일 줄은 몰랐어요
옆으로 누워 자라서 하늘로 뻗은 모양으로 자라있는데
옆으로 누워진 나무 기둥은 푸른 이끼가 가득.
많은 열매는 이미 땅으로 다 떨어졌고
떨어진 땅은 물이 촉촉한 습지 같은 형태.
나무에 달려있는 대추가 좀 있길래
두줌 따가지고 와서 나눠 먹었어요
잘익어 맛있더라고요.
산아래 작다면 작은 이 공간에
두릅, 망초(이건 흔한 풀이니..), 박하, 도라지, 들깨
개복숭아, 돌배, 매실, 대추, 밤, 으름, 다래...
진짜 비밀의 숲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