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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화장실 이야기 (더러움 주의)

오랑이 조회수 : 1,260
작성일 : 2023-12-04 13:38:59

저는 산동네 무허가건물에 살았어요. 어렸을 때는 연탄을 땠고, 좀 커서는 기름보일러를 들였지만 그래도 추워서 이불 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집이요. 집에 소파나 식탁 같은 건 없어서 집에 있다는 건 내내 이불 속에 누워서 작은 TV만 보는 거예요. 대학 오기 전까지, 제가 기억하는 모든 어린 시절을 그 집에서 보냈어요.

 

그 집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어요. 한 사람 들어가서 용변 볼만한 작은 공간인 화장실은, 벽은 벽돌을 쌓아 대충 시멘트로 발라놔서 손등을 스치기라도 하면 상처가 났어요. 나무문은 어디서 주워온 판자로 대충 못질해두었던 거 같아요.

 

화장실 바닥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었는데, 꽤 컸고, 거기엔 식구들이 눈 똥과 오줌과 구더기가 가득 있었습니다. 다 보였어요. 휴지통은 가득 차면 그대로 태워버리는 철로 된 통이었는데, 식구들의 용변이 묻은 휴지들이 그대로 보였어요. 그걸 좀 안 보이게 버릴 순 없었을까요. 모두 다 싫었지만, 제일 싫은 건 곱등이였습니다. 툭, 툭, 툭 튀어오르다가 엉덩이에 닿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아빠도 엄마도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아빠는 지팡이가 있어야 걷는 사람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화장실에서 참 힘들었겠다 싶어요. 엄마는 제게 짜증을 자주 냈었지만 그래도 저를 사랑했던 마음은 압니다. 엄마는 생리통 증상으로 구토하곤 했었는데 그 화장실에서 고개 숙여 토하기, 참 힘들었겠죠.

 

기저귀 뗀 저는 그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기 시작했고, 생리대 가는 법도 그 화장실에서 스스로 깨우쳤어요. 그래도 바깥 화장실은 귀찮으니까, 추우니까, 요강도 같이 썼고, 생리대쯤은 방 안에서도 갈았습니다.

 

아, 씻는 곳이요? 기름보일러로 바꾸던 무렵, 부엌에도 입식 싱크대가 들어왔어요. 저는 그곳에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따뜻한 물이 잘 나와서 세수하고 머리감기엔 괜찮았어요. 싱크대에서 발도 씻고, 요강도 비우고 했으니, 우리집 부엌은 화장실이자 욕실이자 주방이었네요.

 

이런 집에 살아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저의 불편이 아니라(익숙하니까 불편한지도 더러운지도 몰라요),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못한다는 거였어요. 친척언니가 집에 왔는데, 똥이 마려운데 이 화장실은 도저히 못쓰겠다고 해서 밖에서 신문지 깔고 똥을 누고 갔어요. 그 언니가 그때 6학년쯤이었는데 저희 집 화장실 쓰는 것보다 본인 똥을 보여주는 게 나았나봐요. 웃기게도 그 친척언니가 밖에서 누고 간 똥이 저한테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저는 지금 참 깔끔쟁이인데, 그 때는 매일 씻는다는 개념이 없었어요. 중3 때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머리 좀 감고 오라고 하셨어요. 기름이 잘 지는 머리인데, 그 당시의 저는 기름진 머리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나봐요. 집 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아빠와 할아버지 덕에, 교복에 담배 냄새까지 베어서 다녔네요. 바디로션이나 선크림 같은 지금은 매일 바르는 것들도, 대학교 때 혼자 자취하면서 처음 알았어요.

 

서울로 대학을 와서 엄마가 얻어준 자취 집엔 하얀 도기 변기가 있었어요. 세면대 있는 집을 얻는 건 더 나중 일이었는데, 변기가 있다는 게 참 좋더라고요.

 

공부를 잘 했으면, 하는 마음만 있는 부모 밑에서 사교육 하나 없이, 왕따도 살짝살짝 당하면서 자랐는데, 저, 공부는 참 잘 해서 대학은 잘 갔어요. 근데 성공은 못했네요. 제 마음의 그릇이 작아서 일까요. 가난하게 자랐어도 마음 넉넉한 사람들은 정말 성인처럼 느껴져요. 저는 그렇지 못해서, 남이 잘 된다하면 질투하게 됩니다. 별일 아닌 걸로 짝지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그러다가 내가 안쓰러워져 잘 울고요, 나쁜 사람이지는 않았던 엄마와 아빠 탓을 해요.

 

종종 화장실 꿈을 꾸어요. 창문이 크게 있어서 다른 사람이 훤히 볼 수 있는 화장실이라거나, 교실 한 가운데 놓인 변기를 써야 한다거나, 벌레가 우글거리는 화장실이라거나, 더러운데도 참고 용변을 보아야 한다거나, 내 오줌이 그대로 바닥으로 흘러버린다거나 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이런 꿈을 꾸고 나면, 어린 시절 생각을 하곤 해요.

 

새벽에 화장실 꿈을 꾸고 나서는 어린 시절 이야기를 써봐야겠다 생각이 들어서 제 친정 같은 공간에 풀어놓아봅니다. 이십대 초반쯤 이곳에 가입했었는데, 엄마에게 못배운 것들을 이곳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더러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참 삼십대 후반이에요. 그 집에 산 시간의 길이만큼이 지나왔는데도 여전히 저는 거기에 머물러 있네요.

IP : 1.217.xxx.164
10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으쌰
    '23.12.4 1:44 PM (211.36.xxx.228)

    지금은 편안하게 발 사시죠? 그러길 바랍니다

  • 2. 6767
    '23.12.4 1:48 PM (121.161.xxx.91) - 삭제된댓글

    저 지금 눈물 찔끔 흘렸어요. 코도 찡하네요. 저랑 너무
    상황이 비슷해서요. 아직도 더러운 화장실(변소죠 뭐)꿈
    저도 꿔요. 그래서일까 지금은 청결에 집착에 가까운 삶을
    살고 벌레가 치떨리게 싫으네요.

  • 3. ..
    '23.12.4 1:53 PM (1.240.xxx.148)

    지금은 우리 모두 깨끗한 화장실에 따뜻한 집에 있는거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님 어린시절의 화장실 기억은 꿈에서라도 잊어버리고 살기를 기원할께요.
    앞으로 악몽은 안꿀꺼예요.
    여기서 털어놓고 다 없어질 기억이 될꺼예요~

  • 4. 아아...
    '23.12.4 1:55 PM (115.21.xxx.250)

    70년대 초반생인데 우리집은 단층 상가 주인이었음에도 화장실은 주거공간이 아닌
    복도에 있었어요. 그래도 쪼그리고 앉는 현대식이어서 무서움은 없었지만
    신문지 잘라서 못에 걸어넣고 비벼서 닦았던 기억,
    그리고 화장실에서 늘 마주쳤던 귀뚜라미 기억이 있는데...
    원글님 글 읽으니 그게 귀뚜라미가 아니고 곱등이었나 싶네요
    어쩐지 싫더라...

    상상하며 원글님의 목소리를 따라 이전 동네 구경하고 온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길

  • 5. 098
    '23.12.4 2:17 PM (118.235.xxx.190)

    어릴 때 전학 감 학교 화장실이 재래식이었는데 아직도 그 화장실 꿈을 꿔요.

    그리고
    ㅡ저희 집 화장실 쓰는 것보다 본인 똥을 보여주는 게 나았나봐요.ㅡ
    이 부분. 아 글을 너무 잘 쓰시네요. 구구절절 마음을 설명하는 대신 이 한 문장에 모든 말이 담겨있어요 .
    글 잘 읽었습니다.

  • 6. 꿈에
    '23.12.4 2:53 PM (121.160.xxx.129)

    저도 가끔 어린 시절 꿈을 꾸고 새벽에 깨요.
    어린 시절의 결핍이 이렇게 깊고 오래가는 건줄 몰랐네요.
    (참고로 40대 후반입니다)
    친구를 집에 데려올 수 없는 거...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마음 속에 큰 그늘같았어요.
    게다가 외모가 깔끔, 잘사는 아이처럼 보이기도 해서.. 친구들이 실망하는게 참 두려웠답니다.
    저도 공부잘하고 스카이갔는데...
    괜찮은 남친들도 많았는데 결혼할때 우리 집에 데려오는게 싫어서
    다 물리치고
    어쩌면 저랑 비슷한 출신 남자를 골랐어요.
    지금은 그냥 저냥 살아요.
    저도 크게 사회적으로 자리잡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돈벌고 아둥바둥 사는데 집에 대한 결핍이 너무 심해서 그런지
    신혼때부터 집 살 생각부터 했었네요.
    그렇다고 부동산을 크게 성공한 것도 아니네요. ㅎㅎㅎ
    그래도 적당한 곳에 아주 아주 깔끔떨며 예쁘게 꾸며놓고 살고 있습니다.

    누가 그러더라구요, 악몽이라도 꿈을 꾼다는 건 치유할 수 있다는 거래요.
    그 말 듣고 상당히 마음이 놓였었거든요.
    악몽일지라도 뇌는 그걸 배설하려는 거라고..
    저도 반복적으로 가끔 어린시절 집에 대한 꿈을 꾸지만 그 말을 들으니 예전처럼 속이 타들어가진 않더라구요.

    원글님 행복하시길~~

  • 7. 75년생
    '23.12.4 3:48 PM (106.240.xxx.2) - 삭제된댓글

    어쩜 어릴때 우리집이랑 비슷한것도 같네요.

    산동네는 아니고 주택가였는데 화장실은 공동이었고 연탄 썼어요.
    두번째 살던 집은 화장실 창문이 5층짜리 건물이 몇동 있는 아파트 쪽으로 나있었는데
    뚫려만있고 문도 없어서 신문지로 대충 붙여놨었어요.
    뒤로 누가 지나가면서 볼까봐 불안해하면서 볼일 봤었지요.

    한칸짜리 방에 딸린 부엌에서 요강도 두고 썼어요.
    부엌이 화장실이자 욕실이자 주방이라는 말이 어쩜.....
    제 가슴에 콱 꽂히네요.
    이런말 어디가서 해본적 없거든요.
    원글님 맘 어떤지 알것같아요.

    친구들 데려와본적 없고
    아직도 화장실 꿈을 꾼다는.....

    그러고보니 저 화장실 꿈 안꾼지 좀 오래되었네요.
    화장실 꿈 안꾼다는 사실을 원글님 글 덕에 깨달았어요.
    꿈속에서도 현실같았고 부끄럽고 어찌할지 몰라 슬프고 힘들었었거든요.

    원글님도 그 꿈에서 벗어나시게 될거예요.

    좋은글 읽었어요.
    왠지 눈물도 나고 마음도 아프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싶은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회사 다니며 언니들과 돈 모아
    주방과 욕실있는 빌라 이사갔어요.

  • 8. 75년생
    '23.12.4 3:49 PM (106.240.xxx.2) - 삭제된댓글

    쩜 어릴때 우리집이랑 비슷한것도 같네요.

    산동네는 아니고 주택가였는데 화장실은 공동이었고 연탄 썼어요.
    두번째 살던 집은 화장실 창문이 5층짜리 건물이 몇동 있는 아파트 쪽으로 나있었는데
    뚫려만있고 문도 없어서 신문지로 대충 붙여놨었어요.
    뒤로 누가 지나가면서 볼까봐 불안해하면서 볼일 봤었지요.

    한칸짜리 방에 딸린 부엌에서 요강도 두고 썼어요.
    부엌이 화장실이자 욕실이자 주방이라는 말이 어쩜.....
    제 가슴에 콱 꽂히네요.
    이런말 어디가서 해본적 없거든요.
    원글님 맘 어떤지 알것같아요.

    친구들 데려와본적 없고
    아직도 화장실 꿈을 꾼다는.....

    그러고보니 저 화장실 꿈 안꾼지 좀 오래되었네요.
    화장실 꿈 안꾼다는 사실을 원글님 글 덕에 깨달았어요.
    꿈속에서도 현실같았고 부끄럽고 어찌할지 몰라 슬프고 힘들었었거든요.

    원글님도 그 꿈에서 벗어나시게 될거예요.

    좋은글 읽었어요.
    왠지 눈물도 나고 마음도 아프지만
    지금은 그때보다는 나은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 참 다행이구나...싶은 생각이 드네요.

  • 9. 75년생
    '23.12.4 3:49 PM (106.240.xxx.2) - 삭제된댓글

    쩜 어릴때 우리집이랑 비슷한것도 같네요.
    --- 어쩜 어릴때 우리집이랑 비슷한것도 같네요.

  • 10. 75년생
    '23.12.4 3:51 PM (106.240.xxx.2)

    어쩜 어릴때 우리집이랑 비슷한것도 같네요.

    산동네는 아니고 주택가였는데 화장실은 공동이었고 연탄 썼어요.
    두번째 살던 집은 화장실 창문이 5층짜리 건물이 몇동 있는 아파트 쪽으로 나있었는데
    뚫려만있고 문도 없어서 신문지로 대충 붙여놨었어요.
    뒤로 누가 지나가면서 볼까봐 불안해하면서 볼일 봤었지요.

    한칸짜리 방에 딸린 부엌에서 요강도 두고 썼어요.
    부엌이 화장실이자 욕실이자 주방이라는 말이 어쩜.....
    제 가슴에 콱 꽂히네요.
    이런말 어디가서 해본적 없거든요.

    친구들 데려와본적 없고
    아직도 화장실 꿈을 꾼다는.....
    원글님 맘 어떤지 알것같아요.

    그러고보니 저 화장실 꿈 안꾼지 좀 오래되었네요.
    화장실 꿈 안꾼다는 사실을 원글님 글 덕에 깨달았어요.
    꿈속에서도 현실같았고 부끄럽고 어찌할지 몰라 슬프고 힘들었었거든요.

    원글님도 그 꿈에서 벗어나시게 될거예요.

    좋은글 읽었어요.
    왠지 눈물도 나고 마음도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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