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인생 최대 숙제는 남편이에요.
가장 큰 문제는 경제력이 없다는 건데 연애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 만난 이후 돈 걱정을 안 해본 적이 없어요.
제가 여기서 세세히 쓴다한들 어차피 실제 사람과 글로 옮기는 것 사이에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어서 자세히 쓰고 싶지는 않아요.
결혼할 때 시어머니가 나는 니가 왜 내 아들과 결혼하려는지 모르겠다. 니가 좀 모자란 애 아닌가 싶다고 하시고
저희 엄마한테도 그집 딸이 너무 아까우니 결혼 시키지 말자고 말씀하셨대요.
시어머니가 일찍 홀로 되시고 혼자 자식들 뒷바라지 하느라 돈이 제일 귀하고 아쉬운 생을 살아서 그런 면이 커요.
남편 인성은 좋아요.
저희 부모님, 제 친구들도 니 남편은 돈은 못 벌지만 사람은 괜찮다고들 말하니까요.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할 뿐.
특별한 일 없이 학교를 안 가서 졸업을 못했고
갈 데가 없으니 월급 쥐꼬리만한 작은 회사만 겨우 들어갔고
아는 사람이 시작한 작은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그 회사 망해서 백수된 적도 여러 번이고
결국 웬일로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일한다 싶어 좋아했던 회사도 그만두고 자기 사업 차리더니 쫄딱 망했어요.
결혼 전에는 백수이거나 월급을 뻑하면 못 받는 회사를 다녔고 결혼 후에도 5년은 쌩백수로 지냈고요.
그냥 돈 많은 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지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재미있다, 성격 좋다, 매력있다 소리 들으면서 잘 살았을 것을.
근데 이건 저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도 생활력 없고 무능해요.
해서 다 남편탓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근데 살다보니 너무너무 속이 터지고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요.
내가 언제 돈 많은 남자 바란 적이 있나.
그냥 평범하게 월 200만 꾸준히 벌어오기만 해도 만족하고 살텐데
어쩌다 내가 이 나이에 집도 없고 통장에 10만원 여윳돈도 없고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 됐나.
저는 큰 돈은 아니어도 정말 대학4학년부터 쉬지 않고 돈을 벌었어요.
20년 전부터는 하루도 못 쉬고 일을 했는데 이제 그 일도 못하게 됐고 제 경력은 휴지조각이 되어 어디 쓸모가 없네요.
당장 다음달 살기가 막막합니다.
부자 팔자는 아니지만 남편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가난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하루하루 너무 깜깜해서 기가 막혀요.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저라고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고지식하고 성실할 뿐 안정적인 직업도 못 잡았고 경제관념도 희박하고 야무지지 못한 성격이다보니 저도 참 남 보기엔 답답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결국 원망이 저한테 향해요.
남편이 너무 원망스럽고 밉다가도 이게 다 내가 못나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거다 자학하고 자책하다 심한 우울증 온 적도 있고요.
남편이 돈을 벌든 못벌든 집안일의 90%를 제가 하는 것도 억울해죽겠는데
적반하장으로 하루 설거지 한 번 하고 요리 한 번 하는 걸로 그렇게 억울하대요 ㅎㅎㅎ
그럼 저는 또 울화가 치밀어요.
저는 싸울 때도 물러터졌고 미운마음도 오래 안 가고 화도 그렇게 길게 안 나고 집요하지도 않아서
말싸움에 능한 남편과 붙으면 늘 져요.
웃긴 건 둘이 정서적인 교감은 아주 좋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껏 남들 같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했고 시작했어도 열번은 때려치웠을 관계를 하하호호 속없는 사람처럼 유지해왔네요.
그만큼 같이 노는 게 행복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남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남편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외로운 감정이 든 적이 없어요.
다른 인간관계가 딱히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늘 이 원수랑 헤어져야 내가 제대로 살텐데 하다가도
남편 만나기 전의 삶, 너무 오래전이라 기억도 안 나지만, 그 때 나는 늘 우울하고 외로웠지 생각하며 고개 절레절레 흔드는데
최근 둘이 좀 마음이 많이 상할 일이 있었어요.
그 일 이후로 저는 좀처럼 마음이 돌아서지 않아서 남편에게 서먹하게 굴고 있었고
남편은 잘 지내보려고 애쓰다 지쳐서 나가떨어졌어요.
남편의 장점은 다정함, 배려심, 아무리 속이 상해도 싸움 끝! 선언하면 그 때부턴 깔끔하게 잘 지내는 것, 아무리 직장에서 짤리고 사업이 망하고 돈이 없어도 힘든 내색은 잠깐만 하고 유쾌하고 명랑하게 잘 지내려고 애쓰는 것이에요.
저한테는 없는 것이죠.
전 싸우고 화해해도 일단 내가 졌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결국은 남편 뜻대로 가는구나라는 패배감 때문에 상황 종료 후에도 앙금이 남아있어요. 정말 좋지 않은, 찌질한 태도라는 걸 아는데 화가 쌓여 있으니 쉽게 해소가 안 되네요.
그간 30년 가까이 함께 하면서 헤어진 적도 있고 정말 심하게 싸운 적도 많지만
이번엔 좀 힘들어요.
저 인간만 없으면 내가 좀 덜 고달플까 싶다가도
없었을 때 내 삶이 뭐 좋았던가, 헤어진다고 더 좋아질 것도 하나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면 관계가 어그러지는 게 무섭습니다.
이번에 남편이 저한테 심한 말을 했는데 그게 너무 상처가 돼서 제가 마음이 좀 오래 굳어 있었어요.
남편은 이후 잘 해보려고 정말 노력했는데 제 마음이 열리지 않자 자기도 단단히 마음을 닫았고요.
그냥 지금은 멍합니다.
이러다 관계가 점점 더 악화돼서 최악으로 가게 될까.
그럼 나는 제대로 살 수 있을까.
다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덮으면 그냥 살아질까 그게 맞나.
오만 생각이 다 드는데 울고 싶지만 눈물도 안 나고 심장이 딱딱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아요.
가끔 이혼하신 분들 생각을 합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심각하고 괴로우면 이혼을 하게 되는 건가.
저는 헤어지고 싶다 헤어지는 것만이 답이다 하다가도
막상 그게 가시화될 것 같으면 덜컥 겁부터 나거든요.
너무너무 무섭거든요.
오늘도 저 자신을 말도 못하게 한심해하며 자책으로 마무리합니다.
제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도통 모르겠어요.
이렇게 못났을 수가 없어요.
이 글은 아무래도 지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