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냉장고 살 때 뭐 봐야 하느냐고 질문했었어요.
결정했고, 샀고, 화요일에 배송 선택해서 딱 오늘 배송 받았습니다.
와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어요...? 제가 배송한 것도 아닌데 너무 힘들어서
정리하다 쉬고
정리하다 형제들 카톡에 사진 찍어 보여 주고 힘든 거 하소연도 하고
지금은 배고파서 어쩌지 하고 잠시 82 들어왔다가 글 씁니다.
힘들었던 이유는 알죠... 미리 냉털을 안 해 놔서, 뭐가 많아서,
급하게 꺼내고 꺼내고 버리고 버리고
버리면서 자기 혐오에 빠지고
돈 아까워서 피눈물 나고
번쩍번쩍한 새 냉장고에 원래 있던 물건을 도로 넣으려니 다시 그지꼴(?) 되는 거 같아서 현타 오고
이유는 모르지만 왠지 끈적이는 양념병들을 닦고 닦고 마른 수건으로 또 닦고 닦고
이러니 마음이 힘들고 몸도 힘든 거예요.
뭐 다 제 잘못입니다...
냉장고 속에 든 걸 죄다 끄집어내다 보니 저의 패턴이 보이더군요.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도, 아 또 그리고 식품의 유행 같은 것도 ㅋㅋ
일단.
엄마가 준다고 다 받아오지 말자.
해초 국수 뭐 그런 게 유행했던 때(도대체 그게 언제냐- 아시는 분은 아실 듯, 아시고 헉 할 듯 ㅋㅋ 그게 아직도 있니? 하고ㅠ)
엄마가 준 '후루룩 미역', '후루룩 ...' 뭐시기 그런 게 대여섯 팩이 나옴.
하나도 안 먹었음.
엄마는 분명히 홈쇼핑 같은 걸 보다가 이걸 샀을 거고, 할인에 혹해서 대량 구매했을 거고 그 중 일부를 나에게 넘긴 것임.
그럼 엄마만 잘못이냐...?
내가 산 해초국수 어쩌고저쩌고도 두세 개 나옴.(그래도 나는 마트에서 샀음)
...다 버리자... 언젠가 먹겠다고 놔뒀지만 그 언젠가가 아직도 안 왔음. 앞으로도 안 올 것 같음.
엄마가 '고들빼기'도 아니고 '꼬들배기' 볶음이라고 작게 써붙인 반찬통도 나왔는데 이건 뚜껑도 안 열어본 것 같음.
통 돌려드려야 할 텐데. 그나저나 엄마는 왜 뚜껑 위가 볼록한 반찬통을 사서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을 수도 없게 하는 걸까.
먹고 아주 조금 남은 치킨이나 해산물 믹스 같은 건 그냥 버리자. 어차피 다시 먹지도 않고, 냉장고 냄새만 배고, 거기에 얼음까지 껴서 나중엔 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덩어리가 된다...
녹여도, 먹으면 되게 맛없을 것이 분명해져 있다. 즉 안 먹음.
첨부터 버리자.
그리고 전 의외로 해산물을 좋아하나 봅니다.
아니, 좋아하면 해 먹었으려나.
어쨌든 저의 냉장고에서는 고등어 필렛 꽤 여러 개, 우럭(! 이걸 왜 샀지), 노르웨이 연어(회로 먹겠다고 사서 얼려버림), 가자미, 장어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속초'라고 적어 놓은 것과 아무것도 안 적은, 반건조와 그냥 건조 오징어 여러 마리...
이 중에 오징어랑 비교적 신상인 가자미 진공포장 외엔 다 버림.
오징어는 왠지 안주로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서 놔뒀는데, 먹게 될까요...? 살짝 반신반의.
새우는 ㅜㅠ
대용량으로 사 놓은 거 한 봉지가 살릴 수 없는 얼음덩어리가 돼 있어서 슬펐어요. 이것도 산 지 얼마 안 된 건데 냉장고가 맛이 가서 모든 것에 얼음이...ㅠ
지금 싱크대에서 녹고 있는데 녹이며 보니 너무 멀쩡해 보여서 마음이 갈팡질팡합니다.
죄다 볶아서 빨리 먹어버리면 어떨까.
고기는 아주 종류별로 사서 모아 놨더군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이것도 양념된 거, 안 된 거, 사서 내가 양념한 거
부위별로 골고루 참;;
이 중에 제가 엄청 좋아하는 브랜드의 닭갈비가 두 팩 있었는데 ㅜ 항상 맘 속에 든든했거든요. 언젠가 해 먹어야지~ 하고.
근데 이것도 한 3년 지났더라구요.
도대체 넌 왜 그러니. 샀으면 좀 먹으란 말야!
이 중에 냉장고 안에서 저절로 건조된 듯한 색상을 띤 놈들은 죄다 골라서 버리고
(먹으면 병원 실려가게 될 것 같은 비주얼)
이게 다 돈이 얼만지 반성 좀 했습니다... 아이고 내 돈!
저의 생활과 에너지가 변한 것도 이유가 될 거예요.
버린 것들과 안 버린 저장템 중에는
양파 파 제주무 풋고추 등을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로 썰어서 냉동한 것들도 있고, 시금치 데쳐 얼린 거, 시래기 손질한 것들도 있고 한데...
이런 재료들을 한창 갈무리할 땐, 요리를 직접 많이 해 먹었고 다양하게 해 먹었던 거예요.
하지만 자취 경력이 늘어나고 나이를 먹으며 의욕과 재미는 떨어지고 피곤함이 늘어난, '자취의 환상 따윈 버린' 프로 자취러는
점점 한그릇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게 되고
다양한 요리보다는 탄단지를 대충 맞춘 볶음이나 찌개류만 간단히 해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쁜 그릇도 뭐 필요하답니까. 한그릇 음식에는 큰 대접 같은 그릇만 있으면 되고, 그런 거더라고요.
아, 내가 이렇게 변했구나, 하는 것도 느끼며
닦고 닦고 버리고 버리고...
그랬어요.
하... 아직도 안 끝났다는 게 놀라운 일 ㅋㅋ
...원래는 냉동 스토리에 이어 냉장 스토리도 쓰려고 했는데(낱낱이 까발리며 반성과 카타르시스(?) 만끽 후(다 처리했노라!) 다시 정리에 매진하려고)
너무 기네요. 급 자르고 정리나 해야겠습니다ㅠ
참
저는 가장 기본적 양문형 냉장고, 메탈색, 매직 스페이스 있는 걸로 샀습니다!
그밖의 온갖 복잡한 기능은 없습니다!
얼음 잘 안 먹음. ㅋ
그래도 이 조그만 집에는 엄청 큽니다.
울언니가 근육질 냉장고라고 그랬는데 ㅋ
우락부락 메탈색 마동석 냉장고가 저의 겸손한 크기의 주방에 '내가 대장이다!' 하고 서 있어요.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릴 듯.
뭐 언젠간 적응하겠죠 ㅎ
동석아, 앞으로 잘 살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