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해외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원정출산 아닙니다)
‘임출육’ 중에서 ‘임’은 뺄 만큼 임신 기간은 너무나 순조로웠어요. 제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입덧도 없고 건강도 좋아서, 막달에 잠들기 어려운 거나 역류성 식도염 정도를 빼면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죠.
그런데 고생은… 출산부터 시작이더라고요.
개인 사정이 있어서 출산 전날까지 일을 하고,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출산했어요.
제가 있던 나라는 제왕절개도 48시간 안에 퇴원시키더라고요. 병원에서도 퇴원할 때도 마약성 진통제는 안 주고, 그냥 이부프로펜 조금 센 거 하나 주는 정도… 수술하고 8~9시간 만에 걷게 했습니다.
그렇게 48시간 만에 퇴원해서 집에 왔는데, 집까지 2시간 넘게 걸리는 길이 울퉁불퉁해서 수술 부위가 정말 많이 아팠어요.
산후조리도우미는 정부 지원 없이 고용했고, 집에는 출산 후 이틀 지나서 오셨어요. 그전까지는 남편과 제가 아이를 봤습니다.
그 조리사 오시던 새벽부터 젖이 불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물려보려 해도 아기가 잘 못 빨고, 조금 먹다가 금방 지쳐 잠들더라고요. 젖몸살도 세게 오고… 원래 모유수유할 생각이었지만 결국 유축을 해야 했는데, 유축기나 관련 지식은 전혀 없고, 뭘 사야 하는지 후기를 보고 사용법도 익혀야 하는데 이 모든 게 외국어인 상황… 정말 멘붕이었어요 ㅠㅠ
육아용품도 뭐가 필요한지 하나하나 직접 찾아야 했고, 한국처럼 온라인이 저렴한 것도 아니라 오프라인 쇼핑이 더 저렴한 나라라 이것도 어렵고…
임신·출산에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미리 준비한 것도 거의 없었어요. 수건 몇 장, 베냇저고리, 친구가 보내준 옷 몇 벌이 전부. 이조차도 외국어로 제품 설명을 읽고 가격 비교를 해야 하니, 잠도 못 자는 와중에 체력·정신력 모두 바닥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기 주치의는 출산 다음 날부터 체크업 오라고 하시고, 체중 증가 속도가 느리다며 2주간 세 번이나 병원에 오라고 하셨어요.
차도 없는데 신생아를 카시트 없이 태우는 건 불법이라 우버 부르기도 쉽지 않았고요.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기를 봐주셨고, 하루에 한국 돈으로 25만 원 정도 들었습니다. 약 3주간 도움을 받았는데, 식단 문제로 조금 의견 차이가 있었어요. 저는 식사에 크게 불만이 없었는데, 산모니까 잘 챙겨 먹어야 한다며 자꾸 장을 봐오라고 하셨거든요. 차도 없는데다 남편도 바쁜 와중에 이틀에 한 번씩 장 보러 다녀야 해서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아기 돌보는 건 잘 도와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저희 둘만이었으면 정말 못 버텼을 거예요…
게다가 저는 그 와중에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어요.
해외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한국에 있는 대학에 교수 지원을 하고 있었거든요.
논문도 마무리해야 했고, 마감에 맞춰 지원서도 쓰고, 면접까지 보느라 정말 숨 돌릴 틈이 없었어요.
아기 돌보기 + 일 + 불면증의 조합으로 밤엔 잠도 못 자고… 솔직히 지난 1년 동안 5년은 늙은 기분이었습니다. 남편도 재택근무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밤엔 새벽 수유까지 도와주느라 함께 지쳤고요.
그렇게 지내다가 아기가 생후 80일쯤 되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정말 천국 이 따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버텨오던 저희 가족에게 드디어 좋은 일이 생겼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강의하고, 용역 과제도 하고, 계속 정신없이 지내다가… 드디어.. 대학에 임용이 되었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이 모든 여정을 함께해준 남편과 아기에게도, 그리고 여기까지 온 제 자신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정말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하겠지만… 지금은 마음이 벅차고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