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어렸을 때부터 손글씨 잘 쓰기로 유명했어요. 학교에서 경필대회 있으면 1등은 늘 제 차지였고 일기장 검사하면 선생님이 애들한테 제 일기장을 돌려서 읽게 하셨어요. 좀 보고 배우라고요. 친정 아버지도 남자치고 글씨 예쁘게 잘 쓰셨고 외가쪽은 2대에 걸친 명필 서예가 집안이라 국립미술관에서 전시회도 몇번 하실 정도였어요. 그래서 전 글씨 부심이 있고 사람을 볼 때 글씨도 꼭 보는데요.
언제부턴가 아마 50쯤 되면서 부터? 예전같이 글씨를 못 쓰겠는 거예요. 요즘은 손 글씨 쓸일이 없으니까 안 써 버릇 해서 더 못 쓰게 되나 싶기도 하고요. 노안이 일찍와서 눈도 침침하고 몸 컨디션 안 좋으면 손도 떨리고요. 양가 어르신들께 연말에 손글씨로 연하장은 꼭 보내드리는데 사촌오빠가 고모댁에 갔다가 제 카드를 봤다고 전화 왔더라고요. 건강이 안 좋냐고, 네 글씨가 예전만 못하다고 고모랑 다 보면서 제 걱정을 했대요. 제가 몇 년 전에 손가락을 다쳐서 수술한 적이 있어서 그 후로 글씨는 잘 쓰지도 않고 쉽게 못 쓰겠다고 그랬는데요. 며칠전 건강 관련 유튜브 비디오 보는데 글씨가 달라지면 뇌 질환 가능성을 의심해 보라네요.
그러고보니 외할아버지가 저한테 써주신 펜글씨 편지 액자 해놓은 걸 들여다 보니 88세에 쓰셨다고 되어 있는데 쌀알만한 글자들을 어쩜 그렇게 똑바로 줄 맞춰 쓰셨는지, 그야말로 예술작품이더라고요. 저는 이제 50인데 손이 떨려서 글씨를 단정하게 못쓰게 되니, 정상적인 노화가 아닌가요. 무슨 검사를 받아봐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