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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해방일지 기다리는 매우 한가하신 분들만

쫄린다 조회수 : 3,005
작성일 : 2022-05-21 17:11:30
읽어주세요ㅠ
네 인내심도 필요해요.매우 길어요

너무 소통하고 싶어 10년 정도 방치한 블로그에 사진이랑 같이올렸는데 아무도 읽지 않네요ㅠ






< 나의 해방 일지 - 13회를 기다리며 >




“추앙은 어떻게 하는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뭐든 된다, 응원하는 거.” (구씨 - 염미정)






카드회사 디자이너 염미정은 경기도 끝자락 산포에 산다.

그녀는 서른이 훌쩍 넘은 언니, 오빠와 서울로 힘겹게 출퇴근하다 주말에는 밭일을 도우며 지루한 일상을 이어간다.

성실한 서민 가정에서 무탈하게 자랐지만 고지식한 아버지와 일에 치여 사는 어머니는
그녀의 타고난 섬세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고 견디는걸 잘하는 단정한 그녀는 지금 심란하다.
사이코같은 팀장은 계약직이라고 대놓고 갈구고 돈을 빌려준 애인은 잠적해 버렸다.
그녀의 이웃에는 무슨 이유인지 시골 동네에 흘러들어와 겨우내 술에 절어 사는 말 없는 남자, 구 씨가 있다.
그나마 아버지의 싱크대 공장과 밭에서 일하며 연명하지만
일이 끝나면 먼 산을 바라보며 술로 밤을 지새우는 그에게
미정은 어느 날 추앙을 요구한다.



“할 일 줘요? 술 말고 할 일 줘요? 날 추앙해요.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



그녀는 한글을 몰라도, 술만 마셔도,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지켜봐 주겠다고,
또 나를 그렇게 채워주라고 요구한다.
남자들은 차가 없으면 연애를 못하고, 여자들은 결혼하면 끌어야 되는 유모차가 있는 그런 시대,
사랑이라는 내밀한 감정이 경제적 교환의 의미로 전락한 시대에
그녀는 어쩌자고 '사랑' 도 아닌 '추앙'을 요구하는 것인지.
그러나 추앙 역시 쉽지 않고 하나하나 밝혀지는 구 씨의 과거는 범상치 않다.
과연 그녀는 어디까지 추앙할 수 있을까?





완전히 지쳐버렸다.
정당한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빼앗으며 살던 화려한 지하세계에서 갑자기 튕겨 나와 산포로 굴러들어 온 그는
추운 겨울을 술로 지새웠다.
그래서 황당하다. 갑자기?



“내가 뭐 하고 싶은 인간으로 보여?...... 내가?...... 왜 이런 시골 구석에 처박혀서 이름도 말 안 하고, 조용히 살고 있겠니.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고. 사람하고는. 아무것도.
너 남자한테 돈 빌려줬지? 사내 새끼들도 여우야.
돈 빌려 가고도 적반하장으로 지랄 떨면 찍소리 못하고 찌그러들 여자, 알아본 거라고.
뚫어야 될 문제를 뚫어. 엉뚱한 데로 튀지 말고.”


사실 뚫어야 될 문제를 못 뚫고 엉뚱한 데로 튀는 건 구 씨였다.
미정이는 자신을 전적으로 채워주지 못하는 관계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데
구 씨는 이를 돈 문제로 본다.
그래서 불행했다.
그는 돈이라면 영혼이라도 팔 호빠와 조폭의 세계 어디쯤에서 열과 성을 다해 살아왔다.
그러나 선하든 악하든 공평하게 비추는 햇빛과 자비롭게 내리는 봄비 아래,
일한 대가만 정확히 받는 얄짤없는 노동과
자연의 소산으로 지어낸 미정이 엄마의 소박한 집밥을 먹으며
그는 자신을 조금씩 치유해나갔다.

처음부턴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구 씨는 뿌린대로 거두는 준엄한 자연의 법칙속에서 자신의 추악한 과거에 더욱 모멸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옳지 않은 일임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냈던 지하세계의 기억은
고장 난 가로등 때문에 이상하리만큼 밝은 달빛과 대비되어 더욱 추악하게 상기되었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에게 사치였다.
“돈 빌려 가고도 적반하장으로 지랄 떨면 찍소리 못하고 찌그러들 여자를 알아”보는 선수들 사이에서
천 점, 만 점의 부끄럼을 산처럼 쌓으며 그 세계를 씹어먹던 그는,
사실 키우던 개가 죽자 며칠을 울던 여린 인간이었고
자신 때문에 자살한 것 같은 여자의 죽음이 너무 괴로워
위악의 가면을 쓰다 원한을 사는 자기 파멸적인 존재,
뚫어야 될 문제를 뚫지 못하고 엉뚱한 데로 튀어버린 인간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그의 영혼은 돈에 팔려버렸다.
어찌어찌 본성을 거스르는 세계에서 15년을 살다 결국 고장 나 버렸다.
그래서 과거가 또렷이 떠오른 어느 밤 술에 취해 들개가 있는 벌판에 주저앉은 그를 구하고자
들개에게 돌을 던지고 쌍욕을 하는 염미정이, 구 씨는 무섭다.
들개를 쫓아낸 후 동네 꼬마처럼 긴 막대기를 들고 호위하듯 따라오는 미정이에게 그는 말한다.



“너는 본능을 죽여야 해. 도시로 가서 본능을 무뎌지게 해야 해.
그래서 개구리 터져 죽은 것 말고 여자들 수박 겉핥는 얘기, 그런 지겨운 얘기를 정성스럽게 할 줄 알아야 돼......
본능이 살아있는 여자는 무서워. 너... 무서워.”



사실 이는 구 씨 방식의 추앙이다.
남에게 얼굴 붉히는 일도 버거워하는 수줍은 미정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들개떼에도 맨몸으로 맞서는 강인한 여자다.
남들 다 갖는 평범한 욕망은 부족하지만
평생을 자연의 생로병사 속에서 살다 얻게 된 적나라한 통찰로 구 씨를 당황시키는 똘끼있는 그녀,
사랑하는 이가 바다에 빠지면 바닷물을 모두 들이켜서라도 구하려 할 미정이를 보며
그는 자신이 진심을 다해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정성스럽게 해야 할 진짜 얘기가 무엇인지 깨달아간다.
산포에서 그녀는 몸을 사리지 않고 추앙하며
그는 사소하지만 태산같이 일상의 추앙을 쌓아간다.
이제 돈의 굴레에서 영혼이 썩어 들어가던 구 씨는 밭일이 좋아 돈도 받지 않고 일하며,
숫기 없던 미정은 감춰왔던 생각들을 거침없이 내뱉기 시작한다.
그들은 해방되고 있다.



그래서 11화 마지막,
해 질 무렵 강변에서 구 씨가 미정에게 추앙한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장면은 가슴이 아프다.
그는 이 황홀한 자연 속에서 부끄러움 없이 돈을 벌고 사랑을 하는 자신의 단정한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
어둠의 친구들은 대파 뽑고 고추 따며 정직하게 날품 파는 구 씨에게 망가진 척 쇼하냐고 비웃고
이 소박한 행복을 망가진 것으로 치부하며 그를 끊임없이 위협한다.
결국 사랑하는 존재들을 지키기 위해 그 세계로 돌아간 그는
의도치 않은 또 하나의 죽음을 생성하고 다시 악의 세계를 씹어먹는다.
자신에 대한 환멸로 위악의 가면을 쓰고.
이런 그가 도시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토사물이 잔뜩 묻어 버리려고 했던 옷을 다시 입고 출근하는 기분으로 그는 2년을 버텼을 것이다.
그러다 더 이상 견뎌낼 에너지가 없어졌을 때,
기분이 기깔나게 좋아지고 싶은데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순간
자신에게 구원과 해방이었던 미정이와 산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과연 어둠의 세계와 안전 이별이 가능할까?
그는 죄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남은 4회는 구 씨에게 시청자가 납득할만한 서사를 부여할까?
아니, 기존 드라마의 문법을 전복시켜 구씨 캐릭터를 끝까지 밀어붙인 후
추앙의 한계가 어디냐고 시청자들에게 가열찬 질문을 해버릴까?

‘나의 아저씨’, ‘또 오해영’ 등 작가의 전작을 보면 바람난 아내, 주인공을 버린 남친에게도 공감할만한 서사를 주었으니 구 씨도 납득할만한 서사를 갖게 될 것도 같다.
공중파 드라마답게 모두가 해방되는 결말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밥 지옥에서 벗어난 미정이 엄마는 요기요를 알게 되고 구 씨는 그 세계와 사이좋게 이별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에서는 그럴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인간은 인간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 약해서 사악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다른 아이들이 성적이나 친구 때문에 기도할 때
‘나, 뭐에요? 나, 여기 왜 있어요?’
라는 실존적인 물음을 던졌던 산포 사는 노빠꾸 크레이지 걸 염미정을 통해,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며 악의 세계를 씹어먹었던 구 씨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IhOfTJkBKa0




IP : 211.36.xxx.198
1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2.5.21 5:22 PM (123.254.xxx.136)

    잘 읽었습니다.
    저는 나의 해방일지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이 인간을 추앙에 가까운 사랑을 할 때 비로소 해방될 수 있다고요.
    구씨와 미정이는 물론이고, 사랑을 하니 사람들이 하나도 안 밉고, 짜증이 안난다는 기정이, 창의도 결국 인간에 대한 계산 없는 사랑으로 스스로 해방될 수 있겠구나하고요.
    저는 요즘 인간에 대한 사랑이 완전히 고갈되었는데 이게 돌아을 기미가 전혀 없어서 드라마에 몰입하면서도 살짝 낙담이 돼요.
    난 너무 해방되고 싶은데, 해방되기가 어렵겠구나하고요.
    어느날,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를 듣는데 그때도 그런 묘한 절망을 느꼈거든요.
    햇수로 이년이 지났는데 그대로네요.
    해방을 향해 가고있는 드라마속 용기있는 주인공들이 부러워요.

  • 2. ...
    '22.5.21 5:38 PM (219.255.xxx.110) - 삭제된댓글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하는 드라마라 이런 긴글도 읽게 되네요.

  • 3. 감사ㅠ
    '22.5.21 5:40 PM (211.36.xxx.198)

    와 일단 이 길고긴 글을 일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해요.


    저는 여기서 인간관계의 벽을 생각해 봤어요.

    미정이 부모님이 사실 고지식하셔도 성실하고 좋은 분들이잖아요.
    그런데 미정이는 매일 바쁜 부모님 힘드실까봐 공장일 도와드린건데
    엄마는 재미있어서 한거라 말하죠.

    미정이는 부모에게 정서적 지지를 받아보지 못했다고 말하고요.

    저는 우리가 흔히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그런 이들에게도 인간은 상처받는 존재이고

    반대로 구씨같은 막 산 사람에게 오히려 위로받는 아이러니

    이 세성 어딘가에는
    한번도 제대로 이해(추앙)받지 못한 나를 이해할 누군가가 존재할거란 기대,
    작가는 이런 걸 주고 싶었나 생각도 해보고요.

    과연 이게 인간한테서 채워지는가(역설적으로 관계에 대한 기대로부터의 해방)도 묻고 있는것 아닐까...

  • 4. ..
    '22.5.21 5:42 PM (115.136.xxx.21) - 삭제된댓글

    제가 미쳐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네요
    13화 기다리며 잘 읽었어요

  • 5. 저도
    '22.5.21 6:09 PM (39.112.xxx.205)

    잘 읽었습니다

  • 6. ...
    '22.5.21 6:22 PM (14.55.xxx.56)

    감사히 잘 읽었어요

  • 7. 우와~~
    '22.5.21 6:32 PM (125.178.xxx.243) - 삭제된댓글

    글을 잘 쓰셨는데 저에겐 조금은 어렵기도 하네요^^;;드라마 정주행 중이어서 아직 12회까진 보지 못했지만,염미정의 대사를 통해 나의 해방을 꿈꾸어보는 중입니다.

  • 8. 잘 읽었어요
    '22.5.21 7:42 PM (182.210.xxx.178)

    전혀 안길어요. 술술 읽히네요.
    이런 똑똑하신 분들 덕분에 그냥 재밌게만 본 저도 뒤늦게 생각을 하게 되고 뭔가를 배우네요.

  • 9. 감사!!!
    '22.5.21 7:58 PM (125.183.xxx.243)

    우와 감사해요!!

    미정이처럼 남의 시름을 지나치지 못하는
    섬세한 마음의 소유자님들이시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10. 저도
    '22.5.21 8:42 PM (180.68.xxx.100)

    술술술 읽혔어요.
    중학교때 드라마 보고 와서 쉬는 시간에 재미있게 이야기 들려 주던
    이야기꾼 친구가 생각납니다.
    남녀의 사랑이란 한계가 있잖아요.
    가요고 드라마 영화...세상의 모든것들은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끝은..
    그래서 다음 단계 추앙, 전 그 추앙이라는 단어에서 해방감을 느껴요.^^

    2탄 올려 주시면 또 재미있게 읽겠습니다.

  • 11. 감사!!
    '22.5.21 8:54 PM (125.183.xxx.243)

    우와?? 진짜요?

    아무도 안 읽으실줄 알았는뎅ㅠㅠ

    솔깃해서 또 써볼까 싶습니다^^

    웃긴게 제가 2008년도엔가 블로그 개설해 놓고 글 안 올린지 10년쯤 된 것 같은데

    블로그 제목 밑에

    나는 누구인지...

    요렇게 써 놨더라구요.
    미정이는 어린이때 한 고민을 마흔 될때까지 하고 있었다니 저는 참 유치한 존재였어요ㅠ

  • 12. ㆍㆍ‥
    '22.5.21 8:58 PM (1.252.xxx.85)

    글 너무 잘 읽었어요
    감동입니다^^

  • 13. ..
    '22.5.21 9:53 PM (118.235.xxx.108)

    유투브에서 본 어떤 리뷰보다 재밌게 읽었어요
    2변 기대합니다
    응원하려고 로그인했어요

  • 14. 오오
    '22.5.21 10:25 PM (49.105.xxx.196)

    어느 유튜브보다 좋아요.
    유튜브들도 보면 제각각 해서 동의가 안 될때가 있는데
    원글님 글은 술술 읽히면서, 그래 맞아맞아 그러면서 읽었어요.
    글 완전 좋아요

  • 15. 비가
    '22.5.22 12:17 AM (49.165.xxx.98)

    와~
    글 너무 잘쓰세요
    재밋게 읽었습니다
    제가 이런분들 때문에
    82를 못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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