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kbs 드라마시티에서 첩이 들어와도
딸이나 본처가 찍소리 못하고
무도에서 길이 자신은 할머니가 두명이라니까
그땐 그런게 흔했다면서 박명수가 나름 쉴드친거 보니까
진짜로 흔했나요?
보니까 1930년대생 까지는 있었고 이후는 거의 없던거 같은데
예전 kbs 드라마시티에서 첩이 들어와도
딸이나 본처가 찍소리 못하고
무도에서 길이 자신은 할머니가 두명이라니까
그땐 그런게 흔했다면서 박명수가 나름 쉴드친거 보니까
진짜로 흔했나요?
보니까 1930년대생 까지는 있었고 이후는 거의 없던거 같은데
아는 분이
아버지가 본처 있는데
엄마랑 아이를 몇을 뒀다구
60이 넘으신분
그때는 흔했나봐요
능력도 좋다
유치원 나왔데요
아들 낳아 대를 이어야 하는게 최대 과제라
못낳으면 첩을 들였잖아요.
삼성가도 현대가도 첩이 있었잖아요.
아들 낳을려고 시골에는 본처 첩 같은집에서 사신분들도 있던데요
아들만 3명인데 줄줄이 첩들인 할아버지 어쩔
심지어 할머니가 본처인데 첩하고 사셨네요
삼성가도 현대가도 롯데도 첩이 있었잖아요.
아들 낳을려고 시골에는 본처 첩 같은집에서 사신분들도 있던데요
옛날에도 흔하진 않았죠
첩 들이는 사람만 들인 거
옛날에도 흔하진 않았죠
첩 들이는 사람만 들인 거
그게 흔했으면 국민의 많은 수가 첩 자식이란 건데요
남편권력과 비례하는 듯요
흔했어요 이웃 중에 첩 둔 집 종종 있었어요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첩자식도 많아요
서울이랑 약간 가까운 지방 사람인데
80년대 후반생인데 작은 학교에 첩 딸 2명있었어요
제가 아는 것만 해도요
돈 잘벌고 권력있는 남자는 지금도 자기 맘대로 살아요
일부일처제는 평범한 남자들 불만 없으라고 해둔 거고....
30호 되는집 첩 둔집 2집. 우리집포함. 우리엄마한테 주변 아낙들 대놓고 남편간수를 어찌했냐고 타박하고 무시했고 아버지란 인간은 대우받았어요. 인물이 좋은데 여자가 어떻게 가만두냐고. 아버지 작고했고 엄마 90세. 저 70년생이예요.
종종있었고 그때 시골 여성인권은 그냥 남편 종이었어요.
왜 서울이랑 가깝냐고 했느냐 하면 둘 다 아버지는 서울에 계시다고 들었어요 한 명은 나름 유명 회사 간부
우리 외할아버지는 돈 있고 지위가 있으니 세집살림 했어요. 자식은 딱 본처한테만 뒀고요. 할아버지 형제들이 돈 더 얻으려고 계모할머니들 편 갈라서 붙고 했어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생들도 있었어요. 후처가 혼외자 애낳고 본처 내쫒고 살다가 후처가 도망가서 본처가 키우는데 구박이 대단했어요. 그때도 제정신인 여자들은 바람 피거나 절대 유부남 첩 안해요. 지능이 떨어지거나 정신적으로 문제 있는 여자들이 그런거죠. 제정신이면 본인 자식을 혼외자 만드나요. 남자건 여자건 윤리적 의식이 없는 사람이 그런거예요.
왜 그럴수밖에 없었는지, 생각해보세요 지금이랑 다르죠
여자들이 경제적으로 독립해 살 능력이 있거나 사회적 환경이 아니고
특히 4,50년대 전쟁으로 결혼할 남자들 수는 적어지고
먹고살려면, 거둬줄 남자 밑으로 첩으로라도 들어가 사는게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는ㅠㅠ
80년대 후반 생인데 이혼한 50대 아저씨랑 결혼해서 애도 낳고 서로 애정표현하면서 사는 사람도 봤어요. 첩은 아니지만 능력있으면 20대랑 삼혼 사혼도 하더라고요....... 솔직히 같이 어울리기 찌푸려지지만 남편 지위가 있으니 아무도 뭐라고 못함.
지방 지주셨던 할아버지가 외아들을 병으로 잃으시고는
큰딸이 소개시켜 주신 분을 후처로 들여서 아들 낳으셨어요
안채가 ㅁ자여서 본처 후처 방 하나씩 차지하고 같이 잘 지내셨대요
40후반 남편의 할아버지 부인 2명이라하니 그 시절 그러고 살았나봐요.
우리과에 재벌 써드 딸이 있었어요.
그 엄마가 1940년대생으로 기억해요
70년대 엄마친구 첩이 둘 있었는데요
그중 1명은 점잖고 참 괜츈해서 첩하기 아깝다는 소리를 많이들 했데요
(공장 다니다 사장놈에게 걸려서 첩 됐데요)
그래서인지 그 첩딸이 전교 1등 죽 하더니 명문 국립대 가서 중등 교사 됐다 하더군요
그런데 본처 딸은 지지리도 공부 못해 전문대
엄마 지능을 닮는지 알수 없네요
공부 잘 한다고 엄청 부러워 해 항상 맘이 안 편했어요
저의 아버지는 당시 4년제 대학 교수였는데. 공부는 겨우 중간정도 헸네요
요즘도 있잖아요.
옛날엔...그러니까 내가 60줄인데 나의 할아버지 세대엔 더러 있었고
(나의 할아버지도 첩을 두셨는데 우리 할머니 본처에선 아들 둘, 첩한텐 아들 다섯. 첩이 죽을 때까지 첩하고 사심. 첩 저세상 가고 큰아들네에 합가해서 우리할머니랑 사시다가 돌아가심. 경제력 매우 탄탄하심. 돌아가실 때까지 늘 당당하심)
나의 아버지 세대엔 몰래 숨어서 간혹 있었고
나의 세대엔 거의 못봤고
지금은 그러면 누가 사나요, 이혼하지.
그냥 먹고 사는데도 첩을 두더라고요 자식들이 50대 후반인데
고만고만 그냥 먹고 사는데 첩을 두더라고요 본처 아들도 있는데
옛날에 시골에서는 흔했던거 같아요.
시골 사시던 큰아버지한테 젊은 첩이 있었는데 본가도 들락거리면서 큰어머니랑 가까이 지냈어요.
첩이 큰어머니랑 나이 차가 많이 나서 꼭 딸처럼 보였어요.
어릴때 시골 놀러 가면 큰집 보다 읍내에서 살던 작은 엄마 집에 가서 많이 놀았는데
무뚝뚝하고 늙은 큰엄마보다 젊고 여우 같은 작은 엄마랑 노는게 더 재밌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큰어머니한테 너무 죄송하고 평생 얼마나 마음 고생을 하셨을지...ㅠㅜ
많아요.
여자들이 돈 많은 남자 첩 자리 들어가려 하죠.
제 친구도 첩 딸.
늘 어두웠던 이유가 나중에 얘기하는데 엄마가 첩이라고.
결국 유학갔어요.
현미도 있잖아요
돼지아빠네 모네하면서
그만큼 흔한거 아니었을까요
줄반장 했던 애
첩의 아들,
형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당시 전대 교수였다는 설이..
하지만 생물학적 아버지 일뿐 엄마가 혼자
형제를 키웠어요.
첩 둔 남자들은 당당할지 몰라도 본처 자식, 첩 자식들 얼굴은 어둡고 성격도 이상했어요.아무리 재벌이라도 첩자식과 결혼은 피하는게 맞아요.
흔하다기 보다는 돈 있는 남자가 축첩하는거죠.
법적 규제나 보호도 약하던 시절이고
한국 현대사는 우역곡절이 많고 사회가 불안정 하던 시절이라
법적 규제를 벗어난 경우도 있고 그런거죠.
625 전쟁 후에는 남자는 적고 여자는 먹고 살아야 하고 그러니 다처가 좀 더 많아질 것 같고요.
요즘도 많죠.
쌍첩같은 유사배우자 집구석 전통이 첩인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