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해봤다.
코로나19초기, 그러니까 신천지가 터진 직후였다. 스케줄이 취소됐다는 메일이 밀려들었다. 몇 달 치였다.
뭐라도 해야했다. 쿠팡 단기직(일용직)으로 나갔다. 그 때는 비슷한 처지의 단기직들이 대부분이었다. 역병사태가 생업에 일시정지버튼을 누른 처지의 사람들. 분위기는 암울했지만 계약직 전환을 택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다시 돌아갈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원래 지난해 12월 1일에 일을 시작하기로 했었다. 11월에 계약직 공고에 응했고 무탈히 통과했다. 코로나 때와 마찬가지로 티오는 널널했다.
개인사정+내란사태가 터지면서 근무 시작일을 1월로 미뤘다. 새로운 환경과 일에 적응하면서 두달 가까이를 보냈다. 이래저래 안면을 튼 사람들이 생겼다. 잠깐잠깐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매일 보는 것 같은데 단기직인 사람들이 있었다. 본업이 있는 게 아니면 계약직이 좀 더 이득인데 왜 계속 단기직을 하는지 궁금했다.
“계약직 티오가 안나와요”
새해가 되면서 갑자기 계약직 지원자가 몰려 들었고 중순 무렵 다 차버렸다고 한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널널하던 자리가 순식간에 꽉 찼다는 게 우연일까.
여러 사연을 들었다. 심리학 석사를 취득한 20대 후반 말단 관리직,
6년동안 회사를 다니다가 창업한 가게를 극도의 불경기로 접은 30대 중반 계약직,
전국의 굵직한 공사판을 누볐던 50대 주임원사급 에이스,
1년 반째 본업으로 못 돌아가고 있다는 기술자 출신 단기직,
전국체전 메달리스트로 체대 졸업 후 레슨장에서 일하다가 폐업 후 갈 곳이 없었다는 배우급 외모의 청년.
전공이나 경력만 보면 다른 일을 하고 있어야할 사람들이 밀려 들어와있다. 코로나 때처럼 잠시 알바하러 온 게 아니라 적어도 1년은 보장되는 계약직을 쉘터 삼아 일하고 있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없이 옥죄어오는 검은 안개를 피해 몸을 의탁한다.
내란이 아니었다면, 아니 윤석열이 아니었다면 그들 중 상당수는 여기 아닌 자기 자리에서 현재를 살고 미래를 그리고 있었을 것이다.
미국국채는 커녕 만원어치 로또가 재테크 비슷한 유일한 대화인 사람들, 내란이고 대선이고 당장 고립된 환경에서라도 일하지 않으면 매달 닥쳐오는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헌법은 커녕 법원에서 내용증명 하나만 날아와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사람들이다.
“여기 탈출해야지?“
성실하고 싹싹해서 눈에 계속 들어온 청년에게 말했다. 회사 다니며 모은 돈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보증금까지 날리고 여기 있는 친구다.
힘없는 웃음과 함께 답했다.
”그러게요.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요?“
형식적으로나마 앞날이 창창한데 어쩌고 저쩌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내가 그럴 처지도 아니고 바깥이 그럴 상황도 아니니까.
많은 사람들이 본업이 있거나 있었다.
코로나 시절이 본업의 일시정지 버튼이었다면 윤석열 시대는 스톱 버튼이었다.
그리고 내란은 플레이버튼을 뽑아간 걸지도 모른다.
경제가 박살났다, 나라가 망해간다는 근거로 주가와 환율이 가장 먼저 나온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겐 상관없을지도 모르는 숫자다. 급증한 자영업 폐업률이 나온다. 여기의 누군가는 그 숫자의일부일 것이다.
윤석열 무리는 숫자를 만들고 발표하는 이들의 삶을 망치지 않았다. 숫자에 이름이 가리워진 이들, 아예 그 바깥에 존재하는 이들의 삶부터 망가트렸거나 그러고 있다. 집회에 나갈 여력조차 없는, 광장과 인터넷 바깥의 삶을.
발없는 새들은 계속 하늘을 날 것이다. 땅위의 사정은 모르고. 그 사이 날개없는 새들이 멸종할 것이다.
4월 4일. 다행히 휴무일이다. 운좋게 5일에도 쉰다. 11시전에 일어나도 부담이 없다. 바깥 세상에서 편안하게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을 듣고 싶다.
아니, 반드시 들어야한다.
그들에게 플레이 버튼을 다시 누를 수 있다는 작은 기대라도 되찾아주기 위하여.
#셔틀버스잡문 #출근길에쓰는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